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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행전  박영환

 

  2018년 2월 20일(화), 매전면 용산리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파평 윤씨 집성촌으로 태안재가 있고 신라 고찰인 불령사가 있습니다. 마을 주민인 윤종욱(태안 윤종충 후손) 씨의 안내로 재실에 이어 불령사, 뒷편 산중턱 마을인 중산리까지 찾았습니다.

 

 

<태안재>

 

 

태안재(泰安齋)

 

관리문중: 파평 윤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774-1

지방도 987호선을 북지리 북지 마을을 지나면 용산리 방향을 알리는 마을 표지석이 나오고, 마을길로 800m가량 들어가면 용산리(삿갓 마을)에 효양산을 뒤로하고 용산들을 바라보며 냠향으로 좌정했다.

 

건물 구조: 전면에 세운 일각문을 들어서면 재실과 관리사가 자형으로 있다. 재실은 시멘트 기단 위에 네모기둥을 자연석 초석 위에 세운 정면 4칸인데 온돌방 2, 대청 2칸의 좌실우당(左室右堂)형이다. 좌측면은 칸 반이나 우측면은 2칸 간살로 잡은 장여수장집으로 툇마루를 설치했다.

창호는 온돌방 앞문은 모두 머름중방 위에 쌍여닫이 세살문, 대청 후면과 우측면에는 각 칸 모두 머름중방 위에 외여닫이 창을 달았다.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泰安齋가 편액되어 있고 대청에는 유도승의 태안재기’, ‘상량문 그리고 태안의 시가 있다.

관리사는 재실과 마찬가지로 시멘트 기단에 네모기둥을 자연석 초석 위에 세워 정면 4(온돌방 3, 마루1, 중당협실형) 팔작 기와집이다.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마루에 국왕의 전교에 대한 것과 파평윤씨 세계 분파도 설명서가 붙어 있다.

마당은 자갈을 깔았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윤종충(尹宗忠)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효겸(孝謙), 호는 태안(泰安)이다. 소정공 곤(昭靖公坤)의 후예이다. 삭주부사로 정치를 잘하여 형조참의로 승직되었으며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나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파평 윤씨 입청도 선조이다. 유헌(游軒) 장석용(張錫龍)이 찬한 묘갈문이 있다.

 

연혁: 1890년에 창건되었다. 청도문헌고에 후손인 도일(道一), 좌일(佐一), 문병(文炳), 경중(敬重) 등이 의논해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 경에 강판기와로 번와하는 등 중수했다. 특이하게 1960년 매전면 덕산리에도 같은 이름으로 재사를 지어 윤종충을 같이 배향하고 있다.

용산리는 삿갈마을은 파평윤씨 집성촌이다. 파평 윤씨의 시조는 태사 삼중대광을 지냈던 윤신달이며 윤관은 고려 때 여진을 평정한 공으로 영평(파평의 별호)에 봉해져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하당>

 

<태안재 전경>

 

 

<신라 고찰 불영사 - 지형 그대로를 살려 이루어져 있는데좁은 계곡을 따라 전각이 들어서 있다.>

 

 

 

 

 

불령사(佛靈寺)

 

소속: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용산3 99-8(용산리 산 96)

용산마을에서 2킬로미터 정도 지점, 호랑산이라 불리는 효양산의 비룡골 옆 산비탈에 있다.

 

건물 구조: 지형 그대로를 살려 이루어져 있는데, 좁은 계곡을 따라 전각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은   근래 옛 인법당이 협소하여 새로 건립된 정남향 건물이다. 대웅전과 종무소로 사용되는 인법당 중턱에 요사 1동이 있고 위쪽으로 올려다보면 통일 신라 때 불령사의 흔적을 말해 주는 듯 천불탑이 우뚝 솟아 있다. 천태전과 위령각은 천불탑의 지키며 가파른 좁은 길에 자리해 있는데, 원래는 계곡 건너편에 있던 것을 이건하였다고 한다. 가람 배치는 계곡을 끼고 이루어진 좁은 사역의 지형을 살려 지었다. 1960년대에 조성한 범종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4호로 지정된 불령사 전탑(佛靈寺塼塔)이 있다. 이 전탑은 좁다란 골짜기의 절벽 위 널찍한 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아 올렸다. 이 외에 조선 후기인 1718세기의 특징을 띠고 있는 석조여래 좌상 1구가 전한다.

 

연혁: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고 해서 불령사라 불리는 이 절은 신라 645(선덕여왕 14) 원효 대사(元曉大師)[617686]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연혁은 없으며 이후 낡고 허물어진 사찰을 1912년에 와서야 봉주 승려가 중건하였다. 그 뒤 1930년 이종태 주지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이후 폐사 지경에 있던 것을 1985년 지선(志珗) 승려가 요사와 산신각을 새로 지으면서 지금의 사찰 면모를 갖추었다. 2000년에 퇴락한 인법당(人法堂)이였던 대웅전을 위쪽으로 올려 새로 짓고 원래의 인법당은 종무소로 사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월 초하루 보름에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정해진 포교 지역 없이, 매전면을 중심으로 포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도 수는 250여 명 정도 된다.

 

위의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집필자 김미경요약한 것입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령사 전탑>

 

 

 

<용왕각>

 

 

<삼성각>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

 

<용산리>

 

용산리(龍山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는 용산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용산리는 용연동(龍淵洞), 용산동(龍山洞), 사현동(沙峴洞), 중산동(中山洞)을 합해서 이루어진 마을이며,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94호 불령사 전탑(佛靈寺塼塔)이 위치한 곳이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병합된 마을 중 용연동과 중산동에서  자와  자를 따서 용산리라 하였다.

  용산리는 용당산(龍塘山)에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용당산 서쪽에 사방으로 골짜기가 십자(十字) 모양을 이루고 있어서 사곡(四谷)이라 불렀다. 1832년의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에는 용연리(龍淵里)가 있으며, 1918년 일본인들이 측량을 하고 만든 지도에는 용연동, 용산동, 중산동, 사현동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마을로는 중산동, 사곡(四谷), 새각단, 응달마, 용연동이 있다. 중산동은 산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사곡은 산의 지형이 십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사곡이라 했다. 새각단은 농경지를 따라 새로 생긴 마을이며, 응달마는 산 밑 음달에 자리 잡은 곳이다. 용연동은 용당산에 살던 용이 날아서 승천했다는 전설에 의해서 용연(龍淵)이라고 하며, 1912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는 용산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상남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연동, 용산동, 사현동, 중산동을 병합하여 용산동이 되었으며, 매전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용산동에서 용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편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에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양산의 엄청난 위용과 비룡봉, 중산봉등 여러 산봉에 둘려져 있고 산기슭에 옹기종기 산촌답게 자리잡은 마을이다. 지대가 높아 마을앞 들판이 눈아래로 계단식이니 경전(耕田)이 층층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이 높다는 것을 알리기나 하듯이 마을에 못이 있다.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용허리를 지나간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이 마을 역시 알 수가 없다.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은 1580년에 파평인 윤흥극 공이 입촌하여 정착하고 산기슭 비탈진 곳을 일구어 마을 터전을 잡아 나갔다고 한다.

  사갈(巳渴), 사가래는 윤 공이 동기를 잡고 보니 물이 귀하여 사갈(巳渴)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 마을 지형을 살펴보고 용산(龍山)을 동명으로 정한 것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된다.

  용산리에서 낮게 뻗어간 구릉이 온막 고개가 되고 다시 더 뻗어 동창천변에서 멈춘 자미산(紫嵋山)을 마을에서 내려다 보면 용맥으로는 너무 약하여 사맥(巳脈-)으로 보고 동창천을 향하여 뻗은 형상이 목마른() ()이 믈을 맛려 내닫는 형국이라 사갈(巳渴) 또는 뱀이 가는 모습이라 사가내가 변하여 사()가래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설은 사() 즉 모래 성질이 많은 토질이라 사()자와 '가래'는 자미산(紫嵋山)을 마을에서 바라보면 흡사 가래 모양이라 모래는 가래로도 일구어 나갈 수 있다는 뜻에서 사가래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뱀()를 용으로 미화시키고 마을옆 비룡곡에 있는 용소(龍沼)를 용연(龍淵)으로 다시 미화시켜 용연리(龍淵里)로 동명이 정해 진 것이라고 믿어진다

  중산리는 둘러싸인 산속의 마을이라서 중산(中山)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용산리는 용연리와 중산리의 합동이다.

 총 101호 중에서 파평 윤씨 23호, 철성 이씨 15호, 밀양 박씨 10호, 기타 53호

 

  비룡(飛龍)곡에는 신라 고찰인 불영사(佛靈寺)가 있다. 이 절에 있는 천불탑은 전탑(塡塔)으로 기단 및 탑신에 벽돌 한 장 마다 불상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다음은 도주지(1958, 김석봉 편)에 수록된 용산리(중산마을) 효부 재령 이씨에 대한 기록이다. 

 

孝婦 載寧李氏  梅田面 龍山洞 中山里 居住하였으며 幼學 李永浩 女系이다 通德郞 達城人 賓貴相 이며 性資 賢淑하여 事親處閨  少時부터 平人과 다름이 있었고 出嫁以後   老舅 奉養하되 定省하는 節次 愛慕하는 誠意를 다하고 販薪賃績하여 朝夕 供養하였는데 壬寅年 冬節에는 大雪이 내려 市路 杜絶됨으로 찬이 없어 걱정 하던바 忽然히 꿩()이 부엌에 날라들어왔다 老舅 風疾 八年을 하루같이 侍湯하였으며 喪後 哀痛岡極하였고 三祥祭  極盡히 하였다 .. 褒彰이 있었고 癸酉年에는 孔夫子聖蹟圖續修五倫行實重刊淵源儒林鄕約本所에서 完議文 贈表하였다

 

<불령사 앞에 있는 이정표>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중산리 - 지금은 도회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되었다.>

 

 

중산리

 

                         행전 박영환

 

 

불령사를 지키는 다리가 세 개뿐인 삽사리가

힐끔힐끔 사람을 챙긴다

제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들 텐데

크게 짖어대도 비룡폭포 물소리에 잠겨 들리지도 않을 듯

괜히 안쓰럽다

 

벼랑 따라 아슬아슬 들어선 불령사의 대웅전이며 전각들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천근 전탑

무너질세라 미끄러질세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절 위 산중턱을 베어 문 화전민 촌에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강 서방 내외가 살고 있다

배나 곯지 않을는지

첩첩산중에 딸을 던져놓은

허연 머리칼 친정 어머니의 한숨소리

 

마침내 중산리가 외치기 시작했다

어머니 걱정 마이소

이제 중산리도 중간은 될 것 같심더

강서방네의 말에

다리 세 개의 삽사리도

벼랑 위의 절집들도 싱긋 웃는다

음지가 양지라

길도 생기고 사람도 생기고 웃음도 생기고.

 

 

참고

- 관리문중 후손 면담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

-역주 오산지(2003,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 청도문헌자료집,2013, 청도문화원 향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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