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행전 박영환
우리문화 바로알기(청도문화원) 일환으로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옛날 허부자 댁 터를 찾았다. 한 때는 만석지기의 영화를 누리던 집이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한 것 같다. 40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잡초에 묻혀 있는 빈터에 듬성 듬성 몇 기의 묘가 들어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집의 흥망에 관한 전설같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어렵잖게 발견되는 기와 조각이며 도자기 파편들이 있어 옛날 번성했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이 집이 부자가 된 것은 어느 도승과의 인연이다. 하루는 지나가는 도승이 하룻밤을 이 집에서 묵게되었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지 두 부부는 도승을 극진히 대접했다. 이에 감동을 한 도승이 보답으로 집터를 하나 잡아주었다. 소가 누워서 젖을 먹이는 편안한 터이다. 그런데 길지이긴 한데 석자를 낮추어 지어야 발복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터는 돌무더기로 되어 있었기에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마침 주인이 꾀를 내어 엽전을 돌무더기에 숨겨놓고 아이들에게 찾아가라했다. 그러자 돈을 줍는 재미에 아이들이 돌을 들어내는 통에 쉽게 돌을 치울 수 있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도승은 재산을 늘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를테면 논에 물을 늦게 빼게하여 서리를 피하게 하기도 했다. 이런 덕분에 다른 집은 흉년이 들어도 이집은 풍년이 들었다. 점차 재산은 불어났고 운이 닿으니 죽 한그릇 주고 논 한마지기 받기도 하는 등 (그런 논을 죽대지기라 한다) 얼마가지 않아 이내 만석지기가 되었다. 마을 앞도 꽤 넓은 들판인데 그 들판에 모자리를 하니 모가 조금 부족했다고 한다. 모내기를 그 들판에 한 것이 아니고 모내기를 할 모가 그 정도였다니 소유한 땅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부자집에 과객이나 걸인들이 너무 많이 찾아왔다. 안주인이 이들 수발 들려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다시 도승에게 제발 집에 사람이 좀 적게 오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간절한 부탁을 들은 도승이 말했다.
"적게 올 수는 있으나, 재산이 줄어질 것인데 괜찮겠소"
부인이 생각했다. 만석지기가 줄면 얼마나 줄 것인가
"줄어도 좋으니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집 옆에 못을 두 개 파도록 하십시오."
도승의 말을 들은 부인은 주인에게 말도 하지 않고 하인들을 시켜 급히 못 두 개를 팠다. 그런데 못을 파고 나니 집에 불이 일어나는 등 환란이 일어났으며 그러저럭 만석지기 재산이 몽땅 날라갔고 재산이 없으니 부인의 소망대로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어릴 때 우리집에도 손님이 참 많이 찾아왔다. 손님이 올 때마다 나는 이방저방을 쫓겨다녀야 했다. 그때 어린 생각에 입이 부어 구시렁거린 일이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사람집에 사람이 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그리고 우리집 사랑채가 이 동네 어느 집을 뜯어와서 지은 것이다. 이 만석꾼 집의 재목은 아니고 이 동네 어느 집을 가져와서 몸채는 우리 집안 영사재 재실로 짓고 사랑채는 우리 사랑채로 한 것이다. 그게 1950년대이다. 어릴 때 집 재목을 가지러 트럭이 가는 편에 할아버지를 졸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딱제 마을'이란 말을 듣고 지금까지 이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동리가 바로 그 동리라니 느낌이 또 다르다.
박 문화원장이 바로 이 동리 출신이기에 짐작가는 집이 있는지 물었으나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터라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우리 사랑채는 아직 잘 있다. 마침 내가 퇴직을 한 뒤, 40여 년 부산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집에 돌아올 때, 조금 고쳐 서재로 삼았다.
서재에서 잠시 할아버지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허부잣집 사연과함께 사람집에 사람와야 한다는 당부말씀을 새기곤한다. 더더욱 그 이야기가 우리집 사랑채가 있었던 마을 이야기니 더더욱 실감이 가는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맞는 말이다.

<허부자 집터>
풍수의 본래적 의미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환경을 대변해 주고 있는데 風은 기후와 풍토를 지칭하며 水는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다. 풍수의 기본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당 속을 돌아다니는 생기를 사람이 접함으로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간룡법, 장풍법, 득수법 등 많은 형식논리가 있으나 그 요체는 장풍법이다. 이것에 의해 일반적으로 명당의 조건으로 주변 사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좌 청룡(靑龍), 우 백호(白虎) 북쪽 현무(玄武), 남쪽 주작(朱雀)이 그것이다.
양택, 음택 모두 바위 산을 흠으로 삼았다. 이는 무보다는 문 쪽에 우위를 둔 조선시대에 특히 심했다. 험한 산이나 바위 아래는 살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턱대고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 장군의 기(氣)는 이것에서 받기 때문이다. 고승(高僧)들도 기를 이런 곳에서 받는다. 그래서 가야산 해인사, 속리산 법주사, 월출산 도갑사 등도 험한 바위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을 숭상하는 조선시대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감도는 땅을 선호했다. 그래서 집 뒤는 야산이고 집 앞 안산은 누에가 가로 길게 누워있는 산세를 좋아한 것이다. 이런 곳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 이런 곳이란 칼이 없어 무가 차단된 복사꽃 만발한 언덕인 것이다. 공주 지역의 명당이란 마을도 이런 형상이며 추사 김정희,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도 비자나무 숲에 둘러싸인 사신사가 완비된 집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추사의 집에는 판서, 영의정, 부마 등이 배출되었고 윤선도의 집에는 5대에 걸친 급제자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추사가에는 추사란 명필이 나왔고 녹우당에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고산의 증손자)가 나온 것이다.
천리행용(千里行龍) 일석지기(一席之氣) - 용이 천리를 내려오다가 자리 하나를 만든다고 한다. 호박도 줄기 끝에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용도 직선으로 내려오기 보다는 구절비룡(九折飛龍), 즉 이리저리 마디를 많이 만들수록 좋다.


흩어진 기와 조각과 도자기 파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부잣집의 내력 및 풍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효자수라고 한다. 열녀나 효자를 기리는 비 옆에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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