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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마을(소설, 수기 등)

정미는 가숩니다

  정미는 가숩니다

 

                                                    행전  박 영 환

 

  신학기, Y 여중에 전출되어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의 얼굴이며 신상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첫날, 강정미란 학생이 결석을 했다. 생활 기록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강정미 - 전 학년도의 출석 상태도 좋지 못했다. 결석 28일, 지각 15회, 결과 3회, 조퇴 20회. 성적은 대부분 ‘가’이고 어쩌다가 몇 과목이 ‘양’이며 전교 석차는 621/621.

  성적이나 출결 상태도 그렇지만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아이의 나이였다. 중학교 3학년인데 19세, 고등학교 3학년 나이가 아닌가.

  지난 2학년, 정미의 담임이었던 권 선생님을 찾았다.

  “정미가 첫날부터 결석을 했군요?”

  정미란 말에 권 선생님은 설명하기 곤란한 듯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때 권 선생님보다도 주위의 선생님들이 다투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니 정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새로 전출해온 나뿐인 듯했다.

  “정미는 가숩니다”

  “가수…. 노래하는!”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의아해하는 내게, 권 선생님은 자리를 옮겨 차근차근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맹인 고모와 함께 구걸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 통이나 공원, 육교 등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주로 방과 후에 가지만, 때로는 오늘처럼 아주 결석을 해버리는 날도 있다고 했다.

  “참 딱한 일이군요?”

  “생각하면 불쌍한 아이죠, 그러나 정미 때문에 학교의 입장이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우리 학교 교복에 교표까지 달고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교가 무관심하게 팽개쳤다고 몹시 원망을 하거든요.”

  “학교에선 어떤 대책이 있었나요?”

  “학비 일체를 면제 했으며, 지난해엔 모금 운동을 벌여 적잖은 돈을 전달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동창회 등에서 몇 차례 성금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왜 또다시 거리에 나갔을까요?”

  “아마 또 돈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꼭 교복을 입는 이유는 뭐래요?"

  “학생 신분이면 사람들이 동정을 더 하게 된다는 거죠.”

  어이가 없었다.

  “생활 기록부에는 아버지 직업도 있고 어머니, 형제자매가 다 있던데….”

  “글쎄요, 그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이혼을 했다는 말도 있고 형제자매 없이 혼자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확실하게 말을 하지 않으니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미는 며칠간 계속 결석을 했다. 마냥 그대로 둘 수 없었다. K 공원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는 아이들의 귀띔을 듣고 그 곳으로 갔다.

  매운바람이 이따금 귓가를 스쳤지만 역시 봄인지라 겨울을 잘 참아온 가지들이 푸른 기운을 만들고 있었다. 공원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데 이상하게 많은 이름들이 떠올랐다. 이날따라 떠오르는 이름들 중에는 평범한 아이들보다는 아무래도 특징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의 이름과 연관된 일들을 떠올려보다가 끝에 가서는 강정미란 이름도 불러보았다. 아직 얼굴은 물론 얘기 한 번 나눈 적이 없지만, 어쩐지 정미란 이름도 오래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교사가 학생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라 할 수도 있다. 어느 선생님도 학생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담임이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튼실하게 자랐을 것인데 괜히 내가 맡아 흔들어 놓은 일은 없는가? 여러 생각에 머리가 무거웠다.

  계단이 끝날 무렵, 인파가 웅성거리는 속에 구성진 가락이 들려왔다. ‘황성 옛터에 밤이 오니 ….’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애절한 흐느낌이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정미란 것을 알 수 있었다.

  Y 여중 교복은 목 부분에 하얀 선이 있고 허리 부분이 잘록한 예쁜 옷이었다. 흔히 한 마리 제비가 날렵하게 하늘을 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미의 교복은 제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데군데 실밥이 보이고 목 부분도 얼룩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었다.

  키도 무척 왜소했다. 겉에 나타난 모습만 보면 전혀 열아홉 살로 보이지 않았다. 정미 옆에 창백하고 깡마른 얼굴에 검은 안경을 쓴 여인이 기타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고모인 듯했다.

  “쯔쯔, 학생이구먼….”

  역시 교복은 효과가 있었다. 확성기 앞에 쭈그러진 바구니 하나가 동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울부짖을 때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지갑을 열었다. 정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연신 허리 굽혀 큰 절을 했다.

 “학교에서 공부해야할 어린 나이에….  저 고생이라니….”

  누군가 동정을 하자 정미는 마침내 돈 바구니에 머리를 박고 통곡을 해버렸다. 나도 코끝이 시큰했다.

  “학비에 보태 쓰렴.”

  손수건으로 눈가에 물기를 걷어내던 아주머니 한 분이 파아란 지폐를 손에 쥐어주었다. 이 때였다. 사람들 속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수풀을 뛰쳐나온 뱀처럼 갑자기 팔을 휘저었다.

  “아니, Y여중이라 했제, 그놈의 학교는 뭐 하고 있는 기고, 아이가 요 모양으로 길바닥에 나와 있어도 팔짱만 끼고 있단 말이가!”

  그러다가 정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노, 다른 것은 몰라도 설마 학비야 면제해주겠제.”

  순간 시선들이 정미에게 모아졌다. 나도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도움도 주며 학비는 면제 받는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도움이며 학비 면제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이런 꼴로 공원 바닥에 나선다고 구박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정말로 이러다간 언제 퇴학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격한 감정을 내보이려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었다.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 이럴 수가….’  하마터면 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시선(施善)이란 걸인으로 하여금 그 빈궁의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상태를 연장하여 주는 것이다.’ 라고 하던 어느 분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정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짓말도 상습적으로 하면 환각 작용을 일으켜, 스스로도 그 사실을 완전히 착각한다고 하지 않는가?

  생각 같아서는 ‘정미야, 그러는 게 아냐’ 하면서 팔을 끌고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미와 고모를 만나서 조용히 상담을 하려던 생각을 접고 힘없이 빠져 나왔다.

  며칠 후 정미가 학교에 나왔다. 상담실에 앉았지만 상처가 많은 아이기에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 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정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선생님도 저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으실 거예요.”

   “…….”

  보통 사연이 많은 아이들일수록 담임이 물어도 쉽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2학년 담임의 이야기로도 정미 역시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애를 태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아입니다.”

   “저주라니…. 좀 듣기가 거북하구나.”

   “아니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저의 지난 얘기를 들으시면 충분히 그렇다고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

  “사실, 떠올리기도 싫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그러는 사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 한 번은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미는 잠시 숨을 깊이 들이 쉬다가 나에게 되물었다.

  “선생님, 남자들은 군대생활을 하면서 사귄 여자는 대수롭잖게 생각하나요?”

  “대수롭잖게 생각하다니….”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정미의 아버지가 군대 생활을 하는 중 어머니를 만났구나.”

  “네. 두 사람의 만남은 너무 잘못된 만남이었습니다. 부대 근처 마을에 살던 어머니는 외출을 나온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랬구나.”

  “아무튼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워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아버지는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외로움을 달래는 상대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그런 마음을 가진 아버지인지라 제대를 하자마자 어머니와 소식을 끊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부모가 권하는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했습니다.”

  “결혼까지….”

  “아버지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잊혀지고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니?”

  “얼마 후 핏덩어리인 저를 안고 어머니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런 저런.”

  “이미 결혼까지 한 것을 안 어머니는 발버둥을 쳤지만 해결될 방도가 없었고 아버지는 물론 다른 가족들까지 냉담하게 나오자 분을 이기지 못해 나를 아버지 집에 팽개쳐두고 떠났습니다.”

  “새로 결혼한 분도 펄쩍 뛰었을 텐데….”

  “물론입니다. 아마 이혼 직전까지 갔지만 나를 맡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수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맡지 않으면, 정미는 누가 키우고….”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통에 저는 호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호적이 없다니?”

  “할머니는 저를 아버지 호적에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새어머니…. 좀 이상한 말이지만 새어머니로 하겠습니다. 그 분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저는 열한 살까지 호적도 없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학교에 들어 갈 나이를 넘겨 버린 것입니다. 이런 딱한 상황이니 큰 아버지께서 보다 못해 당신의 딸로 호적에 올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적상으로 큰 아버지의 딸이 된 것입니다.”

  가족 상황이 수시로 변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어떨 때는 호적상 아버지 가족으로 말하고 어떨 때는 친 아버지의 가족 상황을 적어내었던 것이다.  

  “나이가 지나 입학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큰 아버지께서 몇 학교에 알아보셨는데 거절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당신께서 고용원으로 일하고 있는 화교(華僑) 학교에 겨우 허가를 받아 입학 시켰던 것입니다.”

  “화교 학교란 중국 사람들이 공부하는 곳 아니니?”

  “그렇습니다. 중국인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한국 학생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정미처럼 입학 시기를 놓친 학생들이었니?”

  “저처럼 나이가 지난 불쌍한 학생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대부분 상류층 가정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상류층 가정이라고?”

  “네, 영어와 중국어를 조기 교육시키려는 부모들이 그곳에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제가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라에서 한국인들의 화교 학교 취학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국적 있는 교육’을 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부에서 잘못된 교육관을 바로 잡기 위해 조치를 취했던 일이 생각나는구나.”

   “그 통에 저도 같은 통속으로 취급되어 쫓겨났습니다. 호적도 없던 아이가 이번에는 국적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으니 참 웃기는 일이죠.”

   “…….”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미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시 말을 계속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그 때 집안 사정도 극단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할머니에 이어 큰 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셨으며 그 충격으로 큰 어머니마저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새어머니와 이혼을 한 뒤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정말 딱하게 되었구나.”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고모가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맹인인 고모가 해낼 일은 거의 없어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습니다.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은 굶는 사람의 심정을 모를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모가 기타를 치고 저가 노래를 부르면서 구걸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노래 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지만 점차 숙달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정미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선생님, 이만하면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운명 맞죠?”

  “…….”

  “선생님, 제 나이가 열아홉 살이란 걸 알고 계시죠. 이젠 정말 거리에 나가기 싫습니다. 고모가 한 때 안마술을 배워 업소에 나간 적도 있지만 그것마저 불량배들에게 사기를 당해 다 빼앗겼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까지 있었구나.”

  정미가 되돌아간 상담실 방은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그 이후 얼마 뒤, 정미가 밝은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이제 고모의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역시 안마업소이긴 하지만, 이젠 무허가 업소가 아니고 공인을 받은 안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그것 참 잘된 일이구나. 고모가 일이 생겼다니, 이제 정미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그 뒤, 정미는 눈에 드러나게 밝아졌고 학교 성적도 미미하기는 해도 그래도 약간 좋아졌다. 몇 달 지나면서 이제 안심을 해도 되려니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오래 가지 못했다.

  졸업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어느 날, 정미가 결석을 하면서 한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눈물 자국이 선명한 편지였다.

 

  선생님!

  고모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또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뒤 다른 곳을 알아보았으나 일자리가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거리에 나가자고 합니다.

  저는 그 일이 정말 싫습니다. 그러나 고모는 아마 강제적으로도 끌고 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려 합니다. 떠난다고 해결될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막막해질 수도 있겠지만 죽기보다 싫은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늘 걱정만 끼쳐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미 드림

 

  정미가 갈만한 곳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졸업식 삼일 전에 고모가 학교에 찾아와 나를 붙들고 울었다.

  “이제 정말 거리에는 나가자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미는 계속 소식이 없었다.

  드디어 졸업식 날, 송사, 답사, 졸업식 노래까지 끝이 났다. 마지막 종례 시간이 되었지만 역시 자리 하나는 비어 있었다. 졸업장과 상품을 가슴에 안은 아이들은 교정에서 왁자지껄, 기념 촬영을 하느라고 부산했다. 즐거운 웃음들이 가득했다. 그 다음 하나 둘 교문을 나가고 나니 이내 교정은 물이 빠진 개펄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정미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보았다. 어느 아이가 뽑아준 커피 잔은 벌써 싸느랗게 식어 있었다. 창밖의 동백꽃잎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 때 교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누구일까, 뒤로 돌아보니 그곳에 정미가 서 있었다.

  “아니, 정미!”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울고 있는 정미의 등 뒤에 정미를 너무 닮은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녀는 정미의 친어머니였고 조금 뒤에 그의 고모도 나타났다. 고모와 어머니는 마구 넘쳐흐르는 눈물로 옷섶을 적시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나는 조용히 정미의 손을 꼬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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