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매전면 금천리/ 행전 박영환
2018. 1.30(화) 금천리의 재실을 찾았다. 이 마을은 경주 김씨, 밀성 박씨, 남원 양씨가 조상을 배향하는재실을 짓고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이다.



학산재(鶴山齋)
관리문중은 밀성박씨이며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 이살(이사야) 마을 1172에 소재한다.
동리 가운데에 난 골목길을 따라가다 3칸 대문(고방2, 출입문2)를 들어서면 시멘트를 한 마당 우측 축대 위에 강판기와 팔작지붕 4칸 전퇴(온돌방 3칸, 마루 1칸, 중당협실형) 재사가 동향으로 좌정했다. 전면 중앙에 ‘鶴山齋’ 현액을 했으며 김재화가 쓴 ‘학산재기’가 마루 가운데 걸려 있다. 대문 정면에 있는 하당은 방이 3칸이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재실 좌측에 화장실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시멘트 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은 밀성인 박사운(朴師雲)으로 충숙공 송은 박익의 5대손이며 졸당공(拙堂公) 박총(朴聰)의 현손이다. 통덕랑을 지냈다.
이곳은 밀성박씨 집성촌이며 후손들이 조상들의 유덕을 기리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박씨들은 이살에 5집, 조금 떨어진 마당(장상 - 場上)에 12집이 살면서 재사를 활용하고 있다.
1790년에 창건된 이래 1984년, 2013년 등 몇 차례 중수했다.



니양재(尼陽齋)
경주김씨 계림군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 이살마을 1087-6에 소재한다.
동리 뒤편 산기슭에 동향으로 좌정하여 전망이 좋다. 3칸 미닫이 대문(고방2, 출입문1)을 들어서면 좌측 높은 축대 위에 3칸 전퇴(온돌방1 마루1)의 재사가 있다. 정면에 ‘尼陽齋’가 현액되어 있으며 마루 벽에는 ‘니양재 상량문’ ‘니양재기’가 걸려있다. 대문 정면에 양옥으로 된 하당이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블록 담장의 축대가 높다.
배향인물 김헌(金憲)의 본관은 경주이며 계림군 제숙공의 8세손으로 자는 국필(國弼) 호는 종국(宗國)이며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을 지냈다. 현재 이 마을에는 경주 김씨들이 이 마을에 입촌한 것은 약 400년 전 정도 되며 계림군파 16호 상촌파 5호가 살고 있다.
1930년에 창건했으며 원래는 목조 대문과 목조와가 하당(3칸)이 있었으나 허물어져 하당은 2003년에 대문은 2015년에 새로 지었다. 재사의 기와번와도 2003년에 했다.






남원양씨(南原梁氏) 회관(會館)
관리문중은 남원양씨이며 매전면 금천리 1182-1에 소재한다. 이살마을 경로옆에 위치하며 높은 지대에 있어 전망이 좋다. 정면 3칸 규모의 대문을 들어서면 팔작지붕 4칸 회관이 있다. 목조와 와가의 혼합형으로 실용적으로 지었다. 남원양씨 병부공 밀직공파의 선조를 배향하고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에 전 종원들의 힘을 합쳐 건립했으며 이 마을에 남원양씨들이 입촌한 것은 약 300년 정도된다.




원모재(遠慕齋)
경주 김씨 상촌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 대밭밑 1004-1번지에 소재한다.
관하리와 금천리 경계 큰 도로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향이며 앞이 탁 트여 전망이 좋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와가 정면 4칸 전퇴(마루 2칸, 온돌방 2칸, 중당 협실형) 재사가 있다. 정면 중앙에 ‘遠慕齋’가 현액되어 있다. 재사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렸다.
배향인물인 김업은 본관이 경주이며 호는 여준(汝俊)이다. 조금 떨어진 이살마을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1876년에 창건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했으며 2003년에 대문채를 새로 짓는 등 크게 중수했다.





금천리(錦川里)
동쪽은 금천면 김전리·매전면 상평리, 서쪽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남쪽은 매전면 두곡리·관하리, 북쪽은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남산면 사림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부락 이름으로는 이사야, 가자곡, 장상, 잉애현이 있으며 오랫동안 밀양의 비입지로 있었다가 청도군으로 이관된 마을이다.
대왕산과 선의산 사이에 있다. 큰 골짜기를 이루고 있으나 경작지가 많지 않다. 마당 고개를 넘으면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으로 가는 길이 있고, 잉애태를 넘어가면 경산시 남천면 신방리로 해서 대구광역시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
금천에 대한 유래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마을은 이사야, 가자곡, 장상, 잉애현 등이 있다. 이살, 이사야는 금천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옛 기록은 이사야(伊士也)로 기록되어 있으며 개울을 중심으로 비탈진 곳에 자리하였으며, 동서로 형성된 마을인데 동쪽은 음지라 하고 서쪽을 양지라 한다. 가자골은 마을에서 아래쪽을 내려오다 왼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가 쪽에 있다고 가자골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당은 옛 기록에는 장상(場上)이라고 표기하였으며, 골짜기의 마지막 부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마당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애태는 잉애현(仍愛峴)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이름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없다.
이상은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 소개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청도군지에는 임란이 일어난 1592년 피난차 이곳에 온 풍천인 임이사 공과 온양 방씨가 이곳에 이르러 입주하게 되었다고 하며 임공이 이곳에 살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명을 이사리(伊士里)로 정했다는 데 확실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참고문헌
- 청도문화 (2001, 청도문화원)
- 청도군지(1991, 청도군)
- 디지털 청도문화 대전(집필자 박윤제)
*면담
금천리에 거주하는 각 문중 후손 및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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