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행전 박영환
2017년 3월 23일(목), 매전면 예전리를 찾았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가례동과 용전동을 합해서 가례의 ‘례’ 자와 용전의 ‘전’ 자를 따서 예전리(禮田里)가 된 마을이다. 국도 58호선인 청매로가 운문천을 따라 예전리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예전1리인 용전마을에는 '용운재'가 있고 2리인 가례마을엔 '경선재'가 있다.

국도에서 바라본 가례마을 전경


경선재(景先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 419 번지
예전 2리인 가례 마을 동쪽 언덕에 동창천과 가례들을 바라보며 서남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칸(방2, 출입문) 규모의 평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조와가 5칸(방3, 마루2, 중당협실형)팔작지붕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세살문 쌍여닫이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가운데 재사 이름인 ‘景先齋’ 현액이 있으며 대청에는 김재화가 쓴 ‘경선재기’ 및 후손 이종현의 글이 편액되어 있다. 재사 아래 좌측에 판넬로 만든 관리동이 있고 한켠에 ‘경선재 중건 헌성록’ 비가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고 주변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이륵(李玏)
본관은 고성이며 자(字)는 자옥(自玉)이다. 모헌공 이육의 후예로 가례파조(佳禮派祖)이다.
◯연혁: 원래는 1903년 을사(乙巳)에 건축한 3칸 집이었으나 비바람에 깎이고 씻겨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종원들이 논의하여 구 재사를 헐어내고 1990년 새로 중건했다. 본채 대청 마룻대 아래의 장혀에 ‘光復後 庚午 四月 初六日 午時 重建立柱上梁’이 명시 되어 있다.
이 재사는 이영기 9세손이 특별 헌성을 하고 여러 종인들이 협력하여 갹출한 결과이다.
가례마을은 고성이씨 집성촌이며 ‘承’자 항렬에 11대조가 정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례1리 용전마을


용운재(龍雲齋)
◯관리문중: 순흥 안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예전길 50번지
마을 뒤편 산기슭에 울창한 대나무를 뒤로 하고 맑고 깨끗한 동창천을 바라보며 동향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3칸(방2, 마루1,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낮은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세 살문 쌍여닫이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전면 가운데에 재사의 이름인 ‘龍雲齋’ 편액이 있으며 마루 벽에 ‘용운재 상량문’, ‘용운재기’, ‘원운’ 등이 있고 좌측 방 앞에 따로 ‘在田堂’ 현판을 걸어 두었다.
재사 아래 좌측에 조립식 판넬 하당이 있으며 재사 주변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담장 밖에 대문을 중심으로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배향인물: 순흥인 안씨 선대를 배향하는 재사이며 해마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기리고 있다.
◯연혁: 1964년에 건축했으며 1997년 경에 중수했다. 용전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







예전리에 대한 내용을 두 가지 소개한다.
1)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 박윤제)의 내용을 발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에 적암면(赤巖面) 지역이었으며, 1896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남면(中南面) 지역이 되었다.
용전 마을은 용당산(龍塘山) 앞에 큰 소(沼)가 있어서 용이 산다고 용호(龍湖)라 했다가 용전으로 바뀌었다.
예전리는 1832년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에는 용전리와 가례리로 따로 따로 표기되어 있고, 운문천 밖의 다른 곳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는 예전리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18년에 측량을 하고 나서 그려진 지도에는 가례동과 용전동이 표기되고, 예전동으로 크게 적혀 있다. 『속오산지』에는 가례와 용전을 합해서 예전동(禮田洞)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용전과 과목정 앞은 바로 강이 임해 있어서, 논경지가 전혀 없어 마을 뒤 산비탈에 밭을 일구어 과수농을 하고 있으나 가례동은 마을 앞에 경지 정리를 말끔히 마친 논이 있다. 그러나 벼농사에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어 대부분 대추나무나 감나무를 심어 경제 작물로 대체하고 있다.
2)청도군지(1991, 청도군)에 소개된 예전리(禮田里)는 다음과 같다.
덩치큰 용당산이 동창천까지 급경사를 이룬 기슭에 층층이 자리잡은 마을로 계천이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어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마치 벽에서 물이 타고 내리는 것과 같다. 동창천을 사이에 두고 1, 2里가 분리되어 있다. 2里는 안봉등에 안겨 있고 옆에는 하천이 앞에는 들이 펼쳐져 있어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한 마을이다. 1里인 용전(龍田)에는 시대는 미상이나 제주인 고해석 공이 입촌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조선초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고려왕조가 망하고 고씨 수난기 때 이곳 멀리까지 피해 온 것이라 믿어지기 때문이다.
과목정(果木亭)에는 전주 이씨가 입존했다는 것이다. 2里인 가례(嘉禮)에는 1500년초에 경주인 최영개 공이 입주 정착 했다. 그러나 이분들이 어디에서 이거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전(禮田)은 가례와 용전리를 합친 것이다.
용전(龍田)이란 마을 앞의 동창천에 깊은 소(沼)가 있어 이 소에 용이 살고 있다하여 용당호(龍堂湖)라 불렸다 한다. 또 흰 비둘기가 날아와서 용당호 바위에 앉았다가 어디론지 날아 간 후에 용은 등천하고 용당호는 밭(田)으로 변해 버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용당호가 밭으로 변했다는 것은 동창천 물줄기가 변한 것으로 믿어진다.
과목정(果木亭)에는 유실수(밤, 감, 배등)가 많고, 천변에는 정자가 있어 유래된 이름이라 하나 정자는 어떤 정자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례(嘉禮)는 예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고 가례(街禮)라 불렀으나 조선중엽 경에 전주인 이광규 공이 예절을 더욱 숭상하여 예의 범절이 잘 이행되므로 가례(嘉禮)를 동명으로 했다 한다. 그러나 각종 지리지에는 가례(加禮)로 수록되어 있다.
*참고
-관리문중 후손 면담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역주 오산지(2003, 청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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