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각남면옥산리
행전 박영환
2017년 1월 5일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를 찾았다. 이곳에는 혼천재, 영귀루, 영모재, 옥천재, 우모재, 거산당, 열각, 대산사, 대산교회 등이 있다.


혼천재(混泉齋)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479-1에 소재한다. 대산사 가는 길 지방도로에서 좌측 옥산1리 방향 30미터 지점이며 옆에는 마을 체육시설이 있으며 바로 뒤에는 영귀정이 있다. 원래 동리 뒤편 산기슭에 1939년도에 지었으나 노후로 인하여 1999년 3월에 철거하고 2001년 5월, 현재 자리(옥산 1리 동리 안)에 신축 착공하여 2003년 8월에 혼천재 및 부속 건물을 완공하였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단 석축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웅장한 목조와가 재사(대청2칸, 온돌방3칸)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리기둥이며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고 석축담장을 높게 둘렀다. 대청마루 벽에 ‘혼천재 중건기’, ‘혼천재 상량문’, ‘혼천재기’ 및 유림들의 시문이 걸려있으며 자갈을 깐 마당 서편에 ‘혼천재 이건 표성록’이 있다. 동쪽에 관리동(양옥기와집)이 있고 서쪽에 중문이 있다.
전주인 남은(南隱) 이석(李晳)의 재사이다. 선생은 창성대부 해양부정 이우의 현손으로 학문을 즐겼다. 광능참봉 및 통진현감, 영평 현감을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기고 향년 62세로 졸하였다. 옥산1리는 전주 이씨 집성촌이다.








다음은 영귀정입니다


영귀정(詠歸亭)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53에 위치한다. 대산사 가는 길 지방도로에서 좌측 옥산1리 방향 30미터 지점이며 옆에는 마을 체육시설이 있으며 바로 앞에는 혼천재가 있다. 1940년에 건축되었으나 건물이 노후하여 2004년에 새로 신축하였다. 전면에 세운 대문(2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3칸 측면 1칸의 재사(마루1, 온돌방 2)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리기둥이며 툇마루 앞에 재사 보호를 위해 유리창을 달고 시멘트 블록담장을 둘렀다. ‘영귀정기 및 상량문이 있다.
전주인 만우헌(萬愚軒) 이회규(李會圭) 가 수학하고 강학하던 곳이다. 그는 해양부정 이우(李優)의 후예로 강학할 영귀정을 지어 절의와 단정한 모습으로 살았다. 저서에는 유집인 ‘경전강의록(經傳講義錄)’이 있다.
다음은 영모재입니다.


영모재(永慕齋)
청도군 각남면 옥산1리 129번지에 소재한다. 옥산리 1리 마을 가운데 있으며 남향이다. 원래 1915년에 건축했으나 공자 탄강후 2516년 을사 11월 21일(1965년)에 새로 중건했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대문(출입문, 수납장1, 화장실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3칸 규모의 영모재(마루1, 방2)이 있다. 마루에 ‘영모재기’가 걸려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전주인 만괴(萬傀) 이득재(李得裁)의 강학지소이다. 남은 이석의 증손이며 학문을 즐겨 수학하고 학행하여 많은 문인들이 있었는데 그 문인들이 합심하여 서실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옥천재입니다.


옥천재(玉川齋)
청도군 각남면 옥척길(옥산 1리) 73-3에 있다. 대산사 가는 지방도로를 따라오다가 우측 500미터 지점 옥척마을 산기슭에 동남향으로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뒤에는 산이 둘러싸고 앞에는 들판을 굽어보고 있어 시야가 넓고 전망이 좋다. 원래 1960년대에 건축했으나 건물이 노후하여 철거하고 1999년도에 새로 신축했다.
부암공 서석경(徐錫璟)과 그 아들 대갑(大甲) 대해(大海), 대익(大翊)을 배향한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 목조와가 재사(마루2칸, 온돌방 3칸)가 있다.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으며 대청에 ‘옥천재 중건기’, ‘옥천재기’가 걸려 있다. 재사 서쪽에는 관리실(양옥)이 있고 동쪽에는 ‘청남처사 달성 서공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하당은 방이 3칸이다. 마당은 자갈과 보도블록으로 마감했으며 높은 석축담장을 둘렀으며 대문 주변에 사철나무 등으로 조경을 했다.
조상들의 유덕을 기리며 시사를 올리고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방학 때는 자녀들이 조상의 유풍을 익히는 예절, 충효교실로도 활용한다.


옥천재기
옛날 나의 종선조 부암공 석경(錫璟) 삼자를 두었으니 大甲 大海 大翊 이니 나의 칠대조 풍남 옹과 종부 형제분이 됨이라. 풍남옹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근심과 통한을 머금고 달성으로부터 태령 남쪽 곽당에 정착하여 근검 자력으로 엄중한 마을로 자립하여 그 누속을 퇴치하였으니 실은 우리집 두 곳 모인 장소인지라 대갑, 대해, 대익이 옥척마을에 복거하니 조석으로 왕래할 거리이며 그 지형이 두루하여 비옥하고 농경에 알맞아 해를 지나도 밖에 나가지 않고 여가에 독서하며 효우에 독실하며 학암선조와 구암 선조의 유덕을 지어 죽계 선조 만각 선조의 의범을 닦아 가난하고 천할지언정 非義에 빠짐이 없으니 이른바 천민의 낙에 낙이 않던가?
이제 그 후손은 비록 옛을 전함이 있으나 혹은 벼슬에 나아가고 혹은 배움에 놀아 노손이 스스로 거두어 점점 번창함이 않으리까. 대개 덕을 닦지 않고 하늘에 책보하는 자는 심지 않고 수확을 바라는 것 같도다. 여러 종인들은 선조의 끼친 뜻으로 다함께 함심하여 재목을 구임하여 두어 칸 정사를 옥척 남쪽에 세워 준공하여 재호를 청함에 옥천재라 하였을 뿐이다. 또 그 기문을 청하니 인해 입재의 뜻을 말함이니 말하건대 부암공 이상은 분묘가 대구에 있어 일년 일차 제사하오매 반드시 제관을 정하여 향과 축문을 갖추어 보낸 관례가 이미 계획이 되어 있고 그에 미치지 못한 일은 계획을 기대할 뿐인즉 이것이 입재의 대자라. 내가 듣건대 스스로 울분한 감을 금하지 못하와 드디어 늙어 쇠약한 몸이나마 이를 써서 이제나 이 뒤의 자손된 자에 알리 노라.
기유 5월 단양절에
방예손 주현 기




다음은 우모재입니다.


우모재(寓慕齋)
각남면 옥산리 28번지에 있다. 녹명길을 지나 신기길을 따라가다 보면 옥산리 마을입구 도로변우측에 인접하여 있다. 주변에 옥산 공동 집하장, 정미소와 대산교회가 있다.
1980년에 건축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동쪽에 위치한 철대문을 들어서면 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 재사(마루 2칸, 온돌방 2칸)가 있다. 두리기둥이며 툇마루가 있고 하당은 ‘ㄱ자(字)집’이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철성인 대수헌(大修軒) 이개(李漑)의 재숙지소(齋宿之所)이다. 그는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현손이다. 경전에 통달하였으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했고 부모상을 당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시묘살이를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여 향인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다음은 거산당입니다.


거산당(居山堂)
청도군 각남면 옥산2리(윗 대산) 812-1에 소재한다. 대산2리 서쪽, 대산저수지 옆 높은 언덕에 있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1920년에 지었으며 1995년(乙亥)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 대문(출입문, 방1, 수납공간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 동향 재사(마루 2칸, 온돌방 3칸)가 있다. 마루에 ‘거산당 중건기’ ‘거산당 중건 상량문’ 등이 있다. 관리실은 3칸이며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고 블록담장이다. 뒤편에 대나무가 무성하다.
진주인 거산 강재호(姜載浩)가 강학하던 곳이다. 그는 통정 강준백(姜准伯)의 후예로 거산당을 짓고 스스로 수학하여 문행이 바르고 명리를 좇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거산진유(居山眞儒)라 하였으며 유고집이 있다.




다음은 열각입니다.


강재호 처 열부 완산 이씨 열각
청도군 각남면 옥산2리 947(웃 대산)에 소재한다. 대산사로 올라가는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대산 저수지 좌측 산기슭이다. 1898년 강재호(姜載浩)의 처인 완산 이씨(完山 李氏)의 열행을 칭송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바로 뒤편에 강재호(姜載浩)가 강학하던 거산당이 있다. 1
비각은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비각 전면에 ‘烈閣’이라 흰 바탕에 적어서 걸어두었다.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앞에는 일각문을 세워 출입하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3량가의 2익공(二翼工)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비각 내에는 ‘사인 진주 강재호 처 열부 완산 이씨지비(士人晋州姜載浩妻烈婦完山李氏之碑)’라 음각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1958년 전석봉(全石峯)은 그가 편찬한 향토사적 도주지(道州誌)에 진사 한산 이경구가 찬한 ‘열녀 행실기’를 옮겨놓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강재호의 처 완산 이씨는 이진반의 딸이다. 남편이 일찍 죽자 봄, 가을로 남편의 새옷을 짓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이일을 평생 동안 하였다. 이씨 부인은 1815년(을해)에 출생하여 1898년(무술), 83세에 졸하였다. 이에 유생들이 천고에 없는 열부라 칭송하며 진정서를 내어 비를 세웠다.

다음은 대산사입니다.


대산사는 2016년 12월 23일 방문 사진입니다.
대산사
○소재지: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170
○주요건물: 원통전, 무애당, 칠성각, 산령각, 요사채 등
○연혁: 대산사는 옛날에는 용봉암 또는 용봉사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신라 흥덕왕 5년(83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오나 확실치는 않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목지국(目支國)에서 남해상에 표류해온 천수관음 불상 3구가 있었는데 이중 1구는 청도 운문사에 봉안하고 또 1구는 간 곳을 알 수 없으며, 나머지 1구를 대산사에 봉안하여 용봉사(龍鳳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고, 천수관음불상은 왜적들의 도적질이 두려워 땅 속에 묻었는데, 그 사실을 안자가 고철로 팔려는 생각에 불상을 파내던 도중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란 후에 불상을 파내어 법당에 다시 봉안하였는데, 고종 13년(1876) 왕후의 꿈에 부처님이 현몽하여 많은 시주를 하고 절을 중건하였다. 그후 다시 의문화상(義文和尙)이 중수하여 대산사라 개칭하였다. 이후 여러 번 수리하여 보존되었으나 1930년 일제강점기에 또다시 야습한 도적 때들의 방화로 법당은 사라지고 불상은 반소된 것을 봉안해오다 주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여름 사찰경내 밭에서 발견된 천수관음불상 수인에서 용봉사의 내력을 느낄 수 있다.
○돼지탑의 내력: 월은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새들이 많은 곳이다.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로 오르는 산길은 뱀의 모양과 흡사하다. 아마도 이러한 산의 형상 때문인지 제비알을 훔쳐가는 뱀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뱀을 쫓기 위해 월은산에 소재한 대산사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지대석을 멧돼지 형상으로 만든 돼지탑을 조성해 놓아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이 탑은 1950년경에 조성해 놓은 것으로 어른 키보다는 조금 더 큰 석탑이다. 네모난 자연석 위에 이층기단과 2층탑의 형상으로 갖추고 있는데, 기단의 네모진 자연석 모서리에 멧돼지를 조각하였는데, 그 형상이 부릅 뜬 눈과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매우 해학적이다.



다음은 대산교회입니다.


대산 교회
각남면 신기길 32번지(옥산리)에 있다. 지방도 30, 신기길을 따라가다 보면 옥산리 마을입구 도로변에 인접하여 있으며 주변에 정미소가 있다. 1956년 설립되었으며 1998년도에 새로 신축했다. 본당과 사택, 교육관 등이 있다. 533㎡에 신도수는 50여 명이다.

<옥천재가 있는 마을>
옥산리
옥산리는 대산(臺山)과 옥척(玉隻)에서 따 온 것이다. 옥산리는 밀양과 대구를 거쳐 청도로 옮겨온 풍각현에 속해 있던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각남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옥산동에서 옥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3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자연부락으로 위쪽의 상옥산, 아래쪽의 하옥산, 새로 터를 잡았다고 신기가 있다. 또 옥척(玉隻)이 있는데 이 마을의 산세 형상이 소(牛)가 누운(臥)것과 흡사하여 처음에는 우척(牛尺)이라 하다가 그 뒤에 땅이 비옥한 길지(吉地)이기에 옥척으로 고쳤다 한다. 그리고 오리밭이란 이름은 지형이 묘하게도 베틀과 비슷하여 베를 짜려면 실과 바다가 있어야 함으로 오리바다라 하다가 뒤에 오리밭으로 되었다고 한다.
상옥산에서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로 넘어가는 통서재[통시재]가 있다. 지금은 왕래가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밀양 청도면 지역이 청도 땅이었고 면 이름도 그 때는 청도군 외서면이었기에 주요한 통로였다. 재를 사이에 두고 양쪽 지역에 혼사도 많았는데 신부의 가마나 신랑의 말이 지나가기도 했으며 청도 향교에 출입을 할 때도 이 길을 넘어 다녔다.
학생들이 많을 때 이 마을에 대산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인구 감소에 따라 1999년 폐교되었으며 지금은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로 개조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상옥산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68호 청도 옥산동 토기 요지가 있다. 이 토기요지에서 발견된 토기는 4∼5세기의 토기로 가야형 토기와 원삼국 시대의 토기라고 한다.
천주사(天柱寺) 절터로 알려진 천지의 전설도 있다. 승려들이 본분을 잊고 나쁜 짓을 일삼자 하늘이 노하여 빈대를 들끓게 하여 더 이상 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천지에는 이름도 요상한 ‘시발 바위’가 있는데 승려들이 이 바위 동굴에서 부녀자를 폭행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흐르는 장군수를 마시면 장군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사용하던 '공 부자 우물'이 있는데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이 우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뚜껑을 열고 물을 퍼 올리는 순간 쇠그릇 소리가 나면서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원래대로 덮어버렸다고 한다.
상옥산 마을에서는 마을 입구에 있는 장군 바위 동제를 올린다. 장군 바위는 상옥산 마을로 향하는 도로변 왼쪽에 위치한다. 높이 4m, 너비 7m 정도의 큰 바위다. 장군 바위의 마을 방향 안쪽에는 신주를 모셔 두는 장롱인 감실이 높이 70㎝, 너비 1m, 깊이 40㎝ 정도로 조성되어 있다. 제는 이곳에서 올린다.

<거산당에서 내려다 본 정경>


<대산사에서 내려다본 저수지>

*참고문헌 및 자료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디지털 청도문화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
달성 서씨 감찰공파 파보
*면담
전주 이씨 이기호, 이기춘 님외 각 재실의 후손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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