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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행전  박영환

 

  2018년 2월 9일(목) 매전면 하평리 재실을 찾아나섰다. 하평리도 용산재, 계림재, 월강재, 무산재, 은산재가 있다. 

 

 

 

 

 

용산재(龍山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77번지. 모은정길 44-5 (몬담마을)

청도읍에서 국도 20호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곰티재와 매전면 사무소의 중간지점 왼편에 하평리 입구라고 적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모은교를 건너 700미터 정도 따라가다 보면 동쪽 산기슭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1미터 정도의 축대를 조성한 터에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3칸 규모(출입문, 디딜방앗간, 고방)의 평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팔작지붕 청기와 5칸 전퇴(마루 2, 온돌방 3,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세 살문, 쌍여닫이 세 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가운데에 재사 이름인 龍山齋 현액이 있으며 좌우에 조긍섭이 찬한 용산재 중건기’, 5세손 이영선이 근서한 용산재 상량문’ 6세손 이정보 등이 지은 선재 중성 유감 4편 걸려있다.  慕隱精舍 현액이 좌측 방문 위에 걸려 있는데 이 모은정사에서 몬담이란 동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문 맞은편에는 붉은 기와 3(온돌방 2, 주방1)의 관리사가 있으며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다. 전체적으로  자형이다. 이 재사는 여느 곳과 다르게 대문채에 디딜방앗간이 있으며 재사 정면 축대 앞에 400년이 넘는 꿀밤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향인물: 용산재 이기(李夔)

본관은 고성이며 자는 요장(堯章)이고 호는 용산재 또는 취선(醉仙)이다. 용헌 이원의 후예이며 모헌 이육의 후손이고 박즙송의 문하에서 수학한 도학자로 기개가 늠름하고 학행이 높았다. 용산서당에서 후학지도에 힘썼다.

 

 연혁: 1910년에 창건했으며 1928(무진)에 중건하고 2003년 경에 번와를 하는 등 중수를 했다.

재실, 관리사, 대문간 3동의 분동형 배치구성과 4칸 평면구성은 청도지역 재사의 보편적 체계이다.

 

 

 

 

 

 

 

 

 

 

 

 

 

오래된 꿀밤나무 

 

 

몬담마을 전경

 

 

 

 

계림재(桂林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91번지. 모은정길 12-10 (몬담마을)

청도읍에서 국도 20호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곰티재와 매전면 사무소의 중간지점 왼편에 하평리 입구라고 적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모은교를 건너 300미터 지점 동쪽 산기슭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1미터 정도의 축대를 조성한 터에 자리 잡았다. 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지붕 목조와가 4칸 전퇴(좌로부터 대청 2칸 온돌방 2)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 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자형 구조이지만 대청앞에 4분합들문을 달아 방풍을 한 것이 특징이다. 재사 정면에 재사의 이름인 桂林齋를 현액하였으며 대청에는 이영호가 찬한 계림재기와 응천 박성묵이 쓴 상량문이 걸려 있다.

우측에 우진각지붕 3(2, 부엌1) 와가의 관리사가 있다. 본채와 자형이며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계림처사 이만재이며 숨어사는 은덕지조(隱德之祖)로 추앙을 받았다.

  본관은 고성이다. 

 

 연혁: 1959년에 창건했으며 1990년 경에 중수했다. 이 재사는 원래 섶마리 어느 사랑채를 뜯어 와서 지은 것이기에 여느 재실 형태와 다른 점이 있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는 향사를 지내고 방학 때는 자녀들이 전통예절붓글씨한문 등 조상들의 삶을 체험하는 충효교실로 활용한다.

  몬담 마을에는 약 40호 중에서 25호가 고성이씨로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월강재(月岡齋)

 

 

 

관리문중: 김해 김씨

 

소재지: 매전면 하평리 1212(너불마을)

곰티터널을 지나 매전면 사무소로 가기 전 우측 200미터 지점 산등성이에 훤히 드러난 마을이 하평리 너불마을이다. 마을 북쪽 오래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정면 토함산을 바라보며 동북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정면에 세운 솟을대문 3(출입문과 고방2)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지붕 5칸 전퇴(대청2, 온돌방 3,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부연목이 있는 겹처마이며 3단 기단 위에 자연 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세살문, 쌍여닫이 세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과 방 사이의 문은 사분합들문이다. 정면 중앙에 재사의 이름인 月岡齋가 현액되어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김재화가 쓴 월강재기’, 권용현의 상량문’, 박효수가 근술한 월강재명이 있고 이종은 등이 쓴 월강재운’ 2편이 걸려 있다. 우측에는 3칸의 관리사가 있어 전체 구도는 자형이다. 대문 이외에 중문이 있는데 철대문이며 백일홍 등 정원수가 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기암(機菴) 김명하(金命夏)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중석(重錫), 호는 기암이며 호군(護軍) 낙안당 김세중(金世㑖)의 후손으로 절충장군, 첨지 중추부사, 가의대부로 증직되었으며 향년 97세로 졸하였다.

 

연혁: 1934년 창건되었으며 1983년에 이어 2015년 경에 강판기와로 번와하는 등 중수했다. 김해 김씨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집성촌이 된 것은 400년이 넘었다. 한 때는 34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일곱 집이 있다.

 

 

 

 

 

 

 

 

 

 

 

멀리서 바라본 너불마을

 

 

 

 

무산재(武山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632번지(수무동)

곰티터널을 지나 면사무소 쪽으로 가다가 몬담마을 입구로부터 약 500여미터 지점에서 좌측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이름 그대로 숨어 있는 마을에 있어 길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무산재는 마을 중간에 있다.

 

건물구조: 마을 가운데 남향으로 좌정했다. 전면에 있는 철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4칸전퇴(3 마루1, 중당협실형) 재사가 있다. 대청에 재사의 이름인 武山齋가 현액되어 있다.

2단 기단 위 자연초석 위에 네모기둥으로 벽을 치고 세 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우측에 3칸 관리사가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이광성(李光星)

본관은 고성이며 자()는 남로(南老)이고 모헌(慕軒) 이육(李育)의 수손으로사과충의위(司果忠義衛)를 지냈다. 그는 祖上의 슬기를 이어가고 후진들을 도와 나가는 참다운 선비로 숭앙받았다.

 

연혁: 1929(己巳) 십이월 초사일 창건했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은산재(隱山齋)

 

 

 

관리문중: 김해 김씨

 

소재지: 매전면 하평리 646번지(수무마을)

곰티터널을 지나 면사무소 쪽으로 가다가 몬담마을 입구로부터 약 500여미터 지점에서 좌측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이름 그대로 숨어 있는 마을에 있어 길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무산재 뒤편에 남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동쪽으로 난 평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팔작지붕 4칸 전퇴(대청1, 온돌방 3)의 재사가 있다. 시멘트 기단을 하고 자연초석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벽을 치고 쌍여닫이 세살문 등 창호를 달아 구체부를 구성했다. 정면에 재사의 이름인 隱山齋를 현액했으며 대청에 권용현이 쓴 은산재기와 박윤상 등이 쓴 운차  4편이 걸려 있다. 마당에 잣나무, 주목, 향나무, 모란, 백일홍 등의 조경으로 운치를 더했다.

 

배향인물: 은산(隱山) 김준복(金俊復)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은산이다. 호군(護軍) 낙안당(樂安堂) 김세중의 9세손이며 가의대부(嘉義大夫) 수증(壽贈) 절충장군(折衝將軍) 김명하의 증손이다. 모친이 병환이 나자 곪은 환부를 빨아 낫게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대성학원 포양완의문(褒楊完議文)을 받았다.

 

연혁: 1935년 김제광(金濟光)이 조부의 효경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2017년 강판기와를 번와하는 등 중수했다. 마당 우측에 하당 2칸이 있었으나 2017 10월에 뜯었다.   

 

 

 

 

 

 

수무동 전경

 

 

하평리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평리는 용각산에서 분기된 효양산 주봉과 자산이 마주보고 달리는 계곡의 관하천을 따라 동서로 형성된 마을이다. 모은정[몬담]이 본동이라 할 수 있는데 비교적 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수무동은 언덕 위쪽이고 길에서 보면 동네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숨어 있는 형태이다. 월촌은 산기슭의 경사도가 급한 곳에 위치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평동(坪洞)이었으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위쪽에 있는 마을을 상평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하평리로 분할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평동에서 분할되었다. 개편 당시 위쪽에 있는 마을을 상평리라 하고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하평리라 하였다.

  마을은 몬담, 수무동, 너부리, 가라골, 중방천, 박곡 등이 있다.

  수무동은 토함산[통내산]의 산줄기가 마을 앞에서 등성이를 만들어, 마을이 언덕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데 동네가 마치 숨어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숨어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수무동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6·25 전쟁 때는 난리가 난지도 모르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외진 마을이다. 옛날 보행으로 다닐 때는 특별히 마을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마을이 있는지도 모를 위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너부리는 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 옛 지명에는 월촌동(月村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라골[추곡(楸谷)]은 하평리에서 가장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서 가라골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옛날에는 가죽나무와 개오동나무가 많아서 가라골이라고 했다고 하기도 한다.

중방천은 하평리에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서 방천을 하였고, 그 방천 안에 있는 마을들 중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중방천이라 이름한다. 박곡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동네가 모두 비어 있는 골짜기이지만, 1944년까지만 해도 기록에 남을 정도로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이 마을은 매전면과 역사를 같이한 마을이지만 뚜렷한 기록은 없는 편이다. 동쪽으로 토함산이 있어 예부터 이곳은 소산현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하평리의 너부리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8호인 청도 하평리 은행나무가 있다.

 

청도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월촌(月村)은 산기슭에 경사도가 급한 곳으로 산기슭이라는 것보다는 산허리이라고 할 수 있다. 토함산록에는 무리(武里), 모은리(慕隱里), 자산록(紫山麓)에는 추곡(楸谷)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몬담, 모은정(慕隱亭)에는 1300년 중엽경에 제주 고씨가 입촌했다 하나 구전일 뿐 현재는 철성 이씨가 주종을 이루면서 동기를 굳혔다. 동명은 철성 이씨들이 조상을 존경하는 마음에 모은정(慕隱亭)을 축조한데서 비롯되었는데 모은정이 변하여 몬담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나 규명하기 힘들다. 다만 모은정에서 동명이 유래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무리, 추무리에는 경주 박씨가 1400년대에 입주했다고 한다.

 

수문동, 숨은동은 마을이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숨은 것같다하여 붙여진 설과 어떠한 난리가 나도 마을이 숨어 있어 피난할 필요도 없이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마을이라고 수무리(愁無里)로 표기되었다는 설이 있다.

 

가락골, 가라골, 추곡(楸谷)에는 철성 이씨가 임란 후에 입촌했다 한다. 그리고 인가가 일직선으로 길게 취락되어 실가락 같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묘기를 추곡(楸谷)으로 했다.

 

월촌, 광월리, 넓은월리, 너부리에는 1780년경에 밀양서 이거 김해인 김익경 공이 정착하여 오늘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마을 앞산인 자산(紫山)에 달이 뜨면 마을이 한층 넓게 보인다고 월촌(月村) 또는 광월리(廣月里)라 했다. 이는 지대가 심한 경사로 부근일대가 속속이 드러나지 않고 달밤이나 고저의 구별 없이 일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넓게 보이는 마을이라 하여 광월리로 표기하고 보니 발음이 잘 되지 않아 월촌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월촌이란 표기상 동명이고, 광원리는 "넓원리" 즉 널붤리라 하여 이를 부르게 쉽게 너부리, 너브리라고 부르고 있다.

월촌의 은행나무는 김해인 김세중 공이 식수한 것이라 한다.

 

참고 문헌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도주지(1958, 김석봉 편)

- 관리 문중의 파보

 

면담

- 고성 이씨 및 김해 김씨 후손,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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