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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 행전 박영환

 

  2018년 1월 30일(화)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의 재실을 찾아 나섰다. 관하리에는 강모재, 우계당, 추원재, 관하재가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신천재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강모재(講慕齋)

 

 관리문중: 경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1421번지. 관하2리 신천마을 입구 마을회관 옆에 있다.

건물구조: 3(출입문과 고방2) 규모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높은 축대위에 재사가 별도의 토석담장 속에 동향으로 좌정했다. ‘永生門이 현액된 중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팔작지붕 5칸 전퇴(온돌방3, 마루 2의 중당협실형) 건물이며 정면 중앙에 講慕齋가 현액되어 있으며 마루 벽에 二如’ ‘仁義 현액 및 13세손 이규호가 찬한 강모재 창건운’, 정기연이 찬한 강모재 중수기가 걸려있다.

 배향인물: 이원

본관은 경주이며 국당(菊堂) 이천(李蒨)의 후예이며 부사 이의의 손자이고 효행이 지극하여 특사정려(特賜旌閭)가 되었던 군수 이훈정(李焄靖)의 아들이다. 성현도 찰방을 지냈다.

연혁: 1882년에 창건되었으며 2000년경 중수했다. 경주 이씨가 신천마을에 입촌한 것은 약 400여년 되었으며 현재 32호가 살고 있다.

  

 

 

 

 

 

 

 

 

 

 

강모재 옆에는 마을 회관

 

 

 

 

우계당(友溪堂)

 

 관리문중: 경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관하2 1449-1, 신천마을 강모재 뒤 마을 뒤편에 있다.

건물구조: 4칸 대문(부엌, 1, 고방1, 출입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목조와가 팔작지붕 4칸 전퇴(온동방 3 옆 좌측에 마루) 재사가 동향으로 좌정했다. 좌측에 헛간(2)이 있다.

여강 이중구가 찬한 우계당기가 마루에 걸려 있다.

 배향인물: 이진오(李震五)

본관은 경주이며 국당 이천의 후예로 학행이 높아 사림에서 많은 추앙을 받았다.

연혁: 1935년 창건되었으며 원래 이곳은 이진호가 수학하고 강론하던 곳이었는데 그 뒤 화재로 손실된 것을 후손들이 새로 중건했다.   

 

 

 

 

 

 

추원재(追遠齋)

 

 관리문중: 경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216번지,

 건물구조: 관하1리 관하실 마을 뒤편 산기슭에 서향으로 좌정했다.

3(1, 고방1, 출입문) 규모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축대 위에 5칸전퇴(온돌방 3칸 마루 2)의 재사가 있다. 정면 중앙에 追遠齋가 현액되어 있으며 마루 벽에 포산(苞山) 곽창승(郭昌承)이 찬한 추원재 중건기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는 시들이 편액되어 있다.

우측에는 와가 3(3)인 모은정사(慕恩精舍)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 양옥건물 양화당(養和堂)이 있다. 마당에는 자갈을 깔았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이대수(李大壽)

본관은 경주이며 양주목사, 경주부윤, 대제학을 역임한 문강공의 증손으로 참봉을 지냈다.

연혁: 1896년에 창건하였으며 1998년에 본재 및 양화당, 모은정사, 대문 등을 새롭게 중수했다.(본재 수리 및 건물 신축 표성내역이 돌에 새겨져 있다.)

 

 

 

 

 

 

 

 

 

 

 

 

 

 

관하재(管下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 365번지

 건물구조: 관하1리 관하실 마을 뒷산 기슭에 서향으로 좌정했다. 3(고방2, 출입문)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와가 5(온돌방 3, 마루 2, 중당 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정면 중앙에 管下齋가 현액되어 있으며 조긍섭이 찬한 관하재기가 마루에 걸려 있다.

 

 배향인물: 이단(李湍)

본관은 고성이며 모헌 이육의 증손이며 자는 호원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의 자리에 있을 때 증조부 모헌 이육이 백형, 중형과 같이 무오사화에 피화되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은거하였다.

 연혁: 1865년에 건립한 이래 2013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관하1리는 고성이씨 집성촌이다.

 

 

 

 

 

 

 

 

 

 

 

 

보현사

 매전면 관하리 218에 소재하며 324 대지에 대웅전 및 요사채 2동이 있다. 신도수는 100명 정도 된다

 

 

 

선정비 - 원정자 마을 내 건너편 바위 위에 있다.

 

 

<원정자 마을 전경>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은 관하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관하리(館下里)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구미와 신천, 관하실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관하실 또는 관곡(館谷)으로 알려져 있을 뿐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1910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구미와 상방천의 표지는 없다. 1944년에 나온 속오산지(續鰲山志)에는 관하와 신천, 구미가 보이고 상방천에 관한 기록은 없다. 원정자에 관해서는 지도와 옛 문헌에는 없다. 그러나 현재 그 장소에 시장과 보건소 등이 있고 개울 건너에는 군수 선정비 2기가 있어, 기록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구미동(龜尾洞), 원정자(院亭子), 상방천(上防川), 신천, 관하실 등이 있다. 덕산리와 이어져 있는 구미동은 덕산리와 두곡리에서 내려오는 물이 크게 구부러진 곳에 있어 마을 이름을 구미라고 하였다. 원정자는 옛날 산동으로 가는 길에 원과 정자나무가 있어서 원정자라고 하였다. 상방천은 관하실 위쪽에 있는 마을로 방천을 막아서 물줄기를 돌려 농경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상방천이라 했다. 신천은 옛날 이사리에서 관하리 쪽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지금의 형태로 바뀌면서 신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시대에는 청도군 동상면의 지역으로 관하실, 관하곡, 관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천동을 병합하여 관하동이라 해서 종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매전면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8년 관하동에서 관하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왕산과 선의산, 용각산이 동··북으로 높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 트여 있으며, 구미와 원정자가 동서로 트여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로 넘어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는 관하리는 비록 골짜기이기는 해도 비교적 넓은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덕산리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관하천을 따라 상평리로 내려간다.

 

 청도군지에는 1550년 경에 경주인 이대수 공이 청도읍 정촌동(현 원정리)에서 이거 택리했다고 하며 그 뒤에 고성 이씨도 입촌하여 동기를 다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2리인 신천도 1580년 경에 경주인 이완(李玩)이 예천에서 이주했다고 했다. 아무튼 지금도 경주 이씨와 고성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 각 문중 후손 및 주민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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