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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을(소설, 수기 등)

얼 굴

 얼   굴 

 

행전 박영환

 

오래 전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 드는 순간, 전화 벨 소리가 요란했다. 수화기를 들면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새벽 두 시였다. 

 "여보세요, 박 선생님 댁입니까?"

 "그렇습니다만은…."

 "선생님 계십니까?"

 "제가 박 선생입니다만, 무슨 일로..."

 단잠을 깨운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잠도 덜깬 상태라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밤중에…. 여기는 보현 파출소입니다."

 "파출소라고 했나요?"

 잠결이라도 '파출소'란 말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네, 다름이 아니고, 선생님 반에 서형태라는 학생이 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형태가 무슨 사고라도 저질렀나요?"

 "네, 일을 좀 벌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선생님께서 파출소에 좀 오셨으면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복지교회(福地敎會)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기물을 부수었습니다."

 "복지교회(福地敎會)라고요…."

 '그 놈의 '福'자가 또 말썽이구나' 갑자기 뒷골이 몹시 아팠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택시를 잡았다.

 서형태. 그는 백색 미국인과 한국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어머니 쪽보다는 아버지를 많이 닮아 키도 크고 머리는 갈색이며 눈은 푸른 빛을 띠는 이목구비가 준수한 미남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미남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얼굴 때문에 심한 컴플렉스를 앓고 있었다.

  항상 그에게 호기심 어린 눈, 야릇한 미소가 따라 붙었다. 그는 시선의 횡포라고 했다. 그 횡포가 쏟아지면 그는 달아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 시선들에 무너지면서 그 자신을 자학하기 시작했다. 조화될 수 없는 불순물이라 여기며 마침내 사탄의 후신인 뱀의 모습에 비유했다.   

  그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자학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생모가 나타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던 것이다. 그 이전인 고1때까지만 해도 비록 혼혈아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어도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대로 잘 이겨내었다. 이따금 마음의 상처를 받고 언짢아 할 때마다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엘리트 미국이었단다.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랑을 하게 되어 결혼하고 너를 낳았다. 아버지는 너를 신의 축복이라고 말하며 끔찍히 사랑했는데 안타깝게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너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을 항상 명심하고 주변에서 혼혈아니 하는 말을 해도 휘둘리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고 2 초봄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어떤 여자가 느닷없이 손을 덥석 잡았다. 뿌리치려 하자, '형태라고 했니? 내가 네 엄마다' 하는 것이었다. 한눈에 보아, 정신 상태가 온전치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대꾸도 하기 싫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는데 '형태야, 내가 네 엄마다.' 하고 다시 따라 왔다. 왠지 더럭 겁이 나서, 버스를 기다릴 틈도 없이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방과 후 집에 돌아오니 그 여자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여자의 쓰잘 데 없는 짓거리라 해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귀찮아 고함을 꽥 지르고는 대문에 뛰어 들어가 빨리 문을 잠궜다. 어머니도 제풀에 꺾여 돌아갈 것이니, 전혀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집 주위를 맴돌면서 아들을 돌려 달라고 계속 소란을 떨었다. 약간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여자가 친어머니란 생각은 전혀 안 했다. 그런데 그렇게 5일쯤 되던 어느 날 형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를 우연하게 듣고 말았다. 

 "지금도 늦지 않다. 돌려 주고 마음을 고쳐 먹어라."

 "형태를 돌려 주다니요.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안됩니다."

 "키운 정이 아무리 깊다 해도, 천륜을 어찌 끊니?"

 "그 여자는 이미 천륜을 따질 자격이 없는 여자입니다. 형태는 내 아이예요"

 "그래도, 생모가 나타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니 할 말로, 뭇 양코배기 더러운 피가 섞인 것을 이 기회에 청산 해버려라?"

 "어머니니니니….!"

  형태는 하늘이 무너지듯 앞이 캄캄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의 출생은 축복받은 것이 아니었다. 대구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하던 생모는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형태를 낳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미끼로 어느 병사를 찍어 아버지라고 우기며 미국 행을 시도했는데 그 미국 병사는 그녀를 오히려 역 이용해 교묘하게 돈만 챙겨 도망가고 말았다. 그녀는 완전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 있어 형태는 한없는 실수였다. 마침내 그녀는 핏덩이인 형태를 세 얻어 살던 주인에게 며칠만 맡아 달라고 속이고는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기를 돌보며 아이의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도망간 그녀가 나타날 리 없었다. 약속된 날짜가 훨씬 지나면서 점차 의심을 하게 되었고 한 달여가 지난 뒤에는 의도적으로 숨어버린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녀는 아기 어머니의 괘씸한 행동을 원망하며 영아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영아원 문을 열던 순간 '엄마' 하는 아기의 가냘픈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순간 한 발자국도 더 떼어 놓을 수 없었다. '인연'이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무슨 망측한 생각, 네 정신이냐?' 생각을 고쳐 먹고 억지로 영아원 문을 다시 밀려고 했을 때 아기는 금방 잠에서 깨어나 또 '엄마'하고 생긋 웃었다. '엄마'라고, 아직 핏덩이가 '엄마'는 무슨 '엄마'라고 불렀겠는가. 환청이었지만 그녀에겐 분명 환청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없이 외치는 아기의 '엄마'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체온으로 그를 감쌌다.

 '그래 내가 네 엄마다' 그녀는 이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을 수용하기로 했다. 마침내 영아원으로 향하던 발길을 동사무소로 옮겨 자신의 호적부에 자기 성을 따서 '서형태'라는 이름으로 올렸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지내는 처지였다. 이 사실을 안 친정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당장 아이를 영아원에 가져다 주고 재혼이나 하라고 닦달했다. 그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아예 부산으로 피신했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도, 예기치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이웃 사람들은 그녀를 몸 간수 잘못하여 양코배기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비아냥거렸다. 그녀가 지나가면 괜히 귓속말로 쑥덕거리며 냉소를 보냈다. 일일이 그 사정을 털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니 무척 힘들었지만 그 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형태를 꼬옥 껴안았다. '형태만 밝게 자란다면 무슨 소릴 들어도 좋다.' 그녀의 형태에 대한 정성은 지극했다. 어머니의 이러한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형태 역시 학교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 참담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형태는 달라지고 말았다. 실수로 태어나 축복받지 못한 출생을 한 자신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가 많은 사람으로 행복을 누렸어도 안 되고 누릴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밀턴의 '失樂園' 중, 낙원에서 쫓겨나는 사탄의 후신인 뱀을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수첩에는 '실락원'의 시구 중, 자신과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구절들을 메모했으며 그것들을 암송했다. 그러면서 생긴 마음의 생채기에 핏자국이 흥건히 고이도록 할퀴고 할퀴었다. 그의 행동은 끈 떨어진 망아지였다.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란 신분을 잊고 폭음을 하며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지옥은 견딜 수 없는 소리를 듣고, 지옥은 하늘을 보고 무서워 도망치려 했지만 엄한 운명은 그 암담한 기초를 너무 높이 놓고 단단히 묶었다."

 사탄이 천군의 성자 메시아에 의해서 지옥으로 추방되는 실락원 6편의 시구를 외쳤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사탄입니다. 그가 아무리 후회를 하고 뉘우쳐도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핏줄을 받은 저 역시 뱀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는 숙명을 타고 났으며, 사탄의 '중마전'에서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제 핏줄을 타고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뱀들이 꿈틀대는 한 '복락원(福樂園)'은 너무 두렵습니다. 중마전을 노리는 '福'자는 매우 두려운 존재입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福'자 때문에 여러 번 소동이 벌어졌다. 한 번은 우리 반에 한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이름이 '永福'이었다. 영복이는 첫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곁들여 농담을 했다.

 "나는 영원히 복이 많은 사람이란 뜻으로 영복이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좋은 친구들을 사귀며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나의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날 그 인사 때문에 영복이는 서형태에게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는 일반적인 인사,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인사였으나 형태는 '福'자를 들먹이는 그가 꼴사나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형태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내가 파출소에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의자에 엎드려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내가 들어서자

 "선생님 죄송합니다. 녀석이 아무리 집 주소를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주머니를 뒤졌더니 마침 수첩 하나가 있더군요. 거기에 적힌 학교와 학번을 보고 학교에 연락하여 선생님 댁 전화 번호를 알아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복지교회(福地敎會)라고 하셨죠?"

 "네 우리 파출소 건너편 저 복지교회(福地 敎會)입니다. 저기 보이지 않습니까?"

 '복지(福地)'란 말이 나오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주먹으로 의자를 쥐어박았다.

 "무엇이 그렇게 복(福)이 많아 복지교회(福地 敎會)냐"

 분이 풀리지 않아 시근덕거렸다.

 "그대의 원죄 이래, 참된 자유는 상실 되었다." 원죄를 들먹이며, 그는 또 '실락원' 구절을 외쳤다. '福'자에 대한 형태의 사연을 알게 된 경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파손된 유리창 및 기물은 담임이 책임지고 배상시키겠다는 확인서를 썼다. 희멀건한 새벽이 머쓱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날 가출을 하고 말았다. 집앞까지 데려다 주며 학교에 오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일주일이 지난 뒤 겨우 수소문하여 찾았다. 상담실에 앉았다.   

 "선생님 저는 정말로 저의 얼굴이 밉습니다. 선생님, 얼굴은 거울과 같아서 상대편의 얼굴을 맑게도 하고 흐리게도 한다고 하더군요. 선생님, 저의 뱀과 같은 얼굴은 배달 백의민족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얼굴이죠? 말하자면 깨끗하게 입은 흰옷에 먹물을 묻히는 것처럼…."

 그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참, 제 얼굴은 백색이니 먹물은 아니죠! 그럼, 우유, 아니 그건 너무 고급스럽고. 그래요, 하이얀 독버섯, 그것보다도 백사(白蛇)가 지나간 흔적. 그래 그게 맞는 것 같예요, 저는 백사예요, 확실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컵에 냉수를 따라주자 급하게 마시더니 성이 차지 않은 듯 주전자를 거꾸로 세워 벌컥벌컥 들이켰다.

 "천천히 마셔라. 너무 급하게 마시면 물도 체한단다."

 "차라리 체했으면 좋겠습니다."

 "체하면 좋다니?"

 "찬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이런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고통밖에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형태야, 우리가 살아나가는 과정 중에서, 자만도 금물이지만 자학은 더더욱 금물이야. 그런데 형태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비하하며 자학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건 자학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얼굴의 색깔은 바뀌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얼굴의 색깔은 특성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형태는 얼굴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문제인 것 같구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무엇이 해결 됩니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고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그의 벽은 너무 단단했다.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그가 만든 벽 속에 꼼짝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아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꼭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종전과 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 들어가려 해도  얼굴이 먼저이죠. 오죽하면 얼굴이 추천장이라고 했겠습니까? 이런 얼굴에는 추천장이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었다. 취직을 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었다.

  "그런게 아니란다. 형태의 말대로 얼굴이 추천장이란 말도 있지만 얼굴보다 마음을 더 중요시 하여 마음이 신용장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단다."

  "추천장 없는 신용장이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추천장을 가지고 간 사람이 신용장을 받지 못한 일은 있어도 신용장을 만든 사람이 추천장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사람에게 위로일 뿐, 저는 아무래도 취직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어투는 부정적이었지만 내가 그의 말과 생각에 대해 아니라고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얼마든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니다. 형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담임을 믿어."

  "......" 

  그 날 이후 그의 굳어버린 벽에 잔금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아가 자락 하나가 빼꼼히 내밀었다. 그 자락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커졌다. 정말 고마웠다. 마침내 실락원의 구절도 외우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영복이등 학급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는 어느 날, 형태는 취직을 하겠노라고 어느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1차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취직을 하면 키워주신 어머니께 보답하고 생모의 생계도 도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2차 면접 고사에서 물거품 되고 말았다. 이유는 외모였다. 다시 그래도 이해하는 회사가 있으려니 하는 기대로 포기하려는 그를 또 설득하여 원서를 내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형태에게 늘어놓은 신용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두 실없는 거짓말이 되었다. 정말 답답했다. 크게 낙담한 형태는 다시 실락원 구절을 들추어 내었다.

 그는 졸업 이후 소식을 끊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미국에 이민을 간다고 했다.

 

 추천장이 없는 얼굴을 가진 제가 신용장을 만들겠다고 덤벼 들었던 것은 터무니 없는 만용이란 것을 새삼 깨닫고 혹시나 추천을 해줄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나라로 떠나갑니다. 링컨은 나이 40 세가 되면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했는데 저는 태어나면서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강요를 받아 왔습니다. 저의 출생은 분명히 비극이었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그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서형태 드림

 

  순간 나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가진 얼굴이다. 갈색 머리, 푸른 눈을 가진 백인 혼혈아를 생각하며 짙은 아픔만 잔뜩 담고 있을 뿐 그에게 전해 줄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이 글은 1970년대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기고 사정도 많이 달라져 다행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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