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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삶 그 이후

       삶 그 이후

 

 

                                                           행전 박영환

 

 

   M시 화장터는 공동 묘지에 둘러 싸인 음산한 곳이었다. 마침 화장(火葬)을 치르는 사람이 없고 보니 까마귀 소리만이, 정적의 공간을 슬프게 할 뿐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제자 송 군을 실은 영구차가 오후 1시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회사와의 보상금 문제가 잘 해결이 되지 않아 오후 4시 경이나 되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전갈이 왔다.

  어디 기다릴 곳을 찾았으나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마땅한 곳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구내 매점에 들어갔다. 매점 역시 분위기가 가라 앉아 있었다. 나무 의자를 난로 가까이 끌어 당기며 그래도 더운 김을 내고 있는 어묵 몇 개를 집어 같이 온 급장 김 군에게 권했다. 충혈된 두 눈에 아직도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김 군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침밥도 먹지 않고 친구의 부음에 급히 달려온 그가, 점심 때도 넘었는데 생으로 곯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몇 번 권했지만 한사코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국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려 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모양이다.

  마침 그 매점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그 때, 권하고 물리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매점 주인이 딱하다는 듯이 끼어 들었다.

 "학생 봐라, 그만 먹어 놔라. 살았을 때 많이 먹는 기다"

 "…."

 김 군은 잠시 매점 주인을 쳐다봤을 뿐 이내 반대편 벽만 쳐다보았다.

 "쯔쯔"

 그가 혀를 차자

 김 군은 그 노인의 무감각한 행동이 몹시 못마땅한 듯 톡 쏘았다.

 "아저씨는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아무 감정이 없는가 보죠"

 "감정, 허허, 감정이라 캤나. 내사마 그런 것 이자(잊어) 뿌린(버린) 지가 가맛데이(오래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넉살좋게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내 나이가 이래뵈도 환갑이 넘었데이."

 환갑이 넘었다고 했지만, 얼른 보기에는 쉰이 조금 넘게 보일 정도였다. 딱 벌어진 어깨, 약간 땅딸하며 까무잡잡한 얼굴엔 주름살도 거의 없었으며 흰 머리카락도 별로 보이지 않은, 그야말로 노익장의 건강미가 넘쳐 났다. 내가 서먹한 분위기도 다독거릴 겸 말을 걸었다.

 "이 곳에서 생활을 하신 지가 오래 된 모양이죠?"

 나의 물음에 그는 기구하다면 기구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화장터 인생>을 술회했다.

 "내가 화장터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아마 이 학생 나이쯤 되었을 낌니더. 열아홉살 살 나던 해니까요. 묵고 살기 위해 무작정 도회지로 뛰쳐 나와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우째 일하게 된기 화장터였심더. 처음에는 엉성스럽데예. 가위에 눌리는 꿈에 식은 땀을 몇 바가지씩이나 흘린 기 한 두 번이 아님니더. 그래서, 우짜든지 딴 데 갈라고만 생각했심더. 밥 묵을 때만 있으마 미련없이 내뺄라고(도망하려고) 캤심더.(생각했습니다.) 절대로 오래 안 있을끼라고 생각했심더. 그런데 그게 사십년입니더. 세월 한 번 잘 가데에.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월이 가이끼네 이력이 붙십디더. 시체 옆에서 밥도 묵고 잠도 자고 …. 점차 아무러치 않데예. 그래 저래 정년까지 있었다 아임니꺼. "

 노인은 씁쓸히 웃으며 물 한 컵을 마시고 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내 하고 화장터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무슨 인연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심더. 아직도 여기 머무는 나를 보이소. 정년 이후야, 꼭 화장터를 벗어나겠지 하고 생각을 했심더. 그런데 정년을 하고 나니 또 막상 갈 곳이 업섰심더. 배운 도둑질이 이것뿐 아님니꺼? 이를 눈치챈, 윗자리 과장 분이, 마침 자리가 비는 구내 매점 일을 하도록 도와 주데예. 지금은 직접 시신을 불더미에 밀어 넣으며, 쇠꼬챙이로, 뼈를 고르고 갈아 내는 일들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화장막 먼지를 마시는 생활이야 어데 변했심니꺼? 거기다가, 이제는 한 술 더 떠 아주 마누라까지 데려와서 청승을 떨고 있으니 …. 인연치고는 더러븐 인연이지예. 아마 나도 이 곳 연기가 돼야 풀려 나가지 시풉니더. 하기사 풀리고 자시고도 없지예, 연기가 나고 나만 모든 기 그뿐이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음 세상은 좋은 곳에 가셔야죠?"

 "허허 다음 세상이라 캤능기요(말했나요?), 다음 세상이 어딨심니꺼?"

 "그럼 다음 세상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믿고 말고지예. 다음 세상은 없심더."

 그는 다음 세상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이런 곳에 오래 계시다 보면 종교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낍니더. 그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도 공연히 죄를 짓는 것같아 마음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심니더. 죽은 사람을 또 한 번 화덕에 넣어 두 번 죽인다 카나. 지긴다(죽인다) 카나. 그래서 술도 많이 마시고, 절이나 교회에도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예.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캄니더. 그렇게 심약한 생각을 가질 바에야, 이곳을 빨리 떠나라고 …. 호통을 침니더"

  입심 좋은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대단하십니다"

 "대단할 게 뭐가 있어요, 당연한 이야김니더. 화덕의 기름불 속에서는 남녀, 빈부, 지위, 늙고 젊음, 선악, 그 어느 것의 구별도 없심니더. 연기가 나뿌면(나고 나면) 말짱 다 허사인기라. 그 이후에 한 줌의 먼지로 뿌려지고 만다 아임니꺼.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마음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망상입니더, 다 허사입니더. 저 세상은 없으이 끼네. 나는 그래 생각함니더. 그러니 사는 동안이나 마음 편케 잘 살다 가는김니더"

 그 때 밖이 왁자했다. 송 군을 싶은 영구차가 도착했다. 너무 어이없는 생주검. 우리는 그를 보내기 싫어 울었지만 그는 기어코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송 군은 가정 환경이 어려워 상업 학교에 진학한 학생이다. 그는 환경을 극복하려고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얄미울 정도로 자립심이 강하던 아이였다. 신문 배달을 하여 학비를 조달하면서도 공납금 면제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공연히 의타심이 생기기 쉬우니 자기가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각, 결석 한 번 없었다.

 3학년 2학기엔 국내 굴지의 D조선(造船)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더니 송 군을 보고 한 말인 것 같다."

 내가 격려를 하자 그는 오랜 만에 환한 미소를 띠며, 입사 전에 실시하는 실습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는 그곳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흔적인 뼛가루는 평소에 그가 자주 찾던 강에 힘없이 뿌려졌다. 한 사람의 젊은 혼이 이렇게 애절하게 뿌려져도 강물은 잠시 흰 점을 남길 뿐 이내 다시 무심하게 흘렀다.

  너무 허무했다. 참으로 많은 물음들이 뇌리에서 일어났다. 송 군, 이럴 수가 있는가? 그토록 착하게만 살아가던 너. 이렇게 빨리 갈 수 있는가? 삶의 공간과 길이는 왜 선악과 비례하지 않는가? 어떤 힘이 우리의 생사를 조절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절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네가 있는 그곳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괴로워 해도 표표히 버리고 갈만큼 그렇게 의미가 있는 곳이니?

 이 때, 입심 좋은 그 노인의 말이 다시 우렁차게 들려 왔다.

 "전부 허사입니더. 송 군은 지금 어느 곳에도 없심더. 방금 본 것 그대로입니더. 송 군은 이제 완전히 무(無)의 상태가 됐심더. 그라이 끼네 인자는 말짱 이자 뿌리소(잊어 버리세요)"

 "그만"

 나는 귀를 막았다. 적어도 송 군과 연관해서는 그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절대자의 지고한 뜻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입심 좋은 노인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정말 삶에 이은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그 동안 내가 사랑하던 많은 이들이 나의 곁을 훌훌히 떠나갔다. 그 때마다 송 군이 떠나갈 때처럼 그들을 보내기 싫어 울음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들과의 호흡이 영원하리라던 생각도 거짓말이었다. 세월은 망각을 가르쳐 주었고 해서 이어질 때보다 끊어질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가끔 노인의 말이 진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서 돌아서기도 하지만 또 그 자리에서 맴을 돈다.

 

 

                          

                                                                       *80년대  어느 실업학교에 재직할 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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