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21)
임란중 무계전투에서 순절한 의재(義齋)의 각계재(角溪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각계재>

<2020년 4월 22일, 청도신문>
청도군 이서면 각계리, 고령김씨 선영 아래 좌정한 각계재(角溪齋) 찾았다.
이곳의 배향인물은 의재(義齋) 김홍한(金弘漢, 1568- 1592) 의병장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임진왜란 직전에 고령에서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로 이거한 청도지역 고령 김씨 청도파의 입청도조(入淸道祖)이다. 공은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창의하여 청도와 고령에서 크게 활약했다.
우선 청도에서는 의병군 유사(有司)를 맡았으며 7월 9일, 청도조전장(淸道助戰將) 박경신(朴慶新)이 이끄는 청도읍성 탈환 작전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 집결한 곳이 이서면 이화리(耳火里, 현재 수야 4리)였다.
고령 지역에서의 활동은 그의 재종숙인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 송암(松菴) 김면(金沔) 진영의 선봉장으로서의 활약이다. 우선 그는 4월 15일 밤에 송암에게 달려가 왜구침략의 급보를 전했으며 이 소식을 접한 송암이 유림에 통문하여 의병군단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4월 26일 송암이 참모장을 숭산동에 보내어 군사들을 훈련한 것도 실질적으로는 의재의 역할이 컸다.
그 후 초계, 마진, 함안, 죽현 등지에서 누차에 걸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6월 초순 고령군 성산면 무계진에서 수많은 적을 사살하고 적선 두 척을 포획하는 데 앞장섰다. 이때 빼앗은 물품은 궁중에서 사용되는 진귀한 것들이었다.
그 뒤 7월 말경 왜적은 이 패전을 설욕하고자 대군을 끌고 왔는데 이 때 군사들은 목숨을 걸고 결사 분전했는데 빠져죽은 왜적의 시신에 막혀 강물이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2차 무계전투는 경상우도 지역의 보전은 물론 경상도를 통해 전라도로 침공하려던 왜군의 작전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당시 대표적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전투 최전선 선봉장이었던 의재는 25세 젊은 나이로 순절하고 말았는데 전란 중이라 시신도 거두지 못하고 처가의 선영인 양산 범곡에 초혼장을 치르게 되었는데 2009년 11월, 양산시 산막공단 계획으로 이서면 각계리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공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으며 2013년 12월, 충남 보령시 임란공신 충의호국사(護國祠)에 위패를 봉안했다.
공의 외아들인 춘강(春岡) 김상휘(金商輝)는 어머니 영산신씨(靈山辛氏)도 공의 장례 뒤 순사(殉死)하고 숙부인 김홍간(金弘幹)도 전쟁 중 순절 한 터라 외숙부 신지수(辛志壽)가 신씨 가문도 몰살할 지경이 되어 산속으로 피신시켜 목숨을 부지했다.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에 증직되었다. 춘강은 11세 때 박찬 의병장(박경신의 조카)의 고명딸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박씨 부인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예몽진 의병장이 50세 홀아비에게 어린 딸을 주어 4남 3녀를 낳아 후손을 잇게 했다. 동지의 아들을 이렇게 거두어 준 우의가 감동적이며 또한 의재의 큰 인품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겨레의 별>이란 시제로 공의 뜻을 기려 본다.
청도에서 고령으로 고령에서 청도로
청도읍성 탈환 후 무계전투 선봉장
피 묻은 꽃다운 청춘 겨레의 별이 되다

의재 김홍한 장군 위패봉안 고유제(충남 보령시호국사)

김홍한 장군 추모제(무계리)

<무계마을 앞 낙동강>

<무계전투 지역>

<임란공신 호국대제>

<참조 및 인용: 의재 김홍한 장군 건립비 제안용 '각계재' 책자 및 블로그, 임진란문화선양회, 위훈인명 사적, 고령문화원 편, 송암선생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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