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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밥 상

       밥 상

 

   

 

                                                 행전 박영환

 

 

 

  

 

  얼마 전, 고향집 창고 시렁 위에서 독상으로 쓰던 옛날 상들을 발견했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 밥상 문화가 바뀌면서 주인을 잃어버린 상들이었다.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먼지를 닦는 중 문득, 어린 시절 엄격했던 '밥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옛날엔 어른과 아이가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예가 없었다. 간혹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상에서 먹는 풍경은 있었으나 아들과 아버지가 겸상을 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더더구나 남자와 여자가 같은 상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 집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및 고모, 그리고 우리 사남매, 또 농사일을 맡아 하던 머슴 두 명이 고정적으로 식사에 참여했다.

  요즈음처럼 식탁이나 큰 두리기상에 그대로 둘러앉는 것이 아니고 모두 상을 따로 봐야 했다. 우선 상 네 개는 필수적이었다. 할아버님, 아버님, 머슴들, 그리고 남은 식구의 공동 상.

  할아버님은 큰 사랑방에서 식사를 하셨고, 아버님은 작은 사랑방, 머슴들은 아래채 초당 방에서, 남은 식구들은 몸채 큰방에서 식사를 했다.

  사랑채와 부엌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어머님은 매끼마다, 할아버님, 아버님의 상을 독상으로 보고, 상마다, 따로 반찬을 담고 그릇마다 뚜껑을 덮어 마당을 가로질러 상을 내셨으니 여간 어렵고 조심되는 일이 아니셨다. 특히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올 때는 혹시 먼지나 빗물이 들어갈세라 마음을 졸이셨으니 고생이 보통 아니셨다.

  큰방에서 식사를 하던 우리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할아버님의 상이 사랑으로 나가고 난 뒤에야 상머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만일 성급하게 숟가락을 들다가는 버릇이 없다고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식사 중에 잡담을 한다든지, 반찬 투정을 하는 일은 절대 금물이었다.

  젊은 시절, 어머님은 밥상이 없으셨다. 이 방 저 방, 상들을 내어놓은 뒤에야  부엌이나 마루턱에 주저앉아 한 술 뜨곤 하셨다. 젊은 여자가 상위에 밥그릇을 올리면 당돌하다고 여기는 까닭도 있었지만 계속 심부름을 하여야 하는 처지이니 언제 마음 놓고 밥그릇을 상위에 올려놓고 식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밥상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어머님의 밥은 항상 꽁보리밥이었다. 우리 집은 쌀이 떨어질 만큼 어려운 처지는 아니었지만 아끼는 것이 체질화되신 분들이라, 보리쌀과 쌀이 반반이 되게 하여 밥을 지으셨다. 그런데 어른들과 손님 밥은 쌀밥으로 뜨고, 시누이, 시동생 밥을 좀 낫게 섞다 보면 당신께서는 항상 보리밥을 드실 수밖에 없었다. 보리가 많이 섞인 정도가 아니고 완전 꽁보리밥이었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기에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요즈음은 손님이 온다 해도 자고 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교통도 불편했지만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별로 바쁘지 않으니 대부분 묵어가게 마련이었다. 하룻밤을 묵고 가는 것은 필수적이고, 어떤 경우는 이틀씩 사흘씩 눌러 있었다. 때로는 밤이 이슥하여 왁자지껄 수십 명이 떼로 몰려오기도 했다. 그 때마다 늦게 밥상을 준비해야 했다. 밥을 먹고 들어갈 만한 음식점도 흔하지 않았지만 중도에서 밥을 먹고 가면 주인집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님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컴컴한 부엌에서 솔가지 매운 연기에, 자지러진 기침을 토하시며 불을 지펴 더운밥을 장만하셨다. 씨암탉 죽는 소리가 요란했다. 술상과 식사 상이 차례로 나가게 되면 손님들은 파안대소로 환담을 나누었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긴장을 풀고 고드름 달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툇마루로 나가셔서 눈물이 범벅 되도록 기침을 토하셨다. 어머님은 어릴 때 백일기침의 후유증으로 평생 기관지 천식, 해소 기침에 시달리셨다. 나는 어머님이 손님 수발을 드시느라 찬바람을 쐬며 연신 기침을 토할 때 차마 들을 수가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연유를 알게 된 어머니께서 꾸중을 하셨다.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나는 밥상을 차리는 것이 조금도 어렵거나 괴롭지 않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얼른 나가서 손님들께 '진지 많이 드십시오' 하고 인사를 드려라." 

  그 이후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이제 밥상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어른이라고 독상을 받는 가부장적인 밥상은 없다. 모두가 같은 상에 둘러 앉아 먹는다. 그러니 밥상이란 말보다는 식탁이란 말이 귀에 익었다. 점차로 모든 것이 간편화되어 가는 추세이고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된 것이다. 

  이건 잘된 일이다. 한 상에서 밥을 먹으면 편리하기도 하려니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친밀감이 간다. 그런데 그런 독선적인 문화가 사라진 것은 백번 옳은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 그 편리함에 편승하여 밥상을 대하는 기본적 예절까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밥상머리 교육'은 필요하다.

  늘 음식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위와 아래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절제하고 양보하는 기본적인 자세도 이 '밥상머리'에서 익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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