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24)
사시호(私諡號)가 절효(節孝)인 김극일 선생의 모암재(慕庵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모암재>

<2020년 6월 11일, 청도신문>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나북마을)에 소재한 모암재를 찾았다. 이 재사는 일찍이 1860년에 창건했으며 2001년에 크게 중수했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절효 김극일(金克一,1382〜1456) 선생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號)는 모암(慕庵)이다. 의흥 현감 김서(金湑)의 아들이며, 탁영 김일손의 조부이고 삼족당 김대유의 증조부이다.
야은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세종조에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고, 향리에서 후학들의 훈도에 힘썼다. 증직(贈職)은 사헌부 집의(執義)이다.
타고난 효자로 부모님에 대한 효행이 지극했다. 어머니 몸에 난 종기에 입을 대어 빨아내고 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는 직접 설사 맛을 보아 병의 정도를 가늠하며 간병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 간 시묘살이를 했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곁에 다가와 새끼에게 젖을 먹였는데 공은 제사지내고 남은 것을 먹여 가축 기르듯이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천첩(賤妾)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 사후에도 살아 계셨을 때처럼 섬겼고, 그들이 죽자 모두 기년복(朞年服)을 입었다. 이러한 일들이 임금에게도 알려져 정문(旌門)하였는데 향리유림과 제자들이 그 효행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사시호(私諡號)를 절효(節孝)라 했는데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에 등재되어 있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金宗直)은 공을 기리는 효문정려비명(孝門旌閭碑銘)에 “사람의 아름다운 행실 중에 효행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데 누군들 부모가 없으랴마는 효도를 온전하게 하는 사람이 적도다. 금관국의 먼 후손 가운데 바로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 어려서부터 효성을 지녀 백발의 나이에 더욱 새로워졌네.” 하면서 공자의 제자 중에서 효성이 두드러진 사람이었던 증자(曾子)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제(齊)나라 사람으로 부친의 병환이 나자 북극성(北極星)을 향하여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한 유검루도 공경할 만한하다고 했다.
공의 저서로는 ‘절효선생실기(節孝先生實記)’가 있으며 묘소는 재사 뒷산에 있고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紫溪書際)에 봉안하여 향사하고 있다.
모암재 앞쪽에 공의 사당인 운계사가 있는데 사당 주변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된 뚝향나무가 있다. 멀리서 보면 여러 그루 같지만 모두 원뿌리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전형적인 분지(分枝)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이 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나라에서 하사한 땅에 심어져 있고 사당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 공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이 나무를 공의 후손인 김종희 씨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유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침 이 사람은 나의 제자이기도 하여 공과 향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었다.
‘뚝향나무’란 시제로 몇 줄 올린다
언뜻 보면 여러 그루 다가서면 한 몸이네
떠난 적이 없으니 받들 일만 가득하다
알겠네, 그 뜻이 바로 절효의 삶인 걸

<모암재 전경>

<졀효선생 실기>

<운계사>

<안에서 본 뚝향나무>

<밖에서 바라본 뚝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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