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행전 박영환
2017년 1월 6일(금),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소재 경의재, 화산재, 일성재, 화양재를 찾았다.


경의재(景義齋)
◯관리문중: 의성 김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신당2리(이실마을) 592-3
각남면 사무소에서 풍각쪽으로 향하다가 좌측 이실길을 들어가면 동리 뒤편 산기슭에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 재사(온돌방 3칸, 마루 2칸)가 소나무와 대나무를 뒤로 하고 자리 잡고 있다. ‘경의재 상량문’, ‘경의재기’, ‘경의재 원운’ 등이 대청마루에 걸려있다. 대문채 옆에 양옥 관리동을 증축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 인물:김경원(金慶元)
본관은 의성이며, 태사(太師) 용비(龍庇)의 후손으로 남양 부사를 지냈으며 충북 괴산에서 청도 이실마을에 택거(擇居)하였다.
손자 김우인은 가산군수, 증손 김삼석은 부교위로 문학이 저명하였다.
◯연혁: 1982년에 건축했으며 2003년에 식당 및 관리동을 새로 짓는 등 중수했으며 조상의 유덕을 기리며 향사를 올리고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하며 후손들이 조상의 유풍을 익히는 교육 장소가 된다.
신당2리 이실마을은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








화산재(華山齋)
◯관리 문중: 달성 서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337번지
신당리(곽당마을)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층층이 겹쳐있는 산들은 첩첩이 연이어 좌우로 둘러 싸여 있어 옛날부터 조망이 그림같이 아름다워 명승으로 이름이 높았다. 넓은 들판을 지나 멀리 풍각까지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다.
◯건물구조: 주요건물은 화산재와 일사정이 있다. 화산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방 3칸, 마루 1칸이다. 재사보호를 위해 전면에 유리창을 달았다. 일사정(一士亭)은 2층 양옥누각이다. 그 외 하당은 3칸인데 방 2칸에 부엌 1칸이다. 일사정 옆에 ‘달성 서씨 곽당문중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배향인물: 동암 서경문(徐景汶)
본관은 달성이며 풍남(豊南) 서대건(徐大建)의 후예로 자는 질보(質甫) 호는 동암(桐庵)이다. 문경공 성담 송환기(宋煥箕), 경호 이의조(李宜朝) 등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1755년(영조 31년)에 태어나 향년 62세로 졸하였다.
◯연혁: 원래 동암 서경문이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화산재는 1780년에 건립되었으나 노후되어 1972년 4월 8일 중수 상량했다. 일사정은 1993년 10월 14일 기공하여 1994년 4월 3일 준공했다.








일성재(一誠齋)
◯관리문중: 달성 서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252
각남면 사무소에서 각남로를 따라 올라오다가 좌측 한재 방향 902호 지방도를 따라가다 좌측 첫 마을인 신당1리 경로당 옆에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재사(온돌방 2칸, 마루 2칸)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성재 중건기’가 마루에 걸려 있으며 재사보호를 위해 유리창문을 달았다.
잔디 마당에 사철나무 등 조경이 있고 재사 옆에 우물도 있으며 대문 옆에 보조관리사도 설치했고 주변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만각재(晩覺齋) 서유원(徐惟遠)
본관은 달성이며 선생은 죽계 서재겸(徐再謙)의 아들로 7.8세 어린 나이로 부모 곁에서 병환을 간호하고 8세, 12세 때 부친상, 모친상을 당하자 애통하고 비탄함이 어른들 같았다.
학문을 수학하는데 전념하여 특히 율곡 이이의 성리학 이통기국지설(理通氣局之說)을 이어받아 연구하여 학리를 세웠으며 우암 송시열이 유배지를 옮길 때마다 봇짐을 지고 따라가며 시를 바쳤다. 유고집이 있다.
◯연혁: 만각재 서유원의 유덕을 추모하고 후학을 강론하기 위해 창건된 재사로 1964년에 건축하였으며 2000년, 2015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신당1리는 달성 서씨 집성촌이다.




화양재(華陽齋)
◯관리문중: 창녕 성씨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가마실) 117번지
가말지 아래 산기슭에 무성한 대나무와 소나무를 뒤로하고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물구조: 3칸 규모의 대문(출입문, 방2)을 들어서면 우측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재사(온돌방 3칸, 마루 2칸)가 있다.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대문밖에는 별도의 영역에 관리사(방2, 부엌1)가 있다.
◯배향인물:
1)화남(華南) 성세린(成世璘)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종우(琮宇)이며 호는 화남이다. 문하시중 성송국(成松國)의 후예이며 승사랑(丞仕郞) 성원하(成元夏)의 아들로 각남면 신당리 가마실에 들어왔으며 문학과 덕망이 높았다.
2)남악(南萼) 성진교(成鎭敎)
성세린의 5세손으로 자는 경도(敬度) 호는 남악이다. 성균관 진사로 유학하여 태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수만언(數萬言)의 교훈과 문집이 있다.
◯연혁: 원래 1875년에 건축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화산재에서 내려다 본 신당리, 멀리 풍각이 보이고 있다>
신당리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조선 말까지 대구진 풍각현에 속했던 곳이다. 신당 1리는 1600년 말경 달성 서씨 서대건이 입촌하여 형성된 마을이며, 신당 2리는 1600년말 창녕 성씨 성세린이 입촌하여 세웠지만 이후 의성 김씨 김경원이 정착하여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
[명칭 유래]
신당리는 곽당과 가마실 그리고 이실을 합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가마실[신당] 마을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고려 때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두야보 부곡(豆也保部曲)으로 알려져 있다. 부곡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며, 향(鄕)·소(所)와 함께 군현(郡縣)의 임내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거주민은 군현민에 의해 신분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
이실[耳谷]은 이길원(梨吉院)이 있었던 자리로 지나는 과객들이 머물던 주막이 위치했던 곳이다. 조선 말까지 풍각현 현동면과 청도군 내서면의 경계 지역이었다. 이실 마을 입구에 엄목정이라고 해서 큰 느티나무 정자와 주막이 있었는데, 도로 확장을 하면서 옛 모습이 모두 없어졌다. 이실은 이길원이 있었고 전해지는 곳으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주막도 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대구군 초동면 지역에 속해 있었던 신당리는 1906년에 청도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부곡동과 내서면, 이곡동을 병합하여 신당동이라 하고 각남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1일 신당동이 신당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오산(鰲山)[남산]에서 내려온 산등성이가 신당리에서 멈춘다. 신당리는 산을 등지고 앉아서 서북향을 하고 있다. 신당리 서쪽을 흐르는 부곡천이 청도천을 만나면서 신당리를 감싸고 있다.
가마실과 이실은 산곡에 자리 잡고 있으나 곽당은 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들은 대부분 마을 앞에 형성되어 있고 경지 정리는 청도천 앞만 되어 있는 편이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2.803299㎡이며, 총 108가구에 221명[남자 92명, 여자 12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족은 각남면 예리리·구곡리, 서쪽은 각남면 녹명리, 남쪽은 각남면 사리, 북쪽은 이서면 가금리·구라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신당 1리와 신당 2리가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곽당과 가마실, 이실 마을이 있다.
인구에 비해 비교적 넓은 농지를 이루고 있다. 국도 20호선 동서로 지나고 지방도 902호선이 북 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방도를 따라 풍각 순환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신당 마을 위쪽에는 토기 요지가 남아 있으며 신라와 고려의 토기 조각이 산포해 있다. 신당 마을 농지 정리와 함께 발견된 신당리 고인돌 유적지에서는 간돌검과 화살촉 등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옥황상제가 천리장성을 쌓기 위해서 전국의 돌을 불러 모았는데 어떤 신선이 돌을 몰고 가다가 힘들어서 잠시 쉬는 동안 천리장성이 완성됨에 따라 그대로 주저앉아 이곳에 돌이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청도군지(1991, 청도군)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남산(南山) 서봉(西峰)의 여러 갈래 중에서 몇 줄기의 지봉들이 깊게 짧게 뻗어 우뚝 우뚝 선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들이다.
사촌천(沙村川)과 대산천(臺山川)이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신당(新堂)촌, 산등선사이 곡간(谷間)의 가마실(釜谷), 이실(耳谷)이 각각 나름대로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나 앞들에는 선사시대의 지석묘군이 있는데 경지 정리로 그 수가 줄고 있음이 애석하다.
신당(新堂)이란 1600년 말경에 달성인 서대건 공이 입촌하여 보니 곽당(藿塘)이라는 마을의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신당이 성해지자 곽당촌은 차차 쇠퇴하여 폐촌이 되어 지금은 동네 터가 밭으로 변해 있다.
가마실(釜谷)은 마을 주위의 산세가 가마솥(釜) 형국이라고 붙여진 이름으로 풍수지리상의 동명이다.
이실(耳谷)은 마을 양쪽의 산등선 모양의 사람의 귀(耳)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동명이라하나 그 전에는 이길(梨吉)이라 했다. 이길(梨吉)을 이곡(耳谷)으로 개명한 것은 이길원(梨吉院)이 있던 곳이라 원명을 그대로 동명으로 하는 것보다 동음인 다른 한자로 바꾸어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2리인 부곡에는 1600년말에 창녕인 성세린 공이 입촌 정착하여 동풍을 유교의 바탕에 두는 등 윤리관 정립에 수범적인 처신을 하였다. 이곡(耳谷)에는 1600년초에 피난 차 이곳에 머물던 의성인 김경원 공이 정착하여 마을을 가다듬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으므로 오늘의 이곡은 의성 김씨 마을이 되었다 한다.
1리 총 84호 중
달성 서씨 37호, 창녕 성씨 14호, 김해 김씨 6호 기타 27호
2리 총 41호 중
의성 김씨 25호, 해주 오씨 3호, 달성 서씨 3호, 기타 10호
신당에는 달성 서씨가 부곡에는 창녕 성씨가 이곡에는 의성 김씨가 주종을 이루어 각기 가문의 가풍을 견지하며 예를 숭상하고 있다.
이길원(梨吉院)지에는 당시를 증명해주는 고목이 남아 있어 여행객들의 인상 깊었던 술맛과 더불어 짙은 유영(遺影)이 되어 있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역주 오산지(2003,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 청도문헌자료집,2013, 청도문화원 향토사학회)
- 관리문중 후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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