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주일
행전 박영환
9월 11일 수요일 아침. 여느 날처럼 보충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의자에 몸을 누이듯이 깊숙이 앉았다. 이 때였다. 복도가 갑자기 왁자하는가 싶더니, 이내 교무실 문이 급하게 열리며 내가 맡은 2학년 7반 학생인 광원이가 뛰어들어 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녀석은 분을 이기지 못해 시익씩거렸다.
“선생님, 3학년들이 술을 먹고 마구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 때 3학년들의 험상궂은 얼굴들이 교무실 창틀 주변에 매달렸다.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을 때 잠시 고개를 돌리긴 했어도 시선을 풀어 버리면 다시 더 날카롭게 광원이 면상에 깊숙이 박히는 것이었다. 또 사고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자세히 얘기해 봐, 3학년들이 어떻게 한다고?”
“공연히 시비를 걸어 마구 때립니다.”
“공연히가 아니겠지?”
“아닙니다.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그는 정색을 했다.
“아무리 3학년이라 하지만 아침부터 공연히 때릴 리가 있니?”
“어제 저녁부터 때리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이라니? 몇 시쯤?”
“8시경입니다.”
“아니 너희들, 그 시간은 학교에서 자율 학습을 할 시간이 아니니?”
“‧‧‧‧‧‧”
그는 약간 머뭇거렸다.
“그럼 또 도망을 갔구나?”
“‧‧‧‧‧‧”
“그렇게 도망을 가지 말래두‧‧‧”
“‧‧‧‧‧‧‧”
“며칠 전에도 그렇게 약속을 하고는”
“‧‧‧‧‧‧”
“너 혼자 간 게 아니지?”
“모규, 대현. 성호가 같이 갔습니다.”
“그럼 같이 맞았겠구나.”
“‧‧‧‧‧‧”
광원, 모규, 대현, 성호 - 이들은 학년초부터 성긴 뿌리가 흙을 비집고 올라와 이따금 발에 걸리곤 했다.
광원이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날카롭다. 그는 가정 환경부터 안정이 되어 있지 않다. 그가 초등 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가출을 해 버렸다. 아마 그의 성격은 이런 결손 가정의 영향이 큰 듯하다.
평소엔 매우 명랑하고 싹싹하지만 일단 배알이 틀어지면 중심을 잃어버린다. 먼저 시비를 거는 일은 없지만 상대방이 비위를 상하게 하면 참지 않는다.
광원이 아버지는 선원이다. 그 역시 성질이 무섭다. 광원이가 한 번 눈에 나게 되면 심하게 때린다. 그것이 더 빗나가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성질이 누그러지면 한없이 자상하며 정이 많다. 엄마 없이 자라는 아들을 안쓰러워 하기도 한다. 그는 생업을 위해 멀리 배를 타고 나가게 되어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는 꼭 학교를 찾아온다.
“선생님께서 광원이의 아버지도 되고 어머니도 되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시라고 안심을 시켜도 몇 번이나 더 부탁을 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모규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지만 매우 어리석고 순한 아이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이 게으르다. 공부에 열의가 없다. 지각이 많다. 일주일에 3-4회 정도는 지각이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폐가 나쁘다고 진단을 받아 6개월 정도 치료를 했다. 약간 낫게 되자 광원 대현 성호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이들은 자율 학습 시간에 도망을 나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깡소주를 마신 적도 있다.
대현이는 가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봄 아파트 옥상에서 술을 마신 사건을 알고 부모들을 학교에 오시게 한 적이 있다. 부모께 알리면 혼이 날 것을 안 녀석은 친구 집으로 잠적한 것이다. 결국 이틀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부모의 애를 많이 태웠다.
성호는 외아들이다. 딸이 많은 집에서 귀엽게만 자랐다. 심성은 한없이 착하고 겁도 많지만 게으르다. 크게 나쁜 일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매사에 소극적이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광원, 모규, 대현, 성호 이들로 봐서는 저녁 8시에 나갔다면 아주 오래 버틴 것이다. 그날은 마침 감독 선생님이 출석 점검을 빨리 했다. 그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이제 나가도 담임이 모를 것이란 생각에 잽싸게 교문을 벗어나 저네들의 자주 어울리는 골목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의 사단은 그곳에서 시작되고 말았다. 거기에서 3학년 8반 성무, 민국이를 만난 것이다. 이들은 약방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 하기야 광원이 일당은 술을 먹고 왔다고 하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 8반 담임도 약방에 갔다 온다기에 허용을 해주었다니 약국에 갔다 온 걸로 결론이 나 있다.-
아무튼 우쭐한 상급생 기분으로 불러 세웠다. 자율 학습 시간도 끝나지 않은데 왜 도망을 가느냐는 것. 이들은 일단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정도로 끝났으면 되었을 것인데 평소에도 이들을 별로 곱게 보지 않았던 3학년들이 기회로 생각하고 복장이 불량하다느니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느니 하면서 불러세웠고 급기야 성호의 뺨을 몇 대 때리기까지 했다. 처음에 몇 대 얻어맞을 때만 해도 참으며 빌었다. 이들이 비는 모습을 보니 재미가 있었던지 3학년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몇 대 더 때렸다. 그러자 광원이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야 성호야, 맞지 말고 가자. 3학년이면 다가.”
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것들 봐라”
3학년들은 가방을 빼앗으려 했다.
“이것 놔”
힘으로 할 것 같으면 비록 3학년들이라도 이들을 당할 수 가 없었다. 더욱이 이들 3학년들은 키도 작은 편이었다.
“거기 서지 못해”
“억울하면 내일 2학년 7반에 오너라.”
약까지 올리며 도망을 갔다.
이튿날 9월 11일 수요일 아침, 3학년들이 격분했다. 3학년 8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막대기, 빗자루 등 중무장(?)을 하여 2학년 7반을 에워쌌다. 성호는 날샌 동작으로 도망을 했지만 광원이 모규, 대현이는 잡혀서 주먹, 발길, 몽둥이에 의해 난타를 당했다. 그러자 힘이 센 광원이는 밀대를 휘두르며, 베란다의 저지선을 뚫고 교무실로 뛰어내려 온 것이다.
일의 전말을 파악한 나는 무조건 우리 반 아이들을 크게 꾸중했다. 하기야 아무리 상급생이라도 주먹부터 앞세우는 것, 거기에다가 만일 술이라도 먹었다면 이들 역시 용서 못할 일이지만, 그렇게 따지다가는 문제가 더 어렵게 꼬인다. 그 모든 것을 일축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조건 이놈들의 잘못만 부각시켜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에게만 호통을 쳤다.
단체 생활, 교복을 입은 학교에서 선후배의 기강은 엄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3학년들은 이제 입시가 백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풀어 줘야만 한다.
담임 정선생께 양해를 얻어 저녁 자율 학습이 시작되기 직전 3학년 8반 교실에 들어갔다.
“이제 100일도 남지 않는 입시란 큰 고비를 남겨 두고 여러 가지로 심적 고통이 많을 줄 압니다. 이럴 때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이 여러분들의 분위기를 흩어 놓는 일이 있어 담임으로서 한없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흔히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선배와 하나님은 동격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농담이라 해도 학교 사회에서는 진실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의 버릇없는 일들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들을 당장 여러분들에게 무릎을 꿇게 하려 했으나 여러분들이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되면 다시 화가 되살아 날 것 같아 나혼자만 와서 사과를 하니 여러분들이 나를 봐서라도 이해하기 바랍니다. 피해 당사자인 성무와 민국군은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여, 직접 사과를 시키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일로 여러분들의 입시에 피해를 입게 된다면 여러분들 개인은 물론 학교도 큰 손해입니다. 부디 이 일을 빨리 잊어버리고 학업에 매진하기 바랍니다.”
교실을 나오면서 성무와 민국이를 상담실로 데리고 와서 우리 반 네 사람에게 큰절을 시키며 진정으로 사과하라고 일렀다. 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다고 빌었다. 성무와 민국이도 미안하게 되었다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이들의 손을 붙들고 앞으로 더 잘 지내라고 부탁했다.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그게 끝난 게 아니었다. 타는 불씨만 두고 물만 몇 바가지 부은 격이 되었다.
9월 12일 목요일 아침, 3학년 아이들이 다시 시작했다. 이대로 어물쩍 눈을 감아 준다면 2학년들이 계속 3학년을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의협심에 불타는 수십 명이(어떤 아이들은 100명이라고 하지만 4-50명은 되는 듯) 떼거지로 우리 반에 몰려 왔다. 출구마다 지켜서고 돌격 대원들이 이들 4명을 나꾸어 챘다.
"감히 3학년을 능멸하다니. 3학년 무서운 맛을 보여주겠어."
모규는 행동이 느려 교실에서 잡혔다. 어떤 녀석이 의자로 내려 쳤기에 제자리에서 실신하여 양호실에 업혀 갔다. 대현이는 계단에서 잡혀 어깨뼈에 금이 갔다. 광원이에게는 몰매가 날아왔다. 그들의 주된 표적은 광원이었다. 덫에 걸려 파닥이는 그에게 수십 명이 뒤엉켜 닥치는 대로 때렸다.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해도 이미 그들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내가 급장의 급보를 받고 교실에 뛰어 갔을 때는 성호만 벌벌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뛰쳐나가고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이야긴즉 큰 형님들을 데리고 오겠다며 뛰어나갔다는 것이다. 큰 형님들- 이른바 이 지역을 누비는 어깨들이다. 화가 난 김에 평소 안면이 있는 그들의 힘을 빌리러 갔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칼부림등 대형 사고라도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일었다. 교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이 때 3학년 2반 아이가 눈 부위에 피를 흘리며 교무실로 뛰어 들었다. 광원이가 던진 콜라 병에 맞은 것이다. 광원이 녀석 몰매를 맞고 보니 그 역시 이성을 잃은 것이다. 3학년 2반의 경수는 광원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아이다. 그는 구경도 한 일이 없다. 그가 맞은 자리도 교실의 반대편인 매점 앞이다. 두들겨 맞고 시익씩 거리며 매점 앞을 뛰쳐나가는데 경수를 만난 것. 그 때 그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나중에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당시는 분명히 자기를 때린 아이였다는 것이다. 너도 죽어 봐라 옆에 놓여 있던 콜라 병을 냅다 던진 것 같은 데 그 이후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취하는 친구집 빈방에 누워 있었다.
아무튼 때아닌 기습을 받은 경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왼쪽 눈썹 부위가 찢어졌다. 다섯 바늘을 꿰맸다. 동공을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불행중 다행이랄까.
광원이를 찾아야 한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광원이를 찾아야 한다. 덜 다친 성호가 찾아오겠다고 나섰다. 그와 가까운 호민이 영해 등도 같이 나섰다.
3학년 2반 경수 집에서 난리가 났다. 멀쩡한 아이가 학교에서 콜라 병에 맞아 다섯 바늘을 꿰매고 보니 분통이 터진 것이다. 광원이 놈을 찾아내라고 펄펄 뛰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광원이, 모규, 대현이가 성호 등에 끌려 교무실에 나타났다.
광원이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온 얼굴이 찢어져 상처투성이고, 퉁퉁 부었다. 다리는 절룩거리고 팔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무자비하게 때릴 수가 있는가?
모규는 의자에 맞아 겨우 정신을 차리긴 해도 어지러워 죽겠다는 것이다. 혹시 뇌라도 다친 것이 아닌가? 대현이도 어깨가 몹시 아프다고 호소를 했다.
3학년 집단 폭행을 한 놈들을 전부 색출해야 한다. 오전에도 잡으려고 학생부 여러 선생님 등이 시도를 했지만 전부 쉬쉬하는 통에 도저히 윤곽을 잡지 못했다. 선생님들 중에도 3학년을 두둔했다.
`집단 폭행은 폭행이 아니다`라고. 3학년 성모 선생의 어처구니없는 궤변.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소.”
내가 언성을 높이자 약간 머쓱해진 그가 의자에 앉았다. 집단 폭행이 폭행이 아니라니. 따지고 보면 집단 폭행이 더 죄가 크다. 1:1의 싸움은 아이들에게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다수가 펀치 볼을 때리듯이 주먹, 발길질, 각목으로 난타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급생이면 법도 없나. 여기가 어디 인민 재판장인가. 학생 부장도 집단 폭행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노발대발하며 3학년 사진 철을 이들 앞에 내어놓았다. 모규와 대현이는 정신이 없어 누군 지를 전혀 모르겠다고 했으나 광원이는 용하게도 몇 명을 짚었다. 9명이 잡혀 왔다. 처음엔 아니라고 길길이 뛰던 놈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실토를 했는데 더 이상은 잡아내지를 못했다. 의협심이 강한 이들이라 알고도 시침을 떼고 자기들만 희생양이 되겠다는 투였다. 끝내 그들만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조금 상태가 덜한 대현이는 교실에 그대로 두고 광원이와 모규를 데리고 K병원으로 갔다. 이 병원은 우리 학교의 지정 병원이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의 선배가 경영하는 병원이기에 여러 가지 일 처리가 수훨했다.
병원에 가는 길에 마침 모규의 아버지를 만났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공교롭게도 모규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만난 것이다. 놀란 아버지는 태운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들을 싣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에게도 집단 폭행을 당했느니 하는 따위를 시시콜콜히 얘기 할 수 없었다. 3학년들에게 대든 이야기만 대충했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규는 뇌를 찍고 광원이는 팔을 찍었다. 모규의 뇌사진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선배인 B원장은 사진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도 약간은 긴장하고 있었다. 잠시 뒤, 원장은 약간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직은 별로 이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간접 촬영이고 하니 좀더 지켜봐야 합니다. 저녁이라도 갑자기 구토를 하게 되면 즉시 병원으로 오십시오. 광원이의 팔도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그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점심도 굶은 것이다. 이제 별 이상이 없다니 밥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근처 분식점에서 약간 허기를 채우도록 했다.
저녁, 자율 학습 시간, 3학년들이 떼로 몰려 왔다. 3학년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하는 집단 항의 형식이다. 아마도 그들과 아침에 같이 올라간 아이들인 모양.
3학년 주임인 민 선생은 학생부선생님들이 심하게 다뤄 집단 데모의 기미가 보인다고 펄펄 뛰었다. 1학년 주임인 강 선생이 3학년의 태도에 핀잔을 주자, 두 사람이 티격태격. 정말 아이 싸움에 어른 싸움이 된다. 이래저래 교무실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그런 속에 3학년 2반 경수의 집에서 펄펄 뛴다는 모규 어머니의 전갈이 왔다. 그 때까지 광원이의 아버지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이도 아버지가 겁이 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규의 집에 있었다. 연락이 닿으면 가서 사과를 시킬 요량으로 있었다. 그러나 당한 쪽으로 보면 이쪽 사정도 모르고 멀쩡한 아이에게 다섯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혀 놓고 한마디의 말도 없으니 분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물론이고 담임인 나까지 고발하겠다고 야단이란다. 나의 뒷조사를 하여 목을 자르겠다는 말을 늘어놓더라는 것이다. 정말 힘이 쭉 빠진다. 담임하기 정말 힘들다.
“선생님 어쩌겠습니까? 광원이 아버지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하니, 우리 모규 아버지와 같이 가보죠. 저가 몸이라도 성하면 가서 사정을 하련만....”
모규 어머니도 그 때 머리 수술을 하여 머리를 빡빡 깎고 치료 중이었다. 이 집은 올해 완전히 수난의 연속이다. 얼마 전 아버지도 교통 사고로 사경을 헤매다가 퇴원을 한지가 얼마되지 않는다.
고발 운운하는 소리에 마음이 선듯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모규 어머니를 생각했어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모규 아버지의 차를 타고 경수 집에 들어갔다. 모규 아버지는 오늘 낮부터 아이들 때문에 운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식 친구라지만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들이 들어섰을 때 경수 아버지는 인사도 받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부터 질러 댔다. 광원이는 자신이 두들겨 맞아 온몸이 파김치가 된 것은 뒷전이고 사색이 되어 꿇어앉아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경수 아버지는 언제 주워다 두었는지 광원이가 던진 끝이 깨어진 콜라 병을 광원이 앞에 불쑥 내밀었다. 이건 흉기야. 고발할거야. 한 번 갇혀 봐야 지옥 맛을 알지. 이놈의 새끼 법이 없다면 죽여 버리고 싶어. 아직까지 네놈 정도는 몇 명도 상대할 수 있어. 아이에게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며, 그 큰 눈을 부라렸다. 그는 왕년에 힘깨나 쓴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우람한 체구였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도 주변엔 꽤나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웃간의 조그마한 일에도 전혀 양보하지 않고 말이 많으며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에게 걸려들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날의 경황을 설명하려 하자 나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뭐요. 이 아이 변명하러 왔소.”
정말 기가막힐 수모였다. 당장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겨우 삼키며 담배 한 대만 피워 물었다. 모규 아버지와 광원이가 계속 매달려도 오늘 밤 자면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겨우 얻어내고 돌아왔다.
9월 13일 금요일 새벽, 모규 어머니는 광원이를 데리고 다시 경수집을 찾았다. 전날 광원이 아버지와 연락이 되었지만 광원이는 역시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광원이가 그 꼴을 하고 들어가면 그 아버지는 아픈 팔을 안타까워 하기는 고사하고 한 팔을 더 부러뜨릴 성질이었다. 어머니가 없으니 완충 지대가 없었다. 아내가 가출을 하고 난 뒤 재혼도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동안 그의 성격은 매우 날카롭게 되어 있었다. 보복 심리가 상승하여 아이들에게도 전혀 용서를 할 줄 몰랐다. 광원이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도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폭발을 해 버린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모규 어머니는 광원이를 집에 보내지 않고 자기 몸도 성치 못하면서도 어머니 몫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 학교 2학년 짜리 광원이 여동생도 경수 집에 전화를 걸어 경수 아버지께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아저씨, 우리 오빠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가 없는 우리 집은 오빠가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이제 오빠마저 구속이 된다면 저는 어떻게 혼자 살아야 합니까. 밥을 해줄 사람도 빨래를 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인정머리가 없는 경수 아버지라도 여동생의 눈물 앞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학교에 찾아와서 나를 만나 악수를 청했다. 그 때 그는 '청소년 지도 자문 위원'이란 명함을 하나 내놓았다. '청소년 지도 자문 위원'이라‧‧‧‧‧ 뭔가 묘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한술 더 떠서 명언(?)까지 한 마디 던졌다. 뭐,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다나.
10시 경 3학년 가해자 학부모들을 소집했다. 학생 주임의 설명을 들은 부모들은 사색이 되어었다. 이어서 나도 몇 말씀 덧붙였다.
“어제의 처사는 정말 내가 맞은 것과 진바 없습니다. 담임이 3학년 교실에 들어가 극구 사과를 했는데도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3학년의 분위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시시비비를 첫날부터 가릴 수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우리 아이들만 꾸짖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과를 한 것은 물론 아이들에게 큰절까지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폭행을 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어제의 진찰 결과 아직까지 큰 병명이 없기도 하거니와 또 3학년이란 급박한 시기를 생각하여 또 한 번 물러서기로 했습니다.”
명현이 아버지 등 9명은 고개를 숙였다. 명현이 아버지가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약간 망설였다. 사실 광원이의 아버지와 모규의 부모도 이 내용을 아직 상세하게 모르고 있었다. 공연히 방문을 하여 문제를 더 확대시키지 않을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부모들이 찾아가는 것을 별로 동의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기회에 이 아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공연히 가해자 부모들이 그곳에 가서 빌고 치료비라도 물려주고 하면 아이들이 오히려 우쭐해져서 또 다른 못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생각도 일리는 있었다.
“박 선생 아무래도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거요. 문제가 여기에서 끝나 버리면 몰라도 만일에 후유증이 생긴다면 매우 난처해질 거요.”
딴은 그러했다. 그래서 명현 아버지를 포함해서 3명, 학생 주임, 그리고 내가 일단 모규의 집을 찾았다. 마침 아직까지 광원이도 모규의 집에 있었으니 그것이 좋을 듯했다.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모규의 어머니는 예상보다도 더 침착하고 부드러운 분이었다.
어제 경수 아버지의 왕방울 눈망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머리를 깎아 수건을 쓰긴 했으나 조금도 흐트러진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목청 한 번 높이지 않았다. 감정을 삭이는 내면의 고통이 심할 때마다 눈가에 물기가 젖어 오르곤 했다. 이렇게 착한 분이 있는가? 많이 배우고 학식이 있는 분도 아니다. 몸에 배어 있는 타고난 천품같았다. 모든 걸 운수로 돌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모규보다도 광원이를 더 걱정했다.
“모규는 그래도 어미가 있어 끼니라도 잊지 않고 찾아 먹이지만 광원이는 제손으로 끓여 먹다 보니 밥인들 제대로 찾아 먹었겠습니까. 저 깡말라 있는 체구를 보면 마음이 늘 아팠는데 오늘도 저 모양으로 맞고 온 것을 보니 너무 안쓰럽습니다”
3학년 부형들도 마음이 아파 광원이의 아픈 팔을 어루만지며 부모가 대신 사과하니 마음을 풀어라고 했다. 나도 몇 마디 덧붙였다.
“광원이, 모규 어제 K 병원에서 너희들 선배님인 원장 선생님을 보았지. 얼마나 너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니. 만일 너희들이 후배가 아니고 일반 환자로서 그곳을 방문했다면 그런 대우를 하지 않았을 꺼야. 그게 선후배간의 정리이다. 그분은 아마 선후배 간에 다툰 너희들에게 몸과 마음으로 교훈을 주신 것이다. 이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선배들과 다투어서는 되지 않을 거야. ”
두 사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오후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모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광원이는 싫다고 했다. 왜? 내가 종용을 하자 주사 바늘이 겁이 나서 병원에 안 간지가 오래 되었단다. 이 아이가 이렇다. 그렇게 마음이 여리다. 그러면서도 욱하는 감정 달아 오르면 스스로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모두 웃었다. 내심 주사 바늘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라면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에 일변 마음이 가볍기도 했다.
모규의 집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어 광원이 고모와 숙모가 찾아왔다.
광원이가 소식이 끊어져 찾아 왔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 광원이 아버지에게 모규의 집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잘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숙모와 고모에게 3학년 몇 명에게 몇 대 맞긴 했지만 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도 아이들끼리 싸울 수 있는 일이라 하며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되었다고 하면서 치료비 같은 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고 했다. 나도 약간 덧붙였다. 교육적으로 변상 운운하여 아이들의 기를 살게 하면 안될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이들을 단단히 혼을 내어 다시는 상급생에게 달려들거나 다른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긍정을 하며 모규 집으로 갔다. 일은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저녁,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모규 어머니 전화가 날아들었다. 광원이와 모규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구토를 하다니, 구토를 하면 안되는데` 모규 어머니는 병원에서 타 온 약도 있고 하니 약을 먹이고 좀 두고 보다가 그래도 호전이 되지 않으면 병원에 입원을 하겠다고 했다. 저녁 8 시경, 모규 집에 전화를 넣었다. 어른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모규의 동생이 받았다. 점차 더 구토를 심하게 하여 저녁 7시경 T 병원에 새로 입원을 하러 갔다는 것이다. 현기증이 핑 돌아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걸 어쩌나. 어쩌면 두 명 다 모질게 난타를 당했으니 모두 뇌를 다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온갖 망측한 생각이 다 들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9월 14일 아침, 일찍 모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저녁에 응급실에서 뇌사진 촬영을 다시 하긴 했지만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런데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입원실도 없어 복도에 눕혀 놓았단다. 아이들은 자꾸만 어지럽다고 하니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울먹였다.
교감 선생님과 학생 주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폭행을 한 아이들을 다시 모으고, 부모들도 다시 학교에 오게했다. 학부모 3 명과 함께 H 병원을 찾았다. 우리가 갔을 때 광원이는 입원실에 있었고, 모규는 입원실도 없이 그냥 복도에 있었다. 모규 어머니,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자기 자식은 복도에 두고 광원이를 병실에 먼저 들여보내는 마음. 두 명 다 링겔 주사를 맞고 있었다. 어제 볼 때보다 더 악화가 되어 있었다. 아픈 곳을 이곳 저곳 만져 보았다. 광원이는 코뼈가 심하게 다쳤고 팔이 아프며, 전신에 맞은 흔적으로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그리고 심한 기침을 했으며 기침을 할 때마다 온 몸이 저리고 아프다고 했다. 모규는 다른 데는 몰라도 자꾸 어지럽다고 했다.
얼마 후 병원의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두 명 다 머리엔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상처는 깊다 해도 세월이 해결할 것이고 머리가 괜찮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부형들도 다소 긴장을 풀며 광원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광원이 아버지도 아이들이 별 문제가 없으면 같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문제를 삼지 않겠다고 했으니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9월 15일 월요일 아침, 3학년 부형들이 떼로 몰려왔다. 아마 광원이 아버지와 해결이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도저히 상종을 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광원이 아버지와 고모를 싸잡아 비난했다. 전날 광원이 고모와 부형들의 다툼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3학년 어머니들이 고모에게 광원이가 꾀병을 하고 있다는 투로 얘기를 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 집에서 펄쩍 뛸 수밖에... 또 광원이 아버지가 적어도 4-50명이 집단 구타를 했다는데 왜 아홉 명의 부형만 나타나느냐고 했단다.
“4-50명 명단을 주시오”
3학년 부형들이 되레 큰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도 원망 비슷한 말을 했다. 병원에서 아이들의 아픈 곳을 왜 살폈느냐는 것. 참 기가 막히는 생트집이다. 담임이 아이들의 상처를 살핀 것도 죄란 말인가?
사실 나는 사고가 나던 날도 아이들의 상처를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일부러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동정의 빛을 보이는 것은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초췌한 몰골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들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짓이겨 놓을 수 있단 말인가? 3 학년들이 얼마나 잔인한가. 당신들도 한 번 살피시오. 크게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감추느라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상처 부위를 살폈던가? 물론 나의 마음이 어두우니 표정까지야 어찌 감출 수 있었겠는가? 그것을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딱한 사람들.
오후에 교장 선생님이 2학년 학부형들을 설득하여 일을 빨리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는 방해도 하지 않겠지만 중재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광원이 고모부와 고모가 학교에 찾아 왔다. 고모부 왈, 이제는 자기가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하면서 때린 학생들을 고발하겠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번 일로 무척 신경을 쓰시게 하여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맙기도 하지만 3학년 부형들이 미워서 고발을 하겠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그런 말을 하고 싶지만 또 중재를 할 수밖에.
"잘 해결이 되었으면 합니다."
9월 18일, 아이들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광원이 아버지도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팽팽하던 양쪽의 입장도 대폭 양보가 되었다.
이튿날, 광원이, 모규는 학교에 나왔다. 광원이는 병원에서 만들었다면서 매듭을 나에게 선물했다. 이렇게 세심하고 부드러운 아이가 그렇게 거칠 수가 있는가?
광원이는 장차 자동차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 모규도 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하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몇 번이고 이런 일이 없도록 타일렀다. 정말 지루한 일주일이었다.
- 1990년대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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