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사(城隍祠)
2016년 12월 2일(금),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성황사를 찾았다. 향교에서 거리 멀지 않는 곳에 있지만 경사가 심한 곳에 있기에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다. 차도 올라가는데 상당히 숨이 차는지 이따금 심호흡을 하며 다리를 두드렸다. 그래도 다행히 잘 데려다 주어 고마웠다. 지대가 높아 화양읍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김지대, 김한귀 선생을 모시는 곳이다.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310번지
○시설현황: 3칸
○창건연대: 조선초기
○연혁: 이 사당은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 선생과 원정공(元貞公) 김한귀(金漢貴) 선생을 봉안하여 오다가 후세 사람들이 先生의 木像을 가벼히 여겨 꺼내서 장난을 치고 하니까 후손들이 보기가 민망하여 매장(埋葬)을 하고 집은 장구(長久)한 세월에 돌보지 않아 1960년대에 허물어 진 것을 1998년 3월 청도군에서 복원하였으며 그 뒤 2002년 청도김씨종진회에서 2억여원을 들여 주위환경보수, 조경, 진입로확포장등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배향인물
오산(鰲山)의 성황사(城隍祠)는 청도군의 수호신인 청도 김공(淸道金公) 지대(之岱)와 동 김공한귀(金公漢貴) 양인을 모신 사우(祠宇) 일찍이 청도 군민에 의하여 건립된 것이다. 그 목적은 고을이 낳은 큰 인물과 본 고을이 밀양군 속현(屬縣)으로 감무(監務)에 불과한 행정단위를 군으로 승격시켰음을 추앙하고 아울러 신神이 되어서 본 고을을 길이길이 수호해 주실 것을 기원하여 세워졌던 것이다.
창건연대는 조선시대의 초기로 추정하고 있는바 조선 성종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이미 오산(鰲山)의 산록(山麓)에 성황사(城隍祠)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성황사에는 고을을 수호하는 신이 모셔져 있는데 오산의 성황사는 청도고을을 지키는 신으로 고려조 명신이었던 김지대공과 김한귀공이 봉안되어 있다. 김지대공은 고종조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당문학이부상서(政堂文學吏部尙書),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 제 관직을 거쳐 최 고위직 태부(太傅)를 제수받았으며 김한귀공은 공민왕조 동경도 병마사(東京道兵馬使), 감찰대부(監察大夫), 개성윤(開城尹) 등 제 관직을 거쳐 고려명현이 모셔지는 선원각(善元閣)에 배향되었다. 공들은 공히 봉(封)을 받았음에 그 명칭이 오산군(鰲山君)이다. 김지대공은 이로 인해 청도김씨(淸道金氏)의 관조(貫祖)가 되고 김한귀공은 그 예손(裔孫)으로 동명의 봉호가 특별히 습봉(襲封)되었다. 봉호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시호도 함께 하사받았음에 김지대공은 덕정응화(德正應和) 행선가기(行善可紀)의 인물이었으므로 영헌공(英憲公)이라 하였고, 김한귀공은 체인장민(體仁長民) 원청백수(元淸白守)의 인물이었으므로 원정공(元貞公)이라 하였다. 두 시호(諡號)의 뜻에는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덕정과 청백이 있으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히 본받을 인물로 추존되고 있다. 사우(祠宇) 페허된지도 오래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그간 방치한 연유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뒤늦게나마 향토문화의 보존 차원에서 사지(祠址)에다 서기 1998年 청도군이 옛모습대로 재건하였으니 군민 모두 기뻐함이 여산여해(如山如海)이더라.
서기 2002년 7월 30일
청도군수 김상순, 청도문화원장 이문섭, 청도향토사학회 회장 장봉채, 청도김씨 대종친회 회장 김태우
(원래 비분은 국한혼용이었으나 편이상 한글로 옮기면서 한자를 병기하였다.)
○성황사의 유래
성황사는 일명 성황당(城隍堂)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명칭은 대게 무속인들 사이에서 호칭되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낸 지리지(地理誌) 같은 책에는 성황당이나 서낭당 표기가 아닌 사(祠)란 글자를 붙혀 성황사(城隍祠)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각 지역마다 사묘(祠廟)난에 사직단(社稷壇), 문묘(文廟), 성황사(城隍祠), 여단,을 표기하고 있다. 사직단은 나라를 지키는 토신을 모시는 곳이고, 문묘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며, 성황사는 고을을 지킨다는 신을 모시고 하는 곳을 일컫고 하였다. 성황사에 모시는 신을 서낭신이라 부르며 이 신은 토지와 풍년을 다스린다고 믿고 있는 신이다. 실제 유명 인물을 신으로 모신 곳이면 성황사라 부르고 단지 막연히 신을 제사 하는 곳이라 하면 당(堂)으로 부르는 예가 많았다. 당은 무당이 주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고갯마루나 큰 길 옆, 부락입구, 사찰 입구 등에 세워져 있었다. 성황이라는 명칭은 중국 고대 민속상의 성읍(城邑)을 수호하는 신에서 유래 되었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각 고을 간에 성행했던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전래되어 조선왕조에 들어와서 크게 성행 하였다. 제삿날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체적으로 음력 보름에 치렀다.









화양읍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