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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행전 박영환

 

  2018년 2월 10일(금), 삼족대 앞 동창천을 건너 매전면 당호리를 찾았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당동과 동호동을 병합하여 당호동이라 했는데 마을 앞에 250년 된 보호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에는 운호재와 추창재, 학산재가 있다. 

 

 

 

 

운호재(雲湖齋)

 

관리문중: 경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309번지

  국도에서 200미터 정도 되는 아래당호 마을 입구에 있다. 운문산수가 마을 앞으로 들어와 삼족호로 흘러가는 그 수원을 안대로 삼아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좋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아담한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양옥 기와집 3(온돌방 3) 재사가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철근콘크리드 둥근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툇마루 앞에 유리창문을 달아 재사를 보호했다. 재사 바깥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雲湖齋가 현액되어 걸려 있으며 툇마루 위에는 문학박사 진성 이동영이 찬한 운호재기가 있다. 재사 주변에는 블록담장을 둘렀다. 마당 우측에는 판넬집으로 지은 관리사가 있다.

 

배향인물: 이경택(李慶宅) [1737(영조 13년 정사) - 1815(순조 15년 을해)]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통중(通仲)이고 호는 죽포(竹圃)로 경주 외남면 중리에서 출생했다. 신라 좌명공신 알평(謁平)이 조상이며 고려말 문충공 익재 이재현의 후예이다. 선대인 지대공은 조선 세종 때 한성부윤을 지냈으나 단종 손위의 기미를 알고 경주 산하 중리로 이거하여 호를 죽은이라 하였다. 그 후손인 죽헌 이봉수는 임란 때 창의하여 선무원종훈에 책록되어 벼슬이 한성판관이었다. 고조 이기남은 통덕랑이다.

  죽포 이경택은 타고난 품성이 온아하고 학업에 근면하여 오직 서적에 잠심하고 양친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집안의 자손을 경의로 가르쳐 종족의 돈목에 힘썼다. 중년에 당호리로 이거하여 당호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貧而樂富而好禮의 생애를 보냈는데 향년 79세에 졸했다.

 

연혁: 2005(을유) 신축했다

  이경택은 아들이 5형제이다. 첫째가 복화이고 둘째가 복신이고 셋째가 통정인 복규, 넷째가 유문행인 복림, 다섯째가 복헌이다. 제 후손들이 이 마을에 동거한지 오래 되고 자손들이 번창하여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주 김재화는 묘비명에 성벽이 임천을 좋아하고 윤리를 돈독히 지키며 죽은, 죽헌 두 조상의 유풍을 따라 죽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공이 졸한지 190년이 되어도 재숙소가 미비하여 안타깝게 여기다가 전종원이 합심하여 재사를 마련하였다.

 

 

 

 

 

 

 

 

추창재(追愴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150번지

  윗당호 마을에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보호수(수령 250년 버드나무)와 정자 앞에 있는 마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학일산 기슭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물구조: 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지붕 목조 골기와 5(온돌방 3, 마루 2,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툇마루 앞에 유리창문을 달아 재사를 보호했다. 재사 바깥 전면에 재사의 이름인 追愴齋가 현액되어 걸려 있으며 대청에는 8세손 이정국이 근서한 추창재 중건기가 있다. 그 옆에 10세손 이종황 등이 쓴 추창재 중건운’ 3편이 있다. 좌우측에 관리사와 창고 등이 있다. 마당에 자연석 큰 바위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배향인물: 이완(李琬) [1604 갑진, 선조 37 - 1662 임인, 현종 3]

  본관은 고성이며 용헌 이원과 모헌 이육의 후예이다. 벼슬은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연혁: 1960년 창건하였으며 1990년에 중건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도주지에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追愴齋 堂湖洞에 있는데 固城人 慕軒公 後孫 監察使 李琬 墓齋이다 

 

 

 

 

 

 

 

 

학산재(鶴山齋)

 

관리문중: 경주 최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225번지

 윗당호 마을에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보호수(수령 250년 버드나무)와 정자 앞에 있는 마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첫 골목에 우측으로 들어가면 학일산을 뒤로 하고 서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지붕이 없는 철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조 4(온돌방 2, 마루 2,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가운데 재사의 이름인 鶴山齋가 편액되어 걸려 있으며 이화우가 근기한 학산재기가 있다. 좌측에 관리사가 있으며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경주 최씨의 종사이다. 해마다 한 차례씩 경주 최씨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는 향사를 지내고 있다.

 

연혁: 1965년 건축되었으며 1977년 등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당호리(堂湖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기록된 당호리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당호리(堂湖里)의 원래 명칭은 동당(東堂)이다. 삼족당 김대유의 별서가 있는 삼족대 동쪽에 있어서 동당(東堂)이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상남면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당동과 동호동을 병합하여 당호동이라 하고 매전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당호동에서 당호리로 바꾸었다.

대곡산 자락에 동창천을 마주한 당호리는 강시불[강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구에 비해 넓은 면적의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다. 동창천이 삼족대가 있는 언덕에서 크게 굽어지나간다. 동창천의 넉넉한 물줄기는 농사짓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이다. 경작지는 윗동당에서 아랫동당까지 강변에 형성되어 있고 경지 정리가 말끔히 되어 있다.

면적은 2.66이며,  39가구에 88[남자 42, 여자 46]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2 7)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면적은 2.66이며 동쪽은 금천면 신지리, 서쪽은 매전면 동산리, 남쪽은 매전면 호화리·남양리, 북쪽은 매전면 금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윗동당과 아랫동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창천 건너에도 몇 집이 있으나 마을을 이룬 정도는 아니다.

동창천이 지나고 있어 여름이면 피서 인파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다슬기가 많아서 봄부터 가을까지 다슬기 잡는 사람들을 항상 볼 수 있다.

  

 

청도군지(1991, 청도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방응봉(放膺峰)이 줄기차게 달려와서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가리고 코앞에는 동창천이 굽이쳐 흐르고 산과 내 사이에 좁은 들과 마을이 들어서 있다. 수리가 좋아 전답은 문전옥답이고 마을에서 타처로 가려면 도수부도수(渡水復渡水)의 시구(詩句)와 같이 신발을 벗어 들고 물을 건너야 할 만큼 수향(水鄕)이라 할 수 있다.

홍수 때는 수해도 많았을 것으로 보이나 부근의 삼족대(三足臺)는 산과 바위와 물이 조화를 이룬 절경으로 아름답기가 그림과 같다. 이 마을 역시 임란 시부터 비롯된다.

1500년 말경에 인동인 장화(張和) 공과 경주인 이경택(李慶宅) 공이 경주에서 이 마을로 택리(擇里)하여 동풍(東風)을 고치고 바로 잡아 나갔다 한다. 장공과 협조하여 동기를 굳혀나간 점은 현재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당호리(堂湖里)는 동호동(東湖洞)과 동당동(東堂洞)을 합친 동리로 동당(東堂)은 장화 공이 동신을 모시지 않으려고 당집을 짓는 대신에 동명에다 자를 넣고 댕이라 한 것이 동당(東堂)으로 표기된 것이라 하나 동()자에는 다른 뜻이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당시의 풍속으로 보아 당제(堂祭)를 없애고 당()자로 동명한 것은 장공의 용단이라 할 수 있다.

동호(東湖)란 마을이 물가에 있고 동당(東堂)의 동쪽에 자리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동()에 대하여는 역시 석연치 않다.

상동당, 하동당은 상·하 마을의 별칭이다. 상동당은 동창천 건너편 갯벌에 옛날에는 마을이 있었다는데 홍수로 유실되고 현재는 황개뜸풀, 야시방구라는 지명만 남아 있다.

삼족대(三足臺)는 대곡산(大谷山) 낙맥지(落脈地)로 절벽위에 동창천을 끼고 고고히 서 있다.

 46호 중 경주 이씨 28, 경주 최씨 12, 옥산 전씨 3호 기타 3(1991년 현재)

 

참고

- 관리문중 후손 면담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도주지(1958, 김석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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