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性穴)
-역병(疫病)과 병막(病幕)
행전 박영환

2016년 5월 18일(수) 청도문화원 주관 우리문화바로알기 일환으로 성혈을 찾아 나섰다. 사실 '성혈'이란 말은 상당히 생소했다. 그리고 그 현장을 확인하고도 그 구멍의 흔적이 누군가의 설명에 의해 자세히 살피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늘 박윤제 문화원장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그렇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평소에 접근하기 힘든 유적을 찾게된 의미가 있었다. 오늘 처음 간 곳은 풍각면 봉기 냇가 위 바위였으나,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곳이라 수풀이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풍각면소재지 근처 영풍루 뒷편으로 장소를 옮겨 설명을 들었다.
성혈은 바위의 표면을 돌로 찧어서 오목하게 만든 컵 모양, 혹은 원추형의 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말로는 홈구멍, 알구멍, 알바위, 알미, 알뫼 또는 별집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성혈은 일반적으로 선사시대의 신앙 혹은 별자리와 관련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형상을 표현한 바위 그림(암각화)의 한 종류로 표현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알 바위나 알 구멍이라 부르는 장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통해 근세에도 자손의 번창을 빌고자 바위에 성혈을 새기는 주술적인 행위를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혈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유럽,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 번은 박 원장이 매전면 온막리 조그마한 돌에 성혈이 많이 새겨진 것을 보고 분필로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크기와 깊이를 재고 있을 때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분이 뭐하느냐고 묻기에 이것이 선사시대 만들어진 성혈이라고 해서 찾아보고 있다고 했더니 그 분은 크게 웃으며 그거 내가 어릴 때 이웃집 친구들과 놀이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하여 진이 빠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린아이들이 놀았던 자리에 성혈이 없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성혈은 아이들이 많았던 동네일수록 이런 별집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성혈은 비록 바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양읍성 앞에 있는 비석에도 있고 풍각면 봉기리에 있는 석탑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풍각면 수월리 마을 앞 버스 회차장 앞 시멘트 위에도 만들어진 것이 있으니 선사시대만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그러나 선사시대부터 내려왔다는 것에 대해서 뜻을 같이한다. 현재 우리 주변의 성혈 모두가 선사시대에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원장이 지금까지 찾아본 성혈들은 마을마다 곳곳마다 없는 곳이 없다할 정도였다고 한다.
맨처음 발견한 곳은 매전면 학명동 기도원 위에 있는 높다랗게 얹혀있는 바위이다. 이곳은 제사를 지냈을 곳으로 추정된다. 이 바위에 성혈이 78개가 새겨져 있는데 뭘하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은 온막리 명대들에 별집 바위가 있었는데 경지정리를 하면서 바위를 깨서 묻어버렸다고 하고 빨래터에는 지금도 자그마한 바위에 100여 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4대강 정비사업에 없어진 매전면 동산리 앞 성혈바위, 풍각면 차산리 높은 절터 바위에 새겨진 37개의 성혈, 풍각면 봉기리 입구 병막산 비석 받침돌에 새겨진 성혈, 풍각면 송서리 영풍루 뒤에 있는 성혈 그리고 운문면 마일리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있는 바위들은 모두 아이들 놀이터였던 것이다.
성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목한 홈을 여성 성기로 여기며 이것을 여성의 생산성에 비유한 의례행위의 산물로 보기도 한다. 그 홈에 다른 도구로 구멍 속을 비비며 남녀 성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통해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인 기자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 모두 생존을 위하여 생산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바 청동기 시대에 활발히 전개되는 농경의 발달은 인구 증가와 동시에 많은 생산량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역병과 병막 - 풍각면 봉기리 낚시산 일대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6.25 전쟁 후까지도 돌림병이 돌면 격리시키던 곳이었다. 여성의 생리대가 액막이 도구로 사용되었다. 서답이라고 불리는 생리대는 악귀를 쫓는 강력한 무기였다. 역병이 마을에 돌면 서답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마을 여인들은 치마을 들추며 야한 춤을 추었다. 6.25나 월남전에 파병된 병사들이 여성 생리대를 지니고 간 적이 있다. 온갖 귀신들도 여성들의 음력에는 못 당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삼강지략이라는 병서에는 월경 중인 여성이 적진을 향해 치마를 들고 심벌을 노출시키면 적군의 칼이나 창이 무뎌진다고 적고 있다.


풍각면 봉기리 성혈 바위 근처의 어느 집

주인은 자연 속 쉼터라고 명명했다.

성혈 바위 앞 개울



주인의 호의로 자연 속 쉼터에서 강의가 계속되었다.

성혈바위가 있는 영풍루에 접해있는 금덕사









집안에도 여러 가택신이 있다.
◆칙신 ◆삼신(産神) ◆성주신(成主神) ◆조왕신(조王神) ◆천륭신 ◆지신(地神) ◆용왕신(龍王神) ◆칠성신앙(七星信仰) ◆업신 ◆문간대신 (위의 내용은 '뉴스 서천' 2016.2.22 에서 발췌하여 옮긴 것입니다.) |

영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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