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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덕사

덕사(德寺)/ 행전 박영환

 2016년 11월 30일(수), 유서 깊은 사찰, 덕사를 찾았다. 차량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무계단을 밟고 

라갔다. 이곳은 자주 오는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은 소풍을 왔던 곳이기도 하다. 올 때마다 그 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초등학교 때 찍은 노리끼한 사진은 그리운 얼굴들을 불러모은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여기에 오면 그 때의 동심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를 누빈다. 나는 지금도 이절을 '덕사'라 하지 않고 '떡절'이라 한다. 어릴 때부터 입에 익은 탓이기도 하려니와 '덕사'라고 하면 어쩐지 다른 절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발표한 시에도 제목을  '떡절'이라 했다. 

  마침 스님은 출타 중이었다. 종무소 소장님이 내어놓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또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참 편안한 절이다.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소라길 16-107

 

시설현황: 영산보전, 명부전, 삼성각, 요사채 2, 화장실

 

소속: 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연혁: 언제 누구에 의해 건립되었는지 전하는 문헌 기록이 없어 절의 창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전하는 말로는 통일 신라 때 창건되었고, 그 뒤 조선 전기에 무학 대사가 중창하였으며, 그 후에도 몇 번 중창이 있었던 것 같다. 경내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 의하면, 1816(순조 16) 장옥 승려가 중창하였다. 1972년 정용산 승려가 주석한 뒤 1977년 영산전을 단청하였으며, 1978년에는 명부전을 단청하고 시왕상을 개금하였다.

현재 건물들은 2004 - 2015년 사이에 옛 건물을 뜯어내고 새로 신축한 것이다. 다만 종각은 불기 2531(1987)에 지은 것이니 29년 전에 지은 것이다.

 

문화재: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99호인 영산보전 석조 여래 삼존상 및 십육 나한상 그리고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00호로 지정된 명부전의 석조 지장 삼존상 및 시왕상이 있다. 이는 1678(숙종 4)에 조성된 것이다. 이들 불상은 원래 인근 화악산(華岳山천주사(天柱寺)에 봉안되었던 것인데 덕사로 이안되었다.

 

 주변 산성: 덕사 주변은 주구산성, 폐성, 또는 이서 산성으로 불리어진다. 이 산성은 고대 이서국 시기에 축조된 토성이다. 이서국이 이 산성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여 패함으로 몰락을 맞게 되었다. 이후는 고려와 신라의 대결 장소도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항하여 신라의 병사들이 주구산성에서 끝까지 항거했다. 이때 왕건이 보양국사에게 그 계책을 물었는데 보양국사가 지형을 살핀 후에 성이 있는 산의 형세가 개가 달리는 주구형이므로 개는 천성이 밤은 맞지만 낮은 맞지 아니하고 앞만 지키고 뒤는 잊는 법이니 마땅히 낮에 북쪽을 공격하면 될 것입니다.” 했다. 왕건이 보양의 책략에 따라 다음날 낮에 성 뒤를 공격하여 무난히 함락시켰다. 그래서 이 산 이름을 주구산(走狗山)이라 하고 산성을 폐성(吠城)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구산은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니 개가 달아나면 정기가 빠져나가 인재가 나지 않는다. 개가 달아나지 않게 하려면 떡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절을 지어 떡절이라 했고 한자로는  을 넣어 餠寺라 했다. (덕사 종무소 자료에 의하면 명치 44년 즉 1911년에 병사로 표기한 것이 있다. ‘덕사로 표기한 것은 1940년에 나온다. 그렇다면 병사가 된 것은 1911 - 1940년 사이가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병사보다는 덕사의 의미가 좋다고 생각하여 바꾼 것 같다. 그러나 이름이 바뀐 지금도 지역주민들 중에는 떡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박승규(영남문화재 연구원장) 청도 이서국의 역사와 문화 주구산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삼국시대 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주구산성은 현재의 화양읍 소라동과 청도읍 송읍리 사이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주구형상의 돌출된 지대로서 정상부에는 넓은 평지가 만들어져 있다. 근래에 예비군 훈련장으로 사용되어 지형의 변경이 일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대체로 원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벽으로 추정할만한 토루 부분이 북동쪽에 일부 있으나 명확치는 않으며 우물지와 문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지 내부에서는 4세기대의 토기 편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토기편과 기와편도 다수 보인다. 주구산성은 지대가 험준하고 협소하며 북쪽 능선을 따라 백곡 토성 쪽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존재할 뿐 아니라 입지상 주위를 조망하기에 적합하여 이서국의 전초기지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쇠말뚝: 남쪽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가다 보면 쇠말뚝 뽑은 곳이란 표석이 있다. 일제 때 지세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아놓았던 것을 뽑아낸 것이다.

 

현황: 연암 스님이 14년 동안 주지를 맡고 있으며, 신도 수는 800여 명이며 대지는 7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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