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풍각면 흑석리의 석강서원 및 재실
행전 박영환


한해도 저물어가는 2016년 12월 29일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를 찾았다. 흑석은 1리인 본동과 석통, 2리인 안국동이 있다. 본동과 석통은 초행이지만 이 중에 안국동은 고조모의 산소가 있는 곳이라 일 년에 몇 번은 성묘를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안국동’이란 이름 보다 ‘모개동’이라고 했다. ‘모개동’은 ‘목과동(木果洞)’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안국동은 밀양 박씨 행산공파 입향조인 안국암(安國巖) 박대성(朴大成)의 호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 마을에 남원 양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석통 마을은 차산리와 등을 맞대고 있다. 이 마을에는 아직도 고인돌이 13기 정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흑석은 이름이 의미하듯, 검은 돌, 즉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옛 기록에는 금물석(今勿石)이라고 쓰고 있다.
우선 본동을 찾아 석강서원, 보강재, 동산재, 열녀비각 그리고 불광사와 흑석교회를 찾은 뒤 석통마을의 경석재, 옥산재를 거쳐 안국동의 안강재를 방문했다.


석강서원(石岡書院)
◯ 관리문중: 밀성(密城) 박씨 행산공파(杏山公派)
◯ 소재지: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380번지
◯ 건물구조: 밀성 박씨 집성촌인 흑석1리 안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왼쪽 산기슭 무성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좌정했다.
주요건물은 석강서원 4칸(마루 2, 방 2), 석강재 4칸(방3, 마루1), 솟을대문(출입문, 방 1, 화장실1), 별도의 출입문인 중문과 식당이 있다. 마당은 자갈을 깔았으며 주변에 담장을 둘렀다. 강당 뒤에는 별도의 영역에 내삼문(內三文)인 위정문(衛正門) 안에 연화와 봉두로 장식한 맞배지붕 3칸 구인사(求仁祠)가 있다.
강당에는 ‘석강서원기문’, 이 2개 있다. 이가원과 김황이 쓴 것이다. 석강재에도 ‘석강재기’가 2개 있다. 김재화와 송재성이 쓴 것이다. 석강재 앞에 ‘석강서원묘정지비(石岡書院廟廷之碑)’가 있다.
◯ 배향인물: 오졸재(迃拙齋) 박한주(朴漢柱)와 망헌(忘軒) 이주(李冑)를 매년 3월과 9월에 향사하는 사우이다.
1)오졸재 박한주(1459 ~1504)
본관(本貫)은 밀성(密城)이며 자(字)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迃拙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행산(杏山) 박세균(朴世均)이며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郞) 박돈인(朴敦仁)으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16년, 乙巳)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급제하였다. 전생서 직장(典牲署直長)에 제수된 뒤 한성부 참군·사헌부 감찰을 거쳐 1491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후 성균관 전적을 지냈다.
1493년(성종 24년) 부모 봉양을 위하여 창녕 현감을 청하여 나가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켜 임금이 비단과 교서(敎書)로서 포상, 가자(加資)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종부시 주부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사간원 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정(失政)과 무상시로 이어지는 유연을 중지할 것을 극간하자 연산군이 크게 노하였으나 피하지 아니하였으며 임사홍(任士洪) 등의 간악함을 탄핵하는 차자(箚子)[일정한 격식 없이 사실만 간단히 적어 올리는 상소]를 올렸다.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에 김종직의 문도로 몰려 평안도(平安道)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 1500년(연산군 6년) 전라도 낙안으로 이배되었는데 그곳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여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이 때 임소에서 부친상을 당해 몇 번이나 혼절하였다가 소생하였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5월 15일 참형에 임하면서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향년 46세였다.
이후 1506년(중종 원년)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17년(중종 12년) 김정(金淨)·조광조(趙光祖) 등의 계(啓)에 의하여 도승지 겸 예문관 직제학으로 추증되었다. 풍각면 차산리에 김응조가 찬한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명(迃拙齋朴漢柱閭表碑銘)’이 세워져 있으며 밀양 예림 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 서원(德巖書院), 청도의 남강 서원(南岡書院) 및 차산 서원(車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오졸재집』이 있으며 밀양 5현으로 추앙받고 있다.
2)망헌 이주(1468∼1504)
본관은 고성(固城)이고 자 주지(胄之)이며 호는 망헌(忘軒)이다.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이고 현감 이평(李泙)의 아들이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8년(성종 19, 戊申)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정언(正言)으로 있다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 진도로 귀양 갔다가 이어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전에 궐내에 대간청을 설치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김굉필(金宏弼) 등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그는 주로 삼사(三司)에서 활약했는데 정언으로 있을 때에는 직언으로 유명하였다. 성당(盛唐)의 품격을 갖춘 시문(詩文)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문집에 《망헌집》이 있다.
1506년(중종 원년, 丙寅) 신원, 이조 참의로 추증, 정려에 어필이 하사되었고 다시 승정원 도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원(忠元)이다. 청도군 풍각면 차산서원에도 향사되고 있으며 화양읍 유등리 원산재에서 매년 4월, 석채례(釋菜禮)를 봉행하고 있다.
◯ 연혁: 1946년 재실로 창건되었으나 1959년 유림과 후손의 공의에 의해 서원으로 승호되었으며 오졸재와 망헌의 고고한 절의를 기리며 향사하고 있다.
그 동안 1970년, 1991년, 2010년 등 여러 차례 강당 및 사당, 대문의 중수를 거쳤다.






보강재(普岡齋)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532번지에 있다. 1919년에 지었으며 1997년 중수했고 2005년에는 새로 재건했다. 동리 뒤편 푸른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은 높은 축대위에 보강재 4칸(마루 2, 방 2)이 있고 그 아래 하당(2칸)과 솟을대문 3칸(수납공간 1, 화장실)이 있다. 시멘트 마당이며 주변에 튼튼한 돌담장을 둘렀고 서편에 중문을 따로 설치했다. 건물 보호를 위해 전면 툇마루 앞에 유리문을 설치했으며 대청에 ‘보강재기’ ‘보강재 중수기’가 있다.
이 재사는 밀성인 박양춘(朴陽春)[1561년(명종 16년) - 1631(인조 9년)]의 묘재이다. 선생의 자는 경화(景華)이며 호는 모헌(慕軒)으로 행산 박세균의 9세손이다. 임진왜란 때, 조모와 모부인이 돌아가시자 애통호곡을 하며 자리를 비우지 아니하니 왜적들이 보고 출천지효라 하여 ‘孝子之門’ 팻말을 세워 침범치 말라고 했다 한다. 이 사실이 알려져 여포비를 세웠다.
마당에 ‘보강재 중수 기념비’, ‘보강재 재건 기념비’ ‘난중 미능 호종비’ - 모헌 선생이 쓴 것으로 ‘난리 중에 여막을 지키니 능히 임금을 따르지 못하여 여막을 모셔도 효를 다하지 못하고 정성으로 나라를 걱정하여도 충성은 어렵고 하늘을 우러러 나를 돌아보니 내 몸이 부끄러운 가운데 있다.’- 가 있다.




동산재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583번지에 있다. 1946년도에 짓고 1958년도에 중수했으며 2010년에도 새롭게 단장했다. 흑석리 마을 왼편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구조는 동산재 3칸(방2, 마루 1)과 평대문채 3칸(통로, 방1, 수납공간1), 관리동(양옥집)으로 배열되어 있다. 시멘트 마당이며 브로크 담장으로 되어 있다.
이 재사는 흑석리에 입촌한 이후 13대째 터를 잡고 사는 옥산 전씨 문중 선조의 유덕을 추모 숭상하고 자손들의 강학을 위해 세워진 종실이다. 마루 벽에는 ‘동산재 서헌소기’와 ‘동산재 중건기’가 있으며 마당에는 ‘옥산 전씨 도사공파 흑석문중 제단’과 제단비가 있다. 흑석문중은 도사공 전응창(1529-15860)의 넷째 아들로 임진란 때 전공을 세운 절충장군 전윤용(全潤龍)의 후예이다. 그의 아들 전기영(全起榮)은 예빈시 주부이다. 그리고 문중을 위해 답 일천 평을 희사한 전병락(全柄洛)의 공덕비도 세워져 있다.


열부 학생 박수광처 유인 김해김씨지 려(烈婦學生朴秀光妻孺人金海金氏之閭)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477번지, 마을 앞 도로변 은행나무 옆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나 1893년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열부각은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주위에는 흰색 방형의 블록 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2짝 파란색 철대문을 설치했다. 열부각의 전면에는 홍살을 세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였다. 비각의 내부에 비는 없고, 뒤쪽 벽에는 ‘열부 학생 박수광 처 유인 김해 김씨지려(烈婦學生朴秀光妻孺人金海金氏之閭)’라고 쓴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흑석리 밀성 박씨 집안에서는 아직도 거룩한 정신을 기리며 귀감으로 삼고 있다.


경석재(景石齋)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984번지에 소재하며 흑석 석통마을 가운데에 있다. 1990년에 지은
본채(벽돌슬라브 양옥)와 하당(흙벽돌집)이 있다.
밀양 박씨의 선재이며 해마다 한 차례씩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문중 회의장소로도 활용한다.


옥산재(玉山齋)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995번지에 소재한다. 석통마을 경로당 앞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1987년에 건축된 벽돌슬라브 양옥인 옥산재와 하당이 있다. 마당은 시멘트이며 시멘트 블록 담장을 둘렀다.
이 재사는 밀성인 박치복[1812(순조 12년) - 1869년(고종 6년) 58세 졸]의 재사이다. 그의 자는 무약(戊若)이며 호는 반송(伴松)이었다. 효우가 두텁고 문학이 고명하여 향리 사람들의 칭송이 높았다.


안강재(安岡齋)
청도군 풍각면 흑석 2동 1492-2에 소재하며 마을 서쪽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좋다. 1928년에 건축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했고 2005년도에 하당을 새로 신축했으며, 2009년 기와를 번와했다. 건물은 서향인 목조와가 안강재(온돌방 3칸, 마루 1칸)와 하당인 벽돌슬라브 양옥(10평) 및 평대문(1칸)이 있으며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재실 올라가는 길에 허리 굽은 고목(느티나무)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안강재 상량문’, ‘안강재기’ ‘안강재 원운’ ‘차운’ 등이 대청에 걸려있다.
남원인 양근남(양근남)의 재사이다. 자는 내경(來景)이며 호는 풍강(豊岡)인데 문양공 양성지(梁誠之)의 6세손이며 중의위 양혼(梁渾)의 아들이다. 1634년 (인조 12년)에 태어나 양주에서 자랐는데 임진왜란을 당하여 평산에서 이거하여 풍각 흑석(안국)에 정착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전념하여 학문이 높았으나 명리에 쫓지 않고 은거하다 51세에 졸하였다. 현재 안국 마을에는 그의 자손들이 세거하여 살고 있다.





낙계재(樂溪齋)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 우측 270번지, 국도변 평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인 경현문(출입문 및 방1, 화장실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 측면 1칸인 팔작와가 재사(마루2, 방2, 중당협실형)가 있다. ‘낙계재기’ 등이 대청에 걸려 있으며 블록담장 안에 ‘낙계선조기념비’가 있고 담장 밖에 밀성박씨 삼세 제단비가 설치되었다.
밀성인 박환생(朴還生)의 재사이다. 그의 자는 천여(天與)이고 호는 낙계이며 이조판서 박신보의 6세손으로 1574년(선조7년)에 태어나 훈련원 첨정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는 부친의 명에 따라 망우당 곽재우 선생과 더불어 왜적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워 선무원종 이등공신에 올랐다.





비슬산 불광사
청도군 풍각면 청려로 591번지에 있다. 흑석1리 대로변에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문 입구에 설선당(5칸)이 있고 안쪽에 나란하게 대웅보전(6칸)이 二 자로 배열되어 있다. 2007년에 창건했으며 대지는 2970㎡이다.
마당은 잔디가 조성되어 있으며 둘레에 담장을 둘렀다.


흑석교회
풍각면 흑석1길 5번지에 있다. 대로변에서 흑석1동 안길 10미터 지점이다. 1985년에 설립했으며 대지 422㎡에 신도수가 20명인 조그마한 교회이다. 1층인 본당과 사택이 있으며 마당은 시멘트이고 담장을 둘렀으며 철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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