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이서면 가금리의 오금재 /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28일, 청도군 이서면 가금리 오금재를 찾았다.


오금재(梧琴齋)
청도군 이서면 가금리 467번지에 있으며 1952년에 건축되었다. 풍각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측에 본채가 있고 맞은편에 하당이 있어 ㄷ자형이다. 본채는 4칸인데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 옆에 방이 한 칸씩 있다. 하당은 3칸인데 부엌 한 칸에 방이 2개이다. 대문채는 3칸이며 출입구 옆에 제기 등을 보관하는 수납공간 한 칸에 방 한 칸이 있다. ‘오금정기’ 등이 대청 벽에 걸려있다.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으며 큰 사철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재사는 철성인 이시무(李時茂)의 묘재이다. 그의 자는 인수(仁搜)이며 호는 성암(省庵)이다. 모헌공 이육의 6세손으로 주경야독하였으며 천성이 너그럽고 효우가 지극하였으며 오금촌에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가금리(佳琴里)
이서면과 풍각면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이 풍각으로 가는 큰 도로변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마을을 찾았을 때 마침, 마을 총회를 하는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이서고 제자 조영수(동아대 교수)의 부친인 조진현씨를 만나 마을을 소개 받았다. 조 진현씨는 거동이 불편해 그 막내 며느님이 재실을 안내를 해주었다.
다음은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소개된 내용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한 마을 중 가촌과 오금의 이름을 따서 가금리라 하였다. 오기미·신평·가촌·배나무실 등의 마을이 있다. 오기미의 ‘미’는 물의 흐름이 많이 굽어 있는 곳에 대부분 ‘미’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서 나왔다. 신평(新坪)은 물이 질 때마다 청도천[한냇강]이 남쪽으로 밀려나고 산 밑으로 새로운 농토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농토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졌다. 등 너머에는 배나무골이 있는데 이곳에 큰 배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배나무골 또는 배나무실로 불린다.
조선 시대에는 청도군 상북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금동, 가촌동, 상대전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촌과 오금의 이름을 따서 가금동이라 하고 이서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가금동에서 가금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마을에서 앞쪽으로 내다보면 오른편에 각북면과 이서면을 경계를 만드는 산이 있다. 마을 앞으로 각북천이 흐르고 있으며, 자그마한 평야 지대를 이루고 있어서 농사짓기에 좋은 곳이다. 홍두깨산에서 내려온 등성이와 천왕산에서 내려온 등성이 그리고 화악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마주하는 삼각지에 비슬산에서 발원한 청도천과 천왕산에서 발원한 부곡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여 큰 굽이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한 풍각면의 송서들과 각남면의 신당들, 이서면의 오기미들이 형성되어 있다. 가금리를 동서로 가르는 하천 위에 가금교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 청도군)에는 가금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칠엽리, 대전리를 거쳐 내려 뻗은 태봉(胎封)이 갈라져 낙맥등(落脈嶝)이 선인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 동향 또는 남면이라 밝은 마을들이다. 청도천이 휩쓸고 간 자리는 들을 이루고, 산을 등진 취락구조는 여느 마을과 같고 하천변이라 지대가 낮다. 오금(梧琴)리에는 1400년경에 창녕인 조응기 공이 입주하여 마을의 터전을 다졌고, 뒤이어 고성이씨가 입촌하여 오늘의 동리로 이어지고 있다.
오금(梧琴)
부근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부엉이가 날아와 우는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와 같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혹은 마을 뒷산인 선인산에 오동나무 숲이 울창해서 선인들이 거문고를 타면서 노닐던 것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다같이 오동나무와 관련이 있다.
신평(新坪-새들)
청도천변 하천을 농토로 만들어 새로운 들이 되었다고 불리어진 마을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전은 가촌(佳村)이라 불렀다. 신평2리에는 1600년 대에 파평인 윤미(尹微) 공이 입촌하였다.
고암(鼓岩-고들때기, 고울때기, 고암)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의 형상이 흡사 북을 치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이 마을의 천변에는 조선시대 시장이 있었으나 일제초 현재의 풍각면 송서시장으로 이전 되었다.
이곡(梨谷-배나무실, 배남)
배나무가 많아서 불리던 이름이나 인가가 없다.
양산(兩山)다리
양쪽 산에 걸쳐놓은 엄청난 크기의 돌다리인데 어떻게 인력으로 운반하여 다리를 만들었는지 믿기 어려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1리 47호중
고성이씨 24호, 창녕조씨 5호, 기타 24호
2리 31호 중
창녕조씨 7호, 파평윤씨 7호, 기타 17호
<1991년 통계로 현재와는 다르다>
이상 가금리에 대한 두 문헌의 내용을 살펴 보았다. 공통점도 있고 판이하게 다른 점도 있다. 그만큼 동리의 유래 및 내력은 여러 가지 설이 있어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든 것이다. 또 다른 설이 나올 개연성은 충분하니 참고로 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모든 지명을 고증하는데 한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한 것 같다. 마을의 내력을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시작한 것이 많은데 뒤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적당하게 좋은 글자를 골라 음차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기미의 ‘미’는 물의 흐름이 많이 굽어 있는 곳에 대부분 ‘미’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서 나온 것인데 '오금(梧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부근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부엉이가 날아와 우는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와 같았다'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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