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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각북 덕촌리의 효자각, 월천재

각북 덕촌리의 효자각, 월천재/ 행전 박영환

 

2017년 1월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소재 효자각과 월천재를 방문했다. 3일(화)은 효자각, 4일(수)은 월천재를 찾았다. 

 

 

 

덕촌리 효자각(孝子閣)

 

관리문중: 밀성 박씨

 

소재지: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510-2(각북면 헐티로 981)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각북면사무소에서 헐티재 방향으로 약 200m 정도 이동하면 길 우측에 비각이 있다.

 

건물구조: 비각은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일각문을 세워 출입하게 하였다. 비각의 양 측면과 배면에는 하부에만 벽체를 설치하였고, 전면은 개방시켜 내부의 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였다. 가구는 3량가의 이익공(二翼工)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비각 중앙에는 효자 밀양 박공지비(孝子密陽朴公之碑)’라 각자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배향인물 및 연혁: 박수철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밀양 박씨 문중에서 건립한 효자각은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2022년 5월 31일 모습
2017년 1월 4일 모습

 

월천재(月川齋)

  

관리문중: 밀성 박씨

소재지: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107번지

자연부락 이름은 지촌(枝村) 또는 각골[角谷)이라 불리는 곳이다.

건물 구조: 월천재는 1917년에 재용(在瑢), 유원(有元), 재우(在祐등 여러 종원들이 창건하였으나 세월의 흐름에 노후하여 2003년 태풍 매미 때 무너지고 말았다그 뒤 2015년에 결성된 중건 추위원회(위원장 복로총무 재곤)를 중심으로 전 종원들이 힘을 합처 2017정면 4칸 굳건한 팔작집으로 준공하게 되었다특히 이 재실은 종원들이 언제나 묵어갈 수 있도록 내부를 꾸미고 한 것이 여느 재실과 다른 특징이다.

  배치는 뒤편 월산을 등지고 마을을 향하는 남향이다. 평면은 마루 2칸 온돌방 2칸이며 앞쪽으로 툇마루를 놓고, 좌측 끝방 앞으로 누마루를 달아내어 전체적으로 자형(字形)을 취하고 있다. 누마루는 관송정(觀松亭)이라 현액 했으며  토석담장을 두른 재사 정면에 대문채(출입문 및 화장실1, 수납공간1)가 있다.

 배향인물:  박진재(朴振載, 16701730) 

공은 밀성 박씨 행산공파 13세손이다. 행산 세균(杏山 世均)은 고려조에 평장사(平章事)로 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군되었다. 10대조는 돈와 시예(遯窩 時乂)이다. 그는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할 때 청송부사(靑松府使) 벼슬을 버리고 밀양 고야산(현 단장면 고례리)에 숨어 살았다. 7대조는 칠원현감(漆原縣監) 채지당 구원(採芝堂 龜元)이며 증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이었던 양재 이문(讓齋 而文)이다. 조부는 선무랑 예빈시별좌(宣務郎 禮賓寺別坐)였던 종인(宗仁)이고 아버지는 3년간 시묘를 했던 긍재 상협(兢齋 尙協)이다.

후손 중 정재 정신(靜齋 廷臣)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였으며 벽파 재갑(碧波 在甲)은 효심과 행실이 돈독하며 조심재(曺深齋)와 이입암(李立庵)의 문하에 유학했다. 만강 재용(晩岡 在瑢)은 뛰어난 문학적 소양으로 사림에서 추앙받았으며 한말의 대학자 소눌 노상직, 경산 최시술 등 명사들과 교유했다.

 

 

 

 

건축모습

 

  덕산 마을과 지촌 마을을 합하여 덕촌리가 되었다. 1리인 지촌과 2리인 덕산은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마을 중 덕산 마을은 비교적 자주 찾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처가 이웃마을이기도 하거니와 용천사, 헐티재 대구로 가는 지방도 902호선이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각북면의 중심지에 해당되는 곳이다. 버스 종점이 있어 처갓집에 갈 때마다 장모님이 배웅을 하며 표를 끊어주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경로당에 들러 장인어른과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나누던 생각이 난다.

  덕산 마을 앞에는 비슬산 용천사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원한 개울이 있고 그 개울 건너에 이른바 똥뫼산이라 불리는 곳이 있고 이를 좀 순화시켜 독산(獨山)’이라고도 했다. 여기에서 덕산(德山)’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다음은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 소개된 이 마을의 형성과 변천이다.

  밀양부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의 마을 이름은 지동(枝洞)이라고 표기하고 갓말이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에는 지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1906(광무 10)에 대구군에서 청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재편 때 덕산동과 지촌동을 병합하여 덕촌동으로 하였으며 각북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덕촌동에서 덕촌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마을 동쪽으로는 삼성산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비슬산이 있다. 비슬산과 홍두깨산 사이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으로 오산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의 들은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경작지가 있다.

  행정리로 덕촌 1리와 덕촌 2리가 있으며, 점촌(店村)[점마]과 덕촌 마을이 있다. 점촌은 지실 또는 지슬(只瑟)로 불리는데 조선 시대에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는 곳이다.

대구를 잇는 각북 정대길이 연결되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전원주택지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다.

  마을 서쪽 산모퉁이에 무진대(無盡臺)가 있었는데 사인(士人) 박진이 축조하였다. 덕산 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 아래에는 저수지와 관련된 비석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효자비가 하나 있기도 하다.

덕촌 마을에는 무진대 앞에 군수 선정비가 2개 있는데 하나는 글씨를 전혀 판독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다. 덕촌 마을 한가운데에는 석불상이 많이 훼손된 채 길옆에 세워져 있고 정월 초에는 음식물을 훼손된 불상 앞에 놓기도 한다. 지촌 마을에는 아직도 성황당이 있으며, 남 성황과 여 성황을 따로 모시고 있다.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청도 방면 좌측에 덕산 초등학교가 위치하며, 독뫼산 옆 개울가에는 천연기념물 제29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덕촌리 털왕버들이 있다.

 

 

 

덕촌리 털왕버들

 

 

덕산초등학교 - 면소재지 각북 초등학교는 폐교 되었으나 덕산초등학교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이는  이 근처에 마을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청도군지에 소개된  덕촌리(德村里) 유래는 다음과 같다

 

 

  우미산(牛尾山)은 보기에도 우람하게 동에서 반공(半空)에 솟아 달성군(達城郡)의 근접을 막고 있으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지슬천과 오산천이 합류하는 관계로 개천돌이 많은 지층을 형성하였고 남()만 약간 열려 있으나 분지 평야가 평평하게 전개되어 본 면의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리인 덕촌에는 1600년경에 경주인 배태룡 공이 입촌하여 마을의 터전을 닦으면서 마을의 융성을 도모키 위해 전력을 했다는 것이다. 2리에는 1500년 중엽에 밀양인 변수철 공이 입주하고 마을을 열어 나갔다는 것이다.

 

각곡(角谷), 지촌(枝村)

  배태룡 공이 동명을 정하고자 주위를 살펴보기 앞산의 형태가 짐승의 뿔과 흡사하므로 뿔골 즉 각곡(角谷)이라 정했으나 차차 세월이 흐르자 마을 주변에 숲이 우거지자 지촌(枝村)으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점마, 점곡(店谷), 점촌(店村)

  조선시대 옹기를 굽던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유황도 제조하였으나 자원의 고갈로 100여 년 전에 현재의 우산동으로 이전해 갔다는 것이다. 도요지는 밭이 되고 수헌(數軒)이 아직도 남아 당시의 잔영을 남기고 있다.

 

독산(獨山), 덕산(德山)

  변수철 공이 처음 정착하여 보니, 마을 앞에 홀로 떨어져 있는 독산(獨山)이 하도 묘하여 동명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산보다는 덕산이 좋을 것 같아 덕산으로 개명을 했다는 것이다.

 

 

독산(獨山)의 과세(課稅)

  독산이 달성군의 비슬산에서 분리되어 날아와 마을 앞산이 되었다고 하여 현풍면에서 산세(山稅)를 징수하러 옴으로 수년간 부담했으나 박씨가 번창 득세하면서 독산을 현풍면으로 옮겨가라고 하자 이후부터 독산의 산세를 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참고

- 청도군지(1991, 청도군)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도주지(1958, 김석봉 편)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헌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중 종원 면담

- 월천재 도목수 박손잠(이서면 서원리)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