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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거짓

                              거짓

 

                        

                                                                                행전 박영환

 

 

 

  어느 학교에 있을 때 3명의 학생이 ‘부정행위’로 적발되어 징계를 받았다. 한 아이는 책상 위에 메모를 해 놓았다가 발각되었고 한 아이는 옆 아이의 답안지를 훔쳐보았고, 또 다른 아이는 별도의 종이에 적어서 책상 밑에 숨겨놓고 보다가 들켰다.

  3명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학년은 3학년이고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그들은 곧 상급학교 원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었는데 점수 몇 점이 입시의 당락을 결정할 형편이었으니 부정행위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것이다. 

  발각이 되고 난 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지만 어쩔 수 없이 벌을 주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벌의 경중을 따지는 학부모도 생겼다. 옆 아이의 답안지를 본 부모인데, 어찌 집에서 계획적으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온 아이와 순간적 충동으로 옆 아이 답안지를 훔쳐본 것이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이유 있는 항변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부정을 저지른 것은 같은 것이니 경중을 따진다는 것은 곤란했다. 결국 3명 모두 해당과목 0점에 교내봉사 일주일을 하도록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은 교내 곳곳에 떨어진 휴지도 줍고 화장실 등 구석진 곳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열심히 청소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마치고 난 뒤, 상담을 하면서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거나 떨어진 휴지를 주워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머뭇거릴 뿐 시원하게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을 가거나 휴지를 아무렇게나 버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세 사람 모두 있다고 했다. 

  대수롭잖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 이 학생들의 마음의 상태일 수 있다. 낙엽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알고, 얼음 한 조각으로 겨울이 온 것을 안다지 않는가. 휴지 한 장도 그런 경우가 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모든 것을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것은 좀 잘못해도 괜찮으니 입시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이것이 가장 좋은 효도라고 각인하게 되며 부모들 역시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자식을 위한 최선의 뒷바라지로 생각하며 아이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어머니가 수시 전형을 지원할 때 빠진 서류를 끼워 넣기 위해 대학 입학 사정관실에 침입을 한 적이 있다.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중국집 배달부로 위장했는가 하면 그것도 실패하자 마침내 밤을 새워 기다리고 있다가 청소를 하려고 잠시 문을 열어놓은 사이 침입을 했다가 발각이 된 것이다. 정말 눈물겨운(?) 절절한 사랑이다. 좀 심한 것 같지만 아마 이런 상황이 되면 모르긴 해도 이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부모가 또 더 있을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 자란 아이들의 가슴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버려진 휴지를 줍겠다는 생각을 가질 공간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휴지 하나 주울 시간에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워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부정을 해서라도 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도덕 시험에 ‘정직’과 ‘부정’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면 커닝을 하지 않아도 전부 정답을 맞힐 것이다.   그런데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그것이 머리에만 저장되어 있고 가슴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말 부정이 너무 많다.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에 단골 메뉴는 부정행위이다. 돈으로 표를 사고, 뇌물을 주고받고, 뒷거래를 하여 부당이득을 올리고, 가짜서류를 만들고, 감언이설로 속이고 등등.

  이를 막는 방법으로 수많은 법들이 만들어졌다. 법이 만들어져도 그 법망을 용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제3 ,제4의 방벽을 쌓기 위해 계속 법이 늘어나고 있다. 근래에는 선거 때 돈을 뿌려 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을 신고하면 엄청난 보상금을 준다고 한다. 전에 내린 처방도 상당히 큰 벌이며 보상이었는데도 약효가 먹혀들지 않아 큰 액수를 건 것이다.   

  얼마 전 재미있는 통계 자료가 발표된 적이 있다. 같이 동승을 한 사람이 주행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 잡혔을 때, 옆자리에 동승한 사람의 태도이다. 여러 나라의 평균으로 볼 때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35%이고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이 65% 정도였는데 우리나라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26%밖에 되지 않고 거짓 증언이 무려 74%나 된다고 했다. 이런 정도라면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선진국 사람들은 사실대로 말하는 경우가 80% 이상, 어떤 나라는 96%가 되는 나라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눈을 감아주는 정서가 있다. ‘이왕 지나간 것,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 그게 정이고 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알량한 정서가 이런 통계를 만든 것이 아닌지.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君父)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하였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아니 하리라.” 했다. 선생은 망국의 일차적인 원인이 거짓에 있다고 보고 자신부터 정직하기로 다짐하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망국에 이르게 할 거짓, 과연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번은 어느 여자 대학교 졸업식에서 여자 총장님께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우리 모두 걸레가 됩시다.” 했다. ‘걸레라니!’, 참석한 학부모와 여학생들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 분위기를 눈치 챈 총장님, “우리 모두, 사회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걸레가 됩시다.” 했다.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어떤 대학의 총장님은 대학입학전형 요강을 발표하면서 “우리 대학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뽑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가슴의 상태를 온도계로 잴 수도 없고,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비록 어렵더라도 한 번 시도해볼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사회의 더러운 구석구석 휴지를 줍고 걸레로 닦아내는 사람이 바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모두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거짓 없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거짓은 눈앞의 이익을 얻을지 몰라도 그 이익은 몇 발자국 가지 못해 후회로 돌아오게 된다. 거짓으로 남긴 그의 발자국이 자꾸만 마음을 할퀴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짓으로 얻은 열매가 달다 해도, 유혹을 떨쳤을 때의 시원한 기분을 따라오지 못한다. 이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때의 쾌감을 느낄 때다. 그 쾌감은 오래오래 자신의 정신에 자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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