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육산과 육장굴/ 행전 박영환
유월이 시작되는 초하루, 우리문화바로알기(청도문화원) 회원들이 경북 경주와 인접해 있는 청도군 운문면 장육산과 육장굴을 찾았다. 사실 이름만 몇 번 들었을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이다. 문화원에서 점심 준비를 하라고 했으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길이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운문댐 망향탑을 조금 지나면서 경사가 심한 산길이었다. 회원 중 몇 분이 수고하셔서 거의 산중턱까지 차가 올라갔는데도 정상까지 가는 데는 숨이 찼다.

점심 등 간식을 담은 바구니를 같이 들고 올라간다. 그래도 끝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간에 울산에서 왔다는 약초 캐는 사람들도 만났다. 삿갓나물을 많이 채취했다.
오늘도 박윤제 청도 문화원장의 친절하고 박학한 안내와 해설을 들었다.

어느 산악회에서 장육산(將六山)이란 표석을 세워두었다. 여섯 장수가 있었는지, 여섯 장수가 훈련을 받았는지, 이름의 연원이 애매하다. 사실 이곳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고 지방에서 구전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화랑들을 주로 훈련한 곳이 경주 단석산, 밀양 천왕산, 청도 운문산 일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장육산이 운문산 일원이고 정상에는 넓고 완만한 평지가 있어 군사들이 주둔하고 훈련하기에 충분한 점 등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이곳이 신라시대 장수를 길러낸 산이란 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섯 육(六) 대신에 군사를 길러냈다는 의미로 기를 육(育)을 써서 산은 장육산(將育山) 굴은 육장굴(育將窟)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장육산 정상 바로 아래 완만하고 넓은 평지가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억산, 운문산, 가지산, 문복산 등이 한 눈에 들어와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다.
장육산에서 훈련을 받는 장수 후보생들이 장육산에서 출발하여 한식경에 달려가야 하는 산이 있었다. 그 산이 바로 바리박산 즉 발백산(拔白山)이다. 그곳까지 말을 타고 달려가서 깃발을 꽂고 와야 하는데 술잔에 술이 식으면 불입격(불합격)이고 부어둔 술이 식지 않으면 입격을 하여 장수의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회원들이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 산들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촬영

육장굴 들어가는 입구 - 마치 일부러 좁은 석문을 낸 듯하다. 이곳에 초병을 세웠다고 하지만 전설로 봐야 할 것 같다. 만일 이곳에 초병을 세웠다면 발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고 위는 가파른 경사이기에 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지이다.


육장굴은 깊은 굴이 아니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굴이다. 굴은 좌우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에 있는 굴이 조금 길기는 하지만 더 경사지고 바위가 석바위, 석돌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올 때는 빗물이 신령님의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오른 쪽 굴의 동자승

이곳 육장굴은 장군을 길러내었기 때문에 기가 센 곳이어서 신 내림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굿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제단을 쌓고 기도를 하느라 촛불과 술이 떨어질 날이 없다고 하는데 역시나 우리가 갔을 때도 촛불이 켜져 있었고 옆에 소주병이 있었다.


우리 회원들도 소주 한잔을 올리며 산신께 오늘 탐방이 무사히 그리고 뜻 깊게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육장굴 앞에서 박 문화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곧 떨어질 듯한 상판의 돌 - 오랜 세월을 잘 견뎌낸 것이 용하다

육장굴에서 바라본 돌문 - 동행을 한 회원 한 분이 초병처럼 지키고 있다

육장굴 입구에서 찰칵

약초를 채집한 분들의 삿갓나물


육장굴에서 나와 정상을 향해 힘들게 오르는 정경

육장굴에서 멀지 않는 곳에 절터가 있다.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생각되며 넓은 면적에 그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지금은 흙으로 만든 움막이 하나 있을 뿐, 전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도량 내에는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 이 높은 산 정상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래된 절 중에 높은 곳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면 원효스님께서 터를 잡은 것이고 멀리서 물을 길어 와서 먹는 곳은 의상스님께서 터를 잡은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높은 뫼는 지혜있는 사람이 머물 곳이요, 푸른 솔 깊은 골짜기에는 행자(行者)가 깃들 곳이라 했다. 의상 스님은 계행이 청정하여 하늘에서 선녀들이 공양을 가져와서 의상스님을 봉양했다고 한다. 하여 천공(天供)으로 생활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위의 그림은 육장굴에서 나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다.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무당이 그려놓은 선녀같기도 하고 신상같기도 하단다.

정상 부근에서

장육산 표석 앞에서


유월 초하루
신록의 눈빛이 초롱초롱한 날
장육산 전설을 따라 정상에 올라가네
희미하지만 심지에 불을 붙인다는 것
가물가물하고 흐릿하여
어쩌면 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몰라도
어딘가 존재했을 그 무엇이 발자국 소리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희망이 있어 좋다
분명 파도처럼 밀려오는 산맥들의 힘찬 기상을 닮은
우렁찬 말발굽소리, 창공을 가르는 장군들의 함성이
산의 높이를 더해 갔으리라
쉼 없는 옥천수에 목을 축이고 난 뒤
몸도 누이고 마음도 누이는 육장굴에서
내일을 위한 다짐을 했을 것이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그래도 결코 떨어지지 않고
굴 상판을 받들고 있는 힘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 전설의 몫인가
장육산에 길을 묻는 바람이 불어와
식지 않는 전설을 입맞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