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마을(소설, 수기 등)

팔조령

<단편소설>


팔조령

박 영 환

 

  내 고향과 대구는 칠 십리 길, 그 가운데 성곽처럼 우뚝 막아선 고개가 팔조령이다. 팔조령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크고 작은 봉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다. 얼른 보기에는 밋밋하고 순하게 보이나 산을 타다 보면 이내 숨이 턱에 닿는 험한 산세다. 지금은 여덟 구비를 넘나들며 널찍한 아스팔트 도로가 시원하게 닦여 버스 등 각종 차량이 질주하고 있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나무뿌리가 발길을 잡는 좁은 길밖에 없었기에 걸어서 넘을 수밖에 없었다.

  팔조령 고개 마루 정상에 산신당(山神堂)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사십대 부부가 성치 못한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이는 말도 몹시 어눌했으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항상 밑이 없는 전천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주 키가 작았는데 키에 비해 머리는 매우 컸다. 그 때문에 철부지였던 우리들은 가분수라고 별명을 붙였다. 또 궁둥이가 오리처럼 생겨 뒤뚱거린다고 오리 궁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면 그보다도 더 많은 이름이 붙을 것 같았다.

  아무튼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그는 우리가 가분수라고 부르든, ‘오리 궁둥이라고 부르든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놀려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특기는 히죽거리는 웃음과 박수이었다. 항상 누런 이빨을 내어놓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고, 그 싱거운 웃음에 곁들여 흥에 겨운 박수를 쳤다. 그의 어머니가 웃음과 박수에 진저리를 치며 구박을 해도 그의 습성은 말리지 못했다.

  사람은 물론이고 제 눈에 신기한 대상은 모두 박수를 쳤다. 심지어 어머니가 산신당에서 그를 위해 애절하게 기도를 드리다가 현기증에 코피를 쏟아도 박수를 쳤다. 날이 갈수록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그는 온전하게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아이의 부모는 팔조령 아래 새미골이란 마을에 살았다.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는 전설 같은 사연이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시집을 와서 10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었다. 병원도 찾고 침도 맞고, 조약도 하며 마침내 푸닥거리까지 여러 차례 했으나 별무 소용이었다. 그러던 중, 강원도 정선 땅 어느 도사가 우연히 그 집 앞을 지나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라고 나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아기를 얻고 싶으면 자기가 시켜주는 대로 하라고 했다. 도사의 말인즉, 이 집이 팔조령 백호등 눈을 가리고 있기에 산신령이 괘씸하게 생각하여 아기를 점지하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하고 이사를 한 뒤에도 제단을 모아 간곡히 용서를 빌어야만 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 그들은 도사가 일러준 대로 백호등의 눈을 피해 새 터로 옮겼고 또 뒤뜰에 제단을 모으고 매일같이 목욕재계한 후 치성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그날도 찬물에 목욕을 하고 도사가 일러 준 대로 속곳을 입지 않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젊은 걸인 한 사람이 동냥을 왔다. 여인은 기도를 잠시 멈추고 동냥을 주기 위해 독에서 쌀을 떴다. 그때 갑자기 회오리 한 줄기가 일어나며 여인의 치마 자락을 사정없이 치켜들었다. 순간 치마를 잡을 겨를도 없이 하반신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여인의 나신을 훔쳐본 남정네는 이내 눈빛이 달라졌다. 낌새가 이상한 것을 느낀 여인이 도망을 치려했으나 이미 남정네 억센 손아귀는 막무가내로 여인을 안방에 끌고 갔다. ‘사람 살려 발버둥을 치며 고함을 지르던 여인은 마침 화로에 질러둔 인두를 발견하고 재빨리 뽑아들었다. 때 아닌 인두의 공격에 남정네는 바지를 엉거주춤 잡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낙은 멈추지 않고 더 거세게 밖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문지방에 걸려 댓돌에 머리를 박고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이내 사지를 틀고 거품을 토하기 시작했다.

  여인도 당황하여 인두를 내려놓았는데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는가? 방금까지만 해도 여인을 덮치려던 그 치한은 온 데 간 데 없고 집채만한 호랑이 한 마리가 거품을 토하고 있지 않는가? 아낙은 등골이 오싹했다. 순간 산신령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랬다. 이는 예사 호랑이도 아닌, 팔조령 산신령 호랑이었던 것이다. 그 산신령께서 부인의 정성에 감동하여 아기를 점지하려고 왔다가 봉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산신령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여인은 물을 끼얹고 미음을 갈아 먹이는 등 허둥대었지만 호랑이는 부르르 떨다가 기어이 네 다리를 쭉 뻗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여인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이때 남편이 여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꿈이었다.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었다. 문을 밀치니 칠성의 주름진 잔등이 구름 속에 가물가물했다.

  그 이후 태기는 있었지만, 여인은 임신 중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윽고 열 달 뒤 기다리던 아들을 낳기는 했다. 이름까지 호랑이 산신령이 점지한 아들 - 어쩌면 신령께 사죄하는 의미도 곁들여 - '호동(虎童)'이라고 불렀지만 염려한 대로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다. 다섯 살이 되어도 머리만 덩그렇게 클 뿐 다른 신체 부위는 발육이 몹시 늦었으며 말도 못했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백방으로 치료를 해도 효험이 없었다.

  아이 어머니는 드디어 남편에게 비밀로 묻어둔 꿈 이야기를 실토하며 남편을 설득했다. 이제 아이를 온전하게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팔조령 산신령의 노여움을 푸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펄쩍 뛰던 아이 아버지였지만 아이를 위한 일이라니 아내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생업인 농사일도 그만두고 고개 위에 올라왔다. 고개에는 마침 용맹하고 늠름한 장군 신상을 모신 팔조령 신당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 신당에 기도를 드리면 도적도 물리칠 수 있고 사나운 짐승을 피하며 집안의 대소사가 잘 풀리는가 하면 모든 액운이며 마귀를 거뜬히 물리치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부부는 산에 올라온 뒤 한결같이 꿇어 앉아 지극정성 기도를 드렸다.

  그들이 거처하는 곳은 움막 띳집이었다. 돌멩이와 흙을 아무렇게나 뭉쳐 놓았으며 벽지도 바르지 않고 장판도 없었다. 억새풀 한 짐 깔아 냉기를 막았는데 얼른 보면 마굿간과 같았다. 다행히 집 앞 바위틈에 흐르는 약수는 일품이었다. 여름에도 이가 시릴 정도였다. 그들은 이 물을 받아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목욕을 했다. 길손들도 산마루에 오르면 산신당에 조용히 합장을 한 후 약수터에서 목을 축였다.

  중학교 때, 대구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쌀이며 반찬 등을 가져가기 위해 거의 매주 팔조령을 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목을 축이기 위해 약수터에 갔다. 그 때 평소 때는 기도를 드리느라고 잘 보이지 않던 아주머니가 그날따라 아들과 함께 약수터에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가까이 가는 것도 모르고 호동이의 머리를 씻기며

  “이젠 너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생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가야지

  했는데 아이는 어머니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비친 제 얼굴이 신기한 듯 박수만 쳤다. 내가 다가가자 아주머니는 길게 한숨을 쉬며 아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몇 살이니? 어느 학교에 다니니? 어디에 사니? 이름은? 등 별로 긴치 않는 내용들을 연거푸 묻다가 마침내 전혀 가당치도 않는 질문도 늘어놓았다. 몇 살 때부터 걸었느냐? 언제부터 말을 했느냐? 멀리서도 엄마를 알아볼 수 있니?

  이게 중학생에게 던질 질문인가? 나는 피식 웃기만 했다. 호동이는 그 때도 히죽히죽 박수를 쳤다. 그 때 무슨 생각에 잠기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모자를 좀 빌려 달라고 했다. 생각지 못한 부탁이라 내가 약간 머뭇거리자

  “호동이에게도 학생처럼 어울리는지 한 번만 씌워 보자꾸나.”

  하고 사정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모자를 빌려준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자 이렇게 다시 머리를 씻길 테니...

아주머니는 싫다는 호동이의 머리에 찬물을 퍼부어 박박 문질렀다. 어쩔 수없이 모자를 벗어 주었다. ‘자 교표가 달린 모자였다. 치수가 약간 작은 편인 내 모자가 그의 큰 머리에 맞지 않는데도 아주머니는 억지로 비비적거리며 밀어 넣었다. 저러다가 모자가 찢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침내 억지로 씌우기는 했지만 너무나 팽팽하여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아이는 몹시 불편한 듯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의 초점 잃은 눈은 흰자위가 더 크게 드러났다. 얼른 보아도 도저히 모자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감격하여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그래 아주 훌륭하구나, 의젓하고. 우리 호동이도 중학교, 고등학교 아니 대학까지 가도 되겠다.”

  아이는 기뻐하기는커녕, 입술을 이죽거리며 모자를 벗어던지려 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꽉 잡고 꾸중했다.

  “조금만 참아 봐, 앞으로 학교에 가면 맨날 쓸 텐데.”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가 안타까워하며 꾸중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모자를 벗더니 마침내 벼랑 아래로 던져 버렸다. 모자가 바람을 타고 추락하는 까마귀처럼 힘없이 떨어지자 아이는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이놈아! 이놈아!”

  억에 넘친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들의 가슴팍을 마구 쥐어박았다. 모자가 떨어진 곳은 벼랑 모서리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호동이야 엄두도 못 낼 곳이고 아주머니가 내려간다 해도 매우 힘든 곳이었다. 하는 수없이 내가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벼랑에 힘들게 내려가서 모자를 찾아 왔을 때,

  “학생, 미안해.”

  하며 아주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나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공연히 부아가 나서 돌멩이 하나를 걷어차고는 휑하니 고개를 내려갔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들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떠난 이유를 몰라 무척 궁금했는데 한참 뒤 아이가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자를 주워오며 돌멩이를 걷어찬 것이 괜히 미안하고 마음에 걸렸다.

  그해 섣달그믐 날 팔조령을 혼자 넘는 일이 생겼다. 설을 쇠기 위해 고향에 가려고 팔조령 산 밑 삼산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그런데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어른들 틈에 밀고 밀리며 비집고 들어 가려 했으나 중학생인 내가 승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자취방에 돌아와 문을 꽝 닫고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나 이내 다시 일어났다. 그믐밤을 객지에서 홀로 보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걸어서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문을 나섰다. 섣달 짧은 해가 서편 하늘에 한 뼘쯤 걸려 있었다. 달음박질을 하듯 걸음을 재촉했지만 고개 밑에 도착했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지척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올 때는 큰맘을 먹고 왔지만 깜깜한 산길에 혼자 넘을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같이 갈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살을 에는 겨울 칼바람소리만 요란할 뿐 같이 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발가락이 시려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아이마저 죽어 귀신이 되었다는데. 고개를 넘으면 아이가 가만 둘까! 뒷덜미를 잡는 게 아닐까! 갑자기 무서워 몸이 떨렸다. 그렇다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마음 단단히 먹고 혼자 넘기로 했다. 우선 점방에 가서 성냥 한 통을 샀다.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성냥불을 휙 그을 심산이었다. 성냥 알을 짚이는 대로 끄집어내어 오른손에 쥐고 왼손엔 성냥통을 단단히 잡았다.

  후미진 구비를 지날 때마다 머리끝이 곤두섰다. 발끝에 차인 돌멩이가 산비탈을 타고 구를 때마다 계곡의 모든 잡귀와 사나운 짐승들이 잠에서 깨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콧노래를 부르려고 하였으나 노랫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 오지를 않았다. 눈을 감고도 넘을 수 있는 길이지만, 잘 안 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감을 주었다. 목을 매어 자살한 나무, 독사가 사람을 물었던 곳, 늑대가 아기를 업고 갔던 길, 소판 돈을 화적떼에게 털렸던 곳, 구성진 울음을 토한다는 귀신 동굴.

  그러나 그 모든 곳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곳은 그들 일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그들이 떠나 버리자, 거처하던 집은 썰렁한 흉가로 변해버렸다. 축대는 무너져 내렸고 추녀는 바람에 뒤집혀져 을씨년스러웠다. 아이가 죽어 그곳의 원귀가 되어 밤마다 구성진 울음을 토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모자 때문에 돌멩이 찬 일을 짓굿게 들먹이며 아이가 내 이름을 곧잘 부른다고 겁을 주곤 했다. 농담이었지만 어쩐지 섬뜩하여 마음이 편치 못했다. 대낮이라도 또래들과 같이 지나가다가 어떤 녀석이 장난으로 귀신 봐라 하고 고함을 치면 모자를 움켜잡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마구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정말로 원귀라도 나타나 팔을 쭉 뻗고 모자 내 놔하면 어떡하나-.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고개 마루로 오르는 마지막 구비를 돌 때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산신당에서 한 줄기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는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귀신불이 아닐까? 그런데 그 불빛을 따라 사람 소리까지 들렸다. 매우 귀에 익은 울먹이는 애절한 목소리였다. 귀를 기울이니 그건 분명히 아주머니의 기도 소리였다. 그럴 리가. 아주머니가 또 이곳에. 어쩐 일로. 귀신일까? 숨을 죽이고 들었지만 귀신 소리는 분명 아닌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접근을 했다. 산신당 앞 돌탑에 의지하여 다시 살폈다. 틀림없었다. 희미한 불빛 사이에 경건하게 꿇어앉은 두 내외분.

  “아주머니

  나는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어디 사람 소리가.”

  내외분은 문을 밀쳤다.

  “아주머니

  다시 부르자 내외분은 등불을 들고 나왔다.

  “이게 누구야, 아니 학생이 혼자 어떻게. ”

  나를 알아 본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땀에 흠뻑 젖은 성냥 통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픽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눈을 뜨자

  “학생, 이제 정신이 좀 들어?”

  하면서 나의 이마를 짚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목이 탔다. 냉수를 들이켰다. 그제야 정신이 약간 돌아 왔다.

  “위험한 일이지, 이 험한 고개를.”

  아주머니는 괜한 짓을 했다고 꾸중했다. 정신이 좀 돌아오자 아주머니집 일이 궁금했다.

  "아주머니는 그 동안 어디 계셨어요?"

  아주머니는 나를 적이 쳐다보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말을 이어갔다.

  “호동이는 학생의 모자를 벗어 던졌던 일이 있은 이후에 이상하게 머리에 모자 쓰는 시늉을 자주 했지. 넓은 망개나무 잎사귀를 모자인냥 머리에 얹고 혼자 박수를 쳤지. 이 바보 같은 에미는 그것이 죽음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그저 모자를 씌워 보는 것에 한이 맺혀, 모자 놀이를 하는 것만 해도 만족했지. 그렇게 모자놀이를 하다보면 산신령님의 도움으로 정말 모자를 쓰는 날이 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망개나무 잎사귀로 모자 놀이를 하던 중, 호동이의 망개나무 잎사귀 모자가 바람에 날려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지. 불쌍한 것, 그 망개나무 잎사귀가 무슨 대수라고. 학생이 주워 오던 것을 생각했는지, 불편한 걸음걸이로 그것을 찾으러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그만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지.”

  “…….”

  아주머니는 하던 말을 잠시 중단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곰방대에 담배만 연신 털어 넣었다.

  “다리가 부러지고 정신이 까무러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지. 십여 년의 기도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보니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산신령은 없다. 미친 짓이다. 이렇게 외치며 다시는 산신령을 찾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로 하고 멀리 떨어진 어느 마을로 내려갔단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여기에.”

  “섣달 그믐날이 되자 우리는 아이 생각에 도저히 방안에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단다. 그래서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참 이상한 일도 있지. 무엇에 홀린 듯 허둥지둥 달려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이 산신당 앞이었단다.”

  “…….”

  “우리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산신당에 엎드려 경망한 행동을 사죄하고, 아이의 명복을 빌고 있었던 중이었구나.”

  두 분은 산기슭 뱅바우까지 바래다주었다.

  “호동이는 학생과 동갑이었지. 나는 늘 마음속으로 우리 호동이가 학생처럼 중학생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가기만 빌었지. 학생의 모자 쓴 모습은 언제나 보기가 좋았지. 효자지 효자.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밤길 혼자 다니지 말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이제 팔조령 고개에는 산신당이 없다. 그러나 오늘도 팔조령에 흐르는 애절한 기도소리는 구비구비를 돌아 나의 귀에 오래오래 들려오고 있다.

 

 

'이야기 마을(소설, 수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루한 일주일  (1) 2022.10.02
쌍둥이 행진곡  (1) 2022.10.02
정미는 가숩니다  (1) 2022.10.02
얼 굴  (0) 2022.10.02
모르겠시유  (1) 202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