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 월봉리의 묘봉재, 모선재, 학강재/ 행전 박영환
2017년 1월 4일(수) 오후 차산 마을을 답사하고 난 뒤 이어서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를 찾았다. 고향 마을 사람들 중에 묘봉댁과 월산댁 등이 있어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봉리는 천왕산 바로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산서 지역에서는 가장 골이 깊은 곳이라 알려져 있는데 과연 동·서·남쪽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겨우 북쪽이 열려 있는 상황이었다.
묘봉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주민 한 분을 만났는데, “이곳의 산세가 정말 묘하지 않습니까. 봉우리마다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서 유명하다는 가문의 산소가 봉우리마다 자리잡고 있습니다.” 했다.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아도 명당 터가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들린 곳이 묘봉재이다.


묘봉재(妙峯齋)
◯관리문중: 밀성 박씨
◯소재지: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 698번지
월봉 2리 마을 입구에서 동리 안길을 들어서면 200미터 지점에 푸른 대숲을 배경으로 아늑한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3칸 솟을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칸 규모의 재사(온돌방 3, 마루1)이 있다. 동재는 3칸이며 서재는 양옥기와집 2칸이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고 시멘트 블록담장을 둘렀으며 대문 옆에 철문을 단 중문도 있다. 마루에 ‘묘봉재기’가 있고 특이하게 묘봉재 보존회 임원 명판‘을 설치했다. 마당에 ’헌성비‘가 있다.
◯배향인물: 박중미(朴中美)
본관은 밀성이며 밀양 박씨 12중조(中祖)의 한 사람이다.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등제하여 중서령(中書令)과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했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국경을 건너와 괴수 모거경(毛居敬)이 서경까지 침입하였을 때 안우·정세운,이방실, 홍언박 등과 함께 적을 크게 물리쳐 난을 평정하였다. 이에 보리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를 제수받았고, 밀직 부원군(密直府院君)에 봉해졌다.
묘소는 월봉동 묘봉에 있었다. 묘 입구에 밀직 부원군 사패지란 표석이 있었다고 전한다. 실묘하였으나 후손들이 묘지석을 찾아 수호 봉안하고 있다.
◯연혁: 1932년에 박중미의 묘재로 건축했으며 2010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고 최근 2016년에도 함석기와로 번와했다.




다음 들린 곳은 모선재이다.


모선재(慕先齋)
◯관리문중: 밀성 손씨
◯소재지: 청도군 풍각면 월봉2리(묘봉) 710 번지
월봉리 입구에서 서쪽 300미터 지점, 저수지 아래 오른쪽 언덕에 있다. 뒤에는 대나무 숲이고 정면에는 기이한 봉우리인 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구조: 전면에 세운 1칸(양옥기와)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의 재사가 있다.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에 붙여 기단을 올려 누각 한 칸을 별도로 배열했다. 양옥슬라브 관리동 한 채도 있다. ‘모선재기’, ‘경차 모선재운’ 등 여러 유림들의 글들이 대청에 걸려 있다. 마당에 큰 향나무가 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손성운(孫聖運)
본관은 밀성이며 자는 일노(一怒)이다. 진사 손태보의 9세손으로 창녕에서 청도 월봉으로 들어와 정착 시거하였으며 자연을 벗하며 생활하는 속에 덕행이 높아 주변에 칭송이 자자했다. 묘는 풍각면 묘봉 동쪽에 있으며 밀성인 손석유(孫錫惟) 찬기문(撰記文)이 있다.
◯연혁: 1943년에 건축했으며 그 이후 몇 차례 중수했다.
밀성 손씨들이 묘봉마을에 정착한 것은 약 200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학강재이다.


학강재(鶴崗齋)
◯관리문중: 전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풍각면 월봉1리(거망마을) 253번지
◯건물구조: 학산을 뒤로 거망마을을 향해 자리 잡고 있으며 시야가 넓어 전망이 좋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 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칸 재사(온돌방 3칸, 마루 1칸)가 있다. 마루에는 ‘학강재 중수 서’, ‘학강재 소식’, 등 유림들의 여러 시문이 걸려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큰 은행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토석담장 앞에 하당(3칸)이 있다.
◯배향인물: 이경행(李敬行) [1591년(선조 24년) - 1642년(인조 20년), 향년 52세 졸]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숙경(肅卿)이다. 운천군 이연의 5세손으로 인조 때 선전관을 지냈다. 증조 이연(李衍)이 남하하여 달성군 산격동에 복지(卜地)하였는데 그가 다시 청도로 들어와 풍각 변월산에 정착 시거했다. 묘는 풍각면 월봉동 장등(長嶝) 오좌 오좌(午坐)에 있다.
◯연혁: 1931년에 건축한 이래 1985(乙丑)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현재 월봉1리에는 전주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30여호 살고 있다.










<저수지에서 바라본 묘봉 마을>

<저수지 뒤로 묘한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묘봉은 산봉우리가 묘하게 생겨서 묘봉이며, 요봉이라고도 한다. 묘봉의 쪼끔당산은 우리나라의 명당을 설명하는 책마다 등장하는 산으로, 워낙 뾰쪽하게 생겼기 때문에 촉금당(燭金堂), 족금당(足禁堂), 촉금당(鏃金堂)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의 위치는 천왕산(天王山)에서 동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곳이다. 명당이라고 알려져서 명당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머리만 묻는 투장을 하거나 몰래 시신을 묻는 도장(盜葬)을 하기도 하였다. 이곳에 투장을 하면 가뭄이 들어서 덕양 마을 사람들과 대산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을 지냈다.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왔으므로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해거리로 이곳에 기우제를 지냈다.

본래 풍각현의 지역으로 고려 시대에는 밀양 도호부에, 조선 시대에는 대구부였다가 1895년(고종 32)에 청도군 이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월산동과 묘봉동을 병합하여 월봉동이라 하고 풍각면에 편입하였으며, 1988년 월봉동에서 월봉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남쪽 천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묘봉과 거망을 거쳐 차산으로 흘러 차산 마을 끝에서 풍각천과 합류한다.
동쪽은 풍각면 차산리· 덕양리· 각남면 옥산리, 서쪽은 풍각면 안산리·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가복리, 남쪽은 청도면 두곡리, 북쪽은 풍각면 흑석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월봉 1리와 월봉 2리가 있으며, 월산과 묘봉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위쪽에 자리한 마을은 묘봉이고 중간이 거망이다.

거망은 월산이라고도 하고, 위에 있다고 해서 상월산이라고도 한다. 차산리와 가까이 있는 아랫마을은 하월산이다. 월산 마을은 1500년경 전주 이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학강재에서 바라본 월산 마을>
한편 청도군지에는 월봉리(月奉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마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600고지의 묘봉산과 천왕산 연봉들이 사면으로 둘러져 있고 오직 동북의 차산리 쪽으로 가는 띠처럼 열려 있다. 이 산봉우리 사이에 열려 있는 좁은 골짜기들과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들이다.
묘봉산, 천왕산 모두가 경사가 급하고 산세 또한 험한 편이다. 묘봉에는 옛날부터 명당 자리가 많다는 구전처럼 주위 산들이 묘하게 생겼다. 월산1리에는 1500년경에 금녕 김씨가 거주했다 하나 상세히 알 길이 없고 얼마 후에 전주 이씨가 입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묘봉 2리에는 1500년대에 안동 천씨가 살았다는 구전뿐이다. 후에 밀양 손씨와 나주 임씨가 거주하게 되었다.
월산(月山), 거망(擧綱)
마을의 뒷골의 형국이 어곡(魚谷-어실)이라 고기가 물을 찾아 떠나면 마을의 존속도 이루지 못하고 마을의 지기가 고기를 따라 흘러버려서 마을이 망한다는 풍수설에 따라 고기를 거물로 잡는다는 뜻으로 거망이라 부르게 되었으나 후일에 전주인 이표규 공이 동명을 다시 개명해야 되겠다고 마을의 자연을 두루 살펴본 결과 달을 닮은 산봉이 있음을 보고 달뫼, 즉 월산(月山)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하월산(下月山)
이 마을은 본 마을보다 늦게 월산마을 어귀인 아래쪽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정월 보름날 밤에는 달산에 올라 달맞이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달과 같이 놀았다고 한다. 묘봉 2리는 주위 산들이 기기묘묘해 그 이름이 풍수설에 다라 허다하다. 예를 들면 동에는 양지(陽地), 음지(陰地), 두전등(豆田嶝), 치곡(雉谷), 중곡(中谷), 남에는 이곡(梨谷), 서로는 북발등, 살매등, 안봉등, 갑곡(甲谷), 장등(長嶝), 단등(短嶝) 등이 있다. 열거할려면 끝이 없다. 이와 같이 산세와 지형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많은 것은 풍수설에 따른 지명으로 명혈(名穴)과 명당(明堂)이 많아서 산이 묘하다고 하여 묘봉이라는 동명을 붙였다 한다.
족금당(族金當-조금당)
천왕산봉에 있는 명당자리로 이 자리에 묘를 마련하면 본인은 당귀(當貴), 수(壽)를 구비할 수가 있다고 하여 때때로 암장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곳에 암장을 하면 마을에서는 한해가 극심하므로 동네 사람들이 족금당에 와서 묘를 파면 곧 비가 내린다고 한다. 또한 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뭄이 심하면 이 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고 횃불을 올리면 2,3일내로 효험이 있어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명당에서 기를 받고 나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아 기분좋게 마을을 벗어났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택리지(1978, 최장영외)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각 문중 후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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