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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 각북 명대리 계명재, 모암재, 운계사, 뚝향나무

청도 각북 명대리 계명재, 모암재, 운계사, 뚝향나무/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28일(수)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를 찾았다. 사실 이 마을은 이름만 들었을 뿐, 마을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서고 5회 제자인 김종희를 만나게 되었다. 무려 44년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종희가 멀리 각북에서 이서고에 다녔던 기억이 났다. 뚝 향나무 근처에서 어떤 분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바로 김종희의 동생이었다. 내가 모암재에 배향하고 있는 절효 김극일 선생이며 뚝향나무에 대해서 문의를 하니 자기보다는 형이 더 잘 알 것이라고 하며 안내를 했는데 그 형이 바로 김종희였던 것이다. 

  그 동안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이후 고향집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교직에서 퇴직한 뒤 고향에 머물고 있는 나와 비슷하여 더 친근감이 갔다. 특히 이 마을의 뚝향나무는 김종희 집안과 깊은 인연이 있는 나무이기도 하여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 그리고 김종희가 지키고 있어 그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명대1동 회관>

 

  명대리는 계명과 송동 그리고 미대가 합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계명동과 미대동의 이름중 한자씩 따서 명대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계명동, 나부실, 솔동, 미대(美垈)가 있다. 계명동은 명대 1리의 본 마을이다. 계명동은 흔히 기밍동으로 부르고 있다. 아마 계명동의 발음이 어려워 로 단순화 시킨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이름이 원래 권계조인데 권기조라고 한다. 우리 고모부는 이한승인데 이한싱라고 한다. 아마 그런 영향인 것 같다.

  향토문화 전자대전에는 나부실은 마을 뒤 산의 형태가 나비 모양을 닮아서 나부실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메꽃의 줄기 모양을 하여 나복(蘿葍)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밀주지에는 만호 신몽태가 살았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솔동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솔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대 또는 미태는 밀주지에는 마을 동남쪽에 삼사암이라는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미태라고 하며 미태가 변해서 미대로 변했다고 한다. 명대리는 본래 대구군 각북면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청도군에 편입되었다.

 

 

 

<마을 전경>

 

 

<마을 앞에 있는 고목>

 

 

 

 

계명재(鷄鳴齋)

 

  청도군 각북면 각북면 명대리 132번지에 있다. 김해 김씨 후손들이 모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향사를 지내며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이 재사는 원래 1840년대에 지었으나 1983년 재일동포인 김종달씨가 많은 금액을 기부하여 오래된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한 것이다. 목조와가인 웅장한 본채(정면 5, 측면 2)와 솟을 대문(3)이 있다. 배치는 동리 뒤편 산기슭 남쪽에 자리 잡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석축 담장을 둘렀다. 본채는 대청 2, 온돌방 3칸 앞에 툇마루가 있다. 대문채는 본채 정면에 있으며 출입구 양 옆에 방이 한 칸씩 있다.

  재사 대문 앞에 김종달 형제 사적기념비가 있다. 이 마을은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거액을 기부한 김종달 형제를 기리는 기념비>

 

 

모암재(慕庵齋)

 

  각북면 명대리 39번지에 있다. 1860년에 지었으나 여러 차례 중수했으며 2001년에도 후손들이 힘을 모아 새롭게 중수하여 단장했다. 넓은 주차장을 지나 솟을 대문에 들어서면 정면 모암재를 중심으로 양 옆에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서재 뒤편에 관리사가 있다. 선산이 있는 산기슭 남쪽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석축 담장을 둘렀으며 넓은 잔디 마당에 조경이 잘 되어 있다.

  모암재 4칸은 마루 1,  3, 동재와 서재는 각각 방 4칸으로 배열했으며 3칸 대문채도 출입구 1칸 외에 방 1칸과 수납공간 1칸을 두었다. 대청마루에는 모암재 중건기가 걸려 있으며 대문에도 行源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서쪽 재사 옆에는 관리실이 있다.

  김해인 김극일(金克一) 선생을 배향하는 재사이다. 선생의 자는 용협(用協)이고 호는 모암(慕庵)이다. 의흥 현감 김서의 아들로 야은 길재(吉再) 선생의 문인이다. 통덕랑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향리에서 후학들의 훈도에 힘쓰다 75세에 졸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머니를 위해 종기를 빨고 아버지를 위해 설사를 맛보았다전후로 시묘살이 6년을 했는데한 호랑이가 무덤 곁에서 새끼를 젖먹이니선생이 제사지내고 남은 것을 먹여 가축 기르듯이 하였다아버지에게 천첩(賤妾두 사람이 있었는데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와 같이 섬겼고그들이 죽자 모두 기년복(朞年服)을 입었다이 일이 임금에게도 알려져 정문하였는데 향리유림과 제자들이 그 효행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사시호(私諡號) 절효(節孝)라 하고 이서면 서원리 에 있는 자계서원(紫溪書際)에 봉안하여 향사하고 있다.

 

 

 

 

 

 

 

 

 

 

 

 

운계사(雲溪詞)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32번지에 있다. 1670년에 건축되었으며 절효 김극일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선생을 배향하는 모암재 근처, 뚝향나무 뒤에 있다. 목조와가 정면 3, 측면 1칸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

 

  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나북 마을) 30번지에 있다. 1994 9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되었으며 절효선생의 사당인 운계사 앞에 있는데 수령은 약 350년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5m, 밑둥치 둘레는 97.4, 동서 간의 수관(樹冠) 폭이 27.6m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똑바로 자라지 않고 줄기와 가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전체가 수평으로 자라는 것이 다르다. 이 나무 아래에 옹달샘이 있고, 그 주위에 묘하게 얽힌 가지가 역동성을 느끼게 하며 푸른 잎이 넓게 퍼진 것이 장관이다. 언뜻 보면 세 그루인 것 같지만 한 그루이다. 세 그루처럼 보이는 부분은 원뿌리에서 뻗어 나온 새끼 그루로서 뚝향나무의 전형적인 분지(分枝)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줄기가 바로 서지 못하고 가지가 수평으로 퍼져 있으며, 비늘잎과 바늘잎 두 가지 형의 잎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무 전체를 사각형의 철제 막대 봉으로 받치고 있으나, 거대한 줄기를 형성한 수세(樹勢)가 왕성한 나머지 무게가 무거워 가지는 여러 개로 갈라지고 처져서 땅에 닿아 있다.

  이 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나라에서 하사한 땅에 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 효자인 김극일(金克一)[13821456] 선생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침 이 나무 뒤에 절효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김극일 선생은 생전에 효심이 지극한 분으로 마을 사람과 유림들이 이를 칭송하고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호를 절효(節孝)라 했다.

나무 앞에는 경상북도 기념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고, 보호 구역을 설정해 편책을 둘러 감싸고 있다. 주변에는 뚝향나무를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이 나무는 그 동안 절효 선생의 후손들에 의해 잘 보존되어 왔다. 특히 뚝향나무가 바로 문 앞에 있는 김용석(1904-1992) 씨 집과 이 나무는 큰 인연을 가지고 있다. 집안의 맏아들인 김용석 씨가 딸만 낳고 아들이 없자 부인이 뚝향나무 아래 샘에 촛불을 켜고 지극 정성 빌었다. 그 정성에 감동했던지 아들 김선곤을 낳게 되었다. 또 그 아들이 6.25 전쟁 중에 군대에 가게 되자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는데, 그 덕분인지 김선곤씨가 전쟁터에서 총알을 13발이나 맞았는데도 생명을 구하여 돌아왔다. 모두 이 향나무의 덕분이라고 믿었다. 아무튼 그 뒤에도 이상하게 이 집안에서는 향나무가 조금이라도 상하게 되면 사람이 다친다든지 도둑을 맞는다든지 좋지 않은 일이 꼭 일어났다. 우연의 일치라 하기에는 너무 신기하게 맞아 떨어지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집안의 대소사를 이 뚝향나무에게 의지하여 빌며 이 나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켰다. 이 뚝향나무가 보통 소 코뚜레나무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동리 사람들 중에 코뚜레를 하기 위해 몰래 베어가다가 김용석씨에게 들켜 혼쭐이 나곤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김용석씨와 김선곤씨는 고인이 되었지만 이제는 김용석씨의 손자인 김종희(63) 씨 형제가 대를 이어 이 나무를 지킨다. 나무의 영험도 그러하거니와 어른들 생각까지 간절하여 더 열심히 청소도 하고 풀도 뽑아 늘 깨끗하게 관리한다고 한다.

 

 

언뜻 보면 세 그루인 것 같지만 한 그루이다. 세 그루처럼 보이는 부분은 원뿌리에서 뻗어 나온 새끼 그루로서 뚝향나무의 전형적인 분지(分枝)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자 김종희의 동생분이다. 나무 밑에 들어가 분지와 샘의 위치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