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
행전 박영환
어릴 때 무척 좋아하던 개가 있었다. 그 때 시골에서야 족보깨나 있는 고급 개는 없었다. ‘워리’하고 부르면 방안에 흙발로 들어와 동생의 엉덩이에 묻은 똥을 신나게 식사하는 이른바 ‘똥개’였다. 그러니 그에게 특별한 애칭이 있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 개들의 호칭은 전부 ‘워리’로 불려지는 ‘동명이견(同名異犬)’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 워리는 여느 워리와는 달리 품위(?)가 있고 붙임성이 좋았다. 노란 털이 탐스럽게 복슬복슬하고 콧잔등에 갈색 점이 박혀 있는 수놈이었다. 녀석은 내가 학교에 갔다가 오면 저 멀리서도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서는 어깨에 발을 걸치고 조금은 징그럽게 뽀뽀를 했다.
우리 워리는 싸움도 동리에서 챔피언이었다. 씩씩한 두 다리를 쭉 뻗고 늘씬한 허리춤을 치켜들어 사자후와 같은 포효로 으르렁거리면 다른 집의 개들은 꼬리를 바짝 내리고 그야말로 개구멍을 찾아서 도망가기가 바빴다.
나는 친구들보다도 워리와 함께 노는 것이 더 좋았다. 숨바꼭질도 많이 했다. 돌담이나 짚둥우리 뒤에 몸을 숨겨도 그는 이내 찾아내어 으스대었다. 물속에 든 신발도 자맥질하여 찾아오는가 하면 우리 집 소가 등 너머 이웃마을 계곡까지 무단 외출하여 식구들이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잽싸게 찾은 적도 있었다. 밤이 되면 그 넉넉한 바리톤 목청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짓궂은 막내 삼촌의 귀신 이야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워리의 왕왕 소리에 안심할 수가 있었다.
녀석은 종종 학교까지 따라와,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학교가 파하면 같이 돌아오곤 했다. 괜히 낯선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안쓰러워 꾸중을 해도 녀석은 미련스럽게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워리’는 학교에 같이 가겠다고 나보다 먼저 나섰다. 밥도 채 먹지도 않은 상태에서 따라가 배를 곯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도저히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처음에는 타이르다가 끝내 고함을 지르며 쫓았다. 녀석은 못내 아쉬워 꼬리를 흔들며 몇 번 더 사정을 했지만 나의 뜻이 확고함을 알자 할 수 없이 돌아섰다.
그런데 그날, 이상하게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에도 워리 생각이 언뜻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따라가겠다고 애원을 하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렸다. 수업이 끝나는 즉시 워리를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책보자기를 졸라매고 급히 내달려서 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동구에 들어서면서 불길한 조짐을 느꼈다. 보통 때 같으면 워리가 멀리서도 나를 알아보고 매우 반가워하며 달려왔는데 그날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집 대문에 들어섰는데도 역시 워리는 뛰어오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하는 것도 잊고, 워리가 있을 만한 곳을 두리번거렸다. 마루 밑, 쇠죽솥 부근, 뒤꼍의 나무 등걸 사이, 아무리 찾아도 워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랑방, 할아버지께 달려갔다.
“할아버지 워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팔았다.”
놋쇠 재떨이에 담배를 떨며 할아버지께서는 별 생각 없이 말씀하셨다. 청천벽력이었다.
“워리를 팔다뇨?”
갑자기 망치에 얻어맞은 듯 현기증이 일어났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되물음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투였다.
“아니, 그럼 팔지 않고 …. 너무 오래 키웠어. 벌써 팔았어야 하는 건데 …, 닭은 삼 년이고 개는 십 년이란 말이 있느니라. 그 이상 키우면 영물이 되어 집에 좋지 못한 액운을 가져온다는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옛날부터 그렇게 말해 왔느니라.”
“엉터리입니다. 거짓말, 말짱 거짓말입니다.”
금방 더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며 발을 굴렸다.
“저놈 봐라, 할아비가 죽으면 저렇게 서럽게 울까!”
아침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대문밖에 뛰쳐나오니 동리의 다른 ‘워리’들은 친구가 비참하게 끌려간 줄도 모르고 유유히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저렇게 잘 놀고 있는 데, 너 혼자 저승사자에게 끌려갔구나, 바보 같은 것. 잡히기는 왜 잡혀. 학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건데…. 가슴을 쳤다.
동네 들머리에 있는 은행나무 밑으로 갔다. 수백 년 된 나무이다. 보통 때는 팔을 벌려 몇 아름이나 되는지 재어보기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하는 등 장난을 치기가 일쑤였지만 그날은 그렇게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맥없이 주저앉아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워리가 잡혀 간 길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이때 한 줄기 바람 소리가 ‘윙’ 하고 지나갔는데 흡사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워리의 목소리 같았다.
옆집의 개가 처참하게 도살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눈 꼬리가 찢어진 개장사가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사립문 뒤에 숨어 있었고 옆집 아지매는 공모자가 되어 헌 뚝배기에 멸치 대가리를 넣어 개를 유인했다. 멸치 대가리는 구미를 당기게 하는 특별 메뉴였다. 영문도 모르는 개는 주인의 호의에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그의 머리에는 올가미가 날아들었다. 개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옥죄는 올가미에 끌려 V자형 감나무 가지에 머리를 처박았다. 거푸 날아드는 박달나무 몽둥이, 진저리치는 단말마, 머리에서 쏟아지는 낭자한 유혈은 감나무 가지와 밑동을 흥건히 적셨다.
‘워리야!’, 우리 워리도 외마디 비명 속에 피를 토하는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은행나무 껍질을 마구 쥐어뜯었다.
이때였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멀리서 달려오는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건 분명히 우리 워리의 발자국 소리였다. 눈을 번쩍 떴다. 그때 잔뜩 겁에 질린 워리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나의 품에 파고들었다.
“워리야, 네가 살아오다니, 네가 살아오다니, 이게 정말이니!”
꿈만 같았다. 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기뻤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 워리의 목에 매인 끈이 용케 풀려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끈이 풀리자 워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한 것이다. 사력을 다해 달려오느라고 그의 등줄기는 흡사 목욕을 한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잘 왔다, 잘 왔어, 다시는 보내지 않을 거야.”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 재회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이내 트럭 한 대가 ‘끽-’ 하고 급정거를 했으며 우두둑하는 발자국과 함께 개장사가 시익씩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왔던 것이다.
“똥개 새에끼-”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는 개장사는 성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몽둥이를 높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안돼요”하고 고함을 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개장사는 어린 아이가 개를 안고 있다는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퍽퍽퍽’ 워리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난타했던 것이다. 나는 자지러질 듯 질겁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살기등등한 그의 사나운 손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우리 워리는 힘없이 목을 늘어뜨리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의 옷은 워리가 쏟아놓은 핏물로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워리를 살리려면 개장사가 도끼눈으로 달려왔을 때 얼른 놓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워리를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꼭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그래도 주인인 나를 믿었던 워리, 결과적으로 개장사를 도와준 꼴이 되어 버렸다.
워리가 숨을 거둔 뒤에도 개장사는 계속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듯 땅바닥에 찰싹 붙은 그의 주검을 냅다 걷어찼다. 그리고 코를 팽 풀더니 질질 끌고 가서 트럭 위에 팽개쳤다.
“더러븐 똥개 새에끼-,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다 아이가. 지 놈이 도망을 가면 어디 갈끼라고. 뛰어봤자, 벼룩이지. 주인집에 올 줄 뻔히 알고 있었데이!”
무용담이나 되는 듯, 히죽 누런 이빨을 보이며 담배를 꼬나물고 차를 급하게 몰았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멀리 사라지는 차의 꽁무니를 향해 엎어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개새*야!”
오래도록 자리에 누워 끙끙 앓았다. 열이 펄펄 끓었다. 계속 주먹을 휘저으며 끔찍한 만행에 진저리를 치며 “개새*야”하고 계속 욕을 퍼부었다. 개장사가 미웠다. 개를 팔아 버린 어른들이나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그 이후, 우리 집엔 개를 키울 수 없었다.
“잔인하게 팔 것 같으면 개를 절대로 키울 수 없어요.”
나의 항변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개를 쉽게 팔아 버려도 개는 주인을 잊지 못한다. 팔린 개는 그 주인을 원망하기는커녕 필사의 탈출로 다시 찾아왔다. 그런 개를 가상스럽게 여기지는 못할지언정 개장사는 ‘더러운 똥개’라고 매도했다.
오늘도 영양탕으로 둔갑한 보신탕집에는 워리의 단말마가 끊이지 않는다. 워리뿐만이 아니고 사람들은 여타의 생명 질서를 너무나 쉽게 파괴하며 많은 단말마를 만들고 있다. 너무 사람 중심으로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