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가 좋다

이서국 옛 도읍지 토평

이서국 옛 도읍지 토평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15일(목),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를 찾았다. 토평리는 화양읍의 가장 북서쪽의 이서면과 화양읍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마을로 과거 이서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평리는 백곡과 와촌 그리고 은행정 등 3개의 자연마을이 있다이서국의 옛 도읍지인 토평리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마을 곳곳에는 옛 토기 파편과 고분들이 있으며, 백곡에는 마을 뒤의 산등을 따라 토성(土城)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명칭 유래

 

박윤제 청도문화원장은 토평마을 명칭 유래를 세밀하게 정리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토평리(土坪里)

토평리는 마을 주변이 넓고 평탄한 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토평(土坪)으로 부른다. 한편으로는 이서국 왕성(王城)이 토성(土城)으로 되어 있고, 넓은 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토평으로 불렀다고 한다.

 

2) 백곡(栢谷)

이서국 왕성(王城)이 있었던 곳으로 삼면이 토성(土城)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남쪽만 좁게 열려있는 천연적인 요새이다.

옛날에는 성() ''이라고 불렀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토성(土城)이 있었기 때문에 '잣실'이라 했다. 그 후 '' '잣나무'를 뜻하는 백()으로 표기하여 '백곡'(栢谷)이라 했다.

만석군이면서 조선말 숭선전 참봉을 역임한 이 마을의 모계(慕溪) 김용희(金容喜)는 지역사회를 위한 휼민 사업과 교육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3) 와촌(臥村, 瓦村, 원토평)

토성산 남쪽의 잘룩이인 외목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토평리 가운데 가장 먼저 취락한 마을이란 뜻에서 원토평으로 부른다.

와촌(臥村)은 낮은 산기슭을 의지하여 평평한 지역에 편안하게 마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4) 은행정(銀杏亭)

은행정 마을은 토성산의 끝자락에 취락하고 있으며, 생활권은 이서면과의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칠곡천(七谷川)이 흐르고 마을 앞에는 청도천이 흐르며, 동쪽에는 넓은 고침들이 펼쳐져 있는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선생이 직접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에 은행정(銀杏亭)이라 부른다. 특히 은행나무는 마을의 신목(神木)으로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화재나 치병, 득남을 위해 기원을 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온다.

 

 

 

 

탁영(濯纓김일손(金馹孫) 선생 종택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마을 김해 김씨 집성촌인 백곡 1 1-5에 소재하며 청도의 진산인 남산을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높은 담장 중간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좌측 전면에는 팔작 기와집인 영모각(永慕閣) 3칸이 있다. 영모각 뒤에는 사랑채(정면 2칸 측면 6)와 별도 영역인 팔작 기와집인 안채(정면 4칸 측면 1칸 반)가 있다. 안채의 우측 후면에는 김일손 선생 내외를 모시는 부조묘(정면 3칸 측면 1칸 반)가 별도 영역에 있다.

1578(선조 11) 자계사(紫溪祠)를 자계 서원(紫溪 書院)으로 중건(重建)하고 김일손선생을 봉안하면서, 종택이 있는 백곡에도 탁영 선생 부조묘(濯纓先生不祧廟)’를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소실된 바 있으나 1661(현종2)에 자계서원이 사액(賜額)되면서 사림(士林)에 의한 사불천위(私不遷位)에서 공불천위(公不遷位)로 사승(賜昇)되어 김일손 내외를 봉향하였다. 이후 1844(헌종 10)에 김창윤(金昌潤)이 노후된 부조묘를 재건하였으며, 다시 1940년에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개축하였다. 그리고 사랑채 개축공사는 경북도와 청도군의 지원을 받아 총 2억원의 공사비로 2015년 봄에 시작하여 2016 5월에 중수하였다.

2008 2 18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61호 지정되었다. 탁영선생 숭모 사업회가 결성되어 많은 모금이 이루어져 탁영선생 숭모 기념관 건립 부지를 매입했고 탁영선생 문집과 도연선생 문집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이를 알리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취정(一翠亭)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백곡마을 동편 산기슭 145-1에에 소재한다. 1895년에 건축되었으며 2013년에 크게 중수했다. 울창한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며 시야가 넓어 전망이 좋다, 정면 5칸의 중당 협실형 평면에 우단부로 누마루 1칸을 돌출시킨 건물이다. 특별한 담장이나 대문을 설치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정자에 올라가 잠시 쉬어가며 머리를 식힐 수 있다.

  이 정자는 백헌(栢軒) 김병두(金柄斗) 선생의 소구이다. 선생은 탁영 김일손 선생의 후예로 유주목 선생의 문인이다. 학행이 높았으며 선공가감역을 맡았으며 저서에는 선생의 유고가 있다. 아들인 통정대부 군수 김용복 선생, 참봉 김용희, 참봉 김용환 선생 3형제가 뜻을 이어 소구하였다.

관성재’, ‘함호루 현판과 같이 김용복, 김용희 선생의 글이 나란하게 걸려 있다.

 

 

 

 

 

 

 

백동강당(栢洞講堂)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72

건축연대: 1842

건물구조: 백동강당(목조와가 정면 5, 측면 1), 동쪽하당(4), 남쪽 하당(5), 대문(3)

관리문중: 김해 김씨

변천사: 백동강당은 백동정이라고도 하며 1842년에 창건하여 김해 김씨 유현 9위를 향사한 곳이었으나 1868(고종 5)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되고 1920년에 참봉 김용희가 중창하여 지금의 백동강당으로 되어 있는데 한때는 김해 김씨 9현의 세덕사라 하였다. 2013년 새롭게 중수하였다.

현황: ‘백동사 강당 중수기  백동강당 중수성금록 현판이 걸려있다. 백동강당이 있는 백곡마을은 이서국의 도읍지였고 현재는 김해 김씨 집성촌으로 삼현의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필경재(必敬齋)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549번지

건축연대: 1971

건물구조: 필경재(목조와가 정면 4, 측면 1), 대문채(3)

관리문중: 의령 남씨

배향 인물: 거연(居然) 남도후(南圖厚) 선생의 재사이다. 선생의 초휘는 변()이고 자는 천숙(千叔)이다. 문정공 남효온의 후예이며 임진왜란 때 화성에서 청도로 이거해와 정착했으며 의령남씨의 입청도조(入淸道祖)이다.

현황: 전면에 유리 시설을 했으며 사면에 보조기둥을 설치했다

 

 

경모재(敬慕齋)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635번지

건축연대: 1976

건물구조:경모재(목조와가 정면 5, 측면1), 대문채(3)

관리문중: 광주 정씨

배향 인물: 광주인 정구(鄭矩)의 재사이다.

현황: 남산과 청도천이 바라보이는 화양읍 토평 2리에 있으며 경모재기’, ‘경모재 상량문 현판이 있다. 정원 조경이 잘 되어 있다. 경모재는 방이 3칸이고 마루가 2칸이며 대문채는 방 1칸과 도장 1칸이다

 

 

 

 

 

*참고자료

ㅇ청도문화(청도문화원, 2001)

ㅇ디지털 청도문화대전

 

*면담

ㅇ김해김씨 후손

ㅇ토평리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