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다와 삼룡이
행전 박영환
‘백치 아다다’와 '벙어리 삼룡이’는 각각 계용묵과 나도향의 작품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단편 소설이며, 소설을 발표한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읽혀지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장애인인 ‘백치’와 ‘벙어리’의 삶을 서술하고 있으며 한국 문학에서 장애자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소설 모두 제목에 ‘어떤 장애자인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그런데 사실은 그 이름도 단순한 이름이 아니고 이름 속에 장애의 상태를 은근히 비친 것이다.
‘백치 아다다’의 ‘아다다’란 이름만 해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상 어눌하게 ‘아다다’라고 하는데서 따온 것이다. 그미에게는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다. 하기야 그 이름도 제발 답답하게 ‘아다 아다다’만 찾지 말고 ‘확실(確實)’하게 말해달라는 뜻에서 ‘ 붙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미를 백치(白痴)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백치란 지능지수가 25이하이며 2세 정도의 능력밖에 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데 '아다다'는 결코 그 정도는 아니다.
물론 그미는 실수를 더러 했다. 이를테면 된장독을 깬다든지 달은 솥뚜껑을 맨손으로 열다가 뜨거움을 참지 못해 엎지른 일은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 그런 것은 아니다.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도울 줄 알고, 어려움을 참을 줄도 알았다. 때로는 정확한 판단도 하며 집념과 결단력도 있었다.
‘벙어리 삼룡이’의 '삼룡'은 '삼농(三聾)’과 음이 비슷하다. ‘삼농’이란 말 못하고 못 듣고 못 보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명석한 판단력과 정서를 가진 인물이기에 자신의 장애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못 듣는 농(聾), 말 못하는 아(啞),에 보지 못하는 맹(盲)까지 보태어 ‘삼농’으로 살 것을 강요했다.
그에게는 자기란 존재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을 때는 오해와 고통이 따랐다.
특히 상전인 주인집 서방과는 엄청난 악연이었다. 서방은 그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잔인하게 행동했다.
한 번은 주인집의 서방이 술에 취해 공연히 시비를 걸다가 낯모르는 사람에게 무지하게 맞은 적이 있다. 이를 발견한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서방을 업고 집으로 왔다. 남편을 구해 오자 아내인 아씨는 무척 고맙게 생각하여 그에게 쌈지 하나를 선물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아씨와의 관계를 의심한 서방은 그를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될 정도로 마구 때렸다.
또 한 번은 명주 수건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아씨를 구한 일이 있다. 이 일 역시 무고한 그에게 화살이 날아 왔다.
“집안이 망했군, 어디 사내가 없어서 벙어리를!”
사실은 남편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인데도, 아씨가 삼룡이와 정분이 난 것을 부끄러워하여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서방은 쇠줄 뭉치를 휘둘러 삼룡이의 전신을 못쓰게 만들었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를 집에서 쫓아내었다. 삼룡이는 연신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전할 길이 없어 눈물만 펑펑 쏟았다.
‘삼룡이’와 ‘아다다’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다. ‘삼룡이’는 아예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줄곧 머슴 생활만 했다. 반면 ‘아다다’는 가정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손 가정이었다. 위선적인 아버지와 신경질적이고 앞뒤가 막힌 어머니- 그들은 ‘아다다’를 이해하기는 커녕 징그럽고 거추장스러운,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애물단지로 생각했다.
'아다다'는 집안의 모든 일에 참여하고 싶었으며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고 구박만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말끝마다
“이 년아 뒈져라”
욕을 퍼부었다. 그녀가 변명을 하기 위해
"아다아다 아다아다 아다"
하면 전후 사정을 듣기는 고사하고 머리채부터 휘어잡았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으니 '아다다’는 더더욱 지능 개발이 늦어지고 언어 장애가 심해졌으며 마침내 만성적인 불신과 불안,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죽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운명은 항상 그들 편이 아니었다.
‘아다다’는 두 번 결혼을 했다. 첫 결혼은 부모가 시켜 준 것이었다. 더러운 똥을 치우는 기분으로 부모가 장만해 준 지참금으로 시집을 갔지만 5년 만에 실패했다. 애초에 정상적인 결합이 아니었기에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아다다’는 첫 결혼 몇 년간 너무나 참혹한 모멸 속에 살았다. 지참금을 밑천으로 남편은 부자가 되었다. 돈이 생기자 남편은 오히려 아내를 구박했다. 시앗을 보았다. 걸핏하면
“이년아 보기 싫다! 네 집으로 가거라”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손찌검을 했다.
첫 남편에게 쫓겨 나온 ‘아다다’를 위로하고 다독거려 준 사람이 두 번째 남편 수롱이었다. 수롱 역시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었다. 정에 굶주린 두 사람은 이내 가까워졌다. 부모가 반대하자 야반도주를 했다.
“정만 있으면 돼, 응?”
수롱의 말에
“으, 응 정 아다 아다…….”
‘아다다’가 화답했다. ‘아다다’는 정에 굶주린 사람. 정만 있으면 온갖 어려움도 당해 낼 여자이었다. 수롱이에게 바라는 것은 정 이외엔 전혀 없었다.
아다다는 수롱이가 정 이외는 전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롱이는 논밭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수롱이가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이 돈을 가지고 논밭을 사서 ‘아다다’를 행복하게 해줄 꺼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다다’는 기쁘기는 커녕 너무 두려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첫 남편이 왜 자신을 소박했던가? 그도 가난할 때는 ‘아다다’를 무척이나 아껴 주었다. 그러나 돈이 생기면서 사람이 바뀌었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데. 정말이야, 수롱이, 돈이 있는 줄 알았으면 따라 나서지를 않았지. 또 때릴 거야, 내쫓을 거야. 저 놈의 돈은 돈이 아니라 웬수다.'
아다다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수롱이의 돈을 훔쳐내어 바닷속에 던져넣었다.
“이놈의 돈, 이놈의 돈 멀리 사라져라.”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수롱은 길길이 뛰었다.
"이년이 돌아도 한참 돌았다. 그 돈을 어떻게 모은 것인데. 아무리 바보라지만 이럴 수가 있는가!"
"......."
"네년은 나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악마다."
수롱이 내지른 발길에 아다다는 파도에 휩쓸려 숨을 거두었다.
더벅머리 총각 ‘삼룡이’의 정신적 지주는 한없이 착하고 얼굴이 고운 주인집 새아씨였다.
아씨는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했다. 아씨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였다. 삼라만상을 씻어 내는 은빛보다도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그의 마음이 더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했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새 아씨가 된 것도 같고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자신보다 아씨의 행복을 더 걱정했다. 아씨만 행복하면 자신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씨가 망나니 같은 서방에게 구박만 당했다. 아씨가 서방에게 구박을 당할 때마다 삼룡이는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어느 날 불이 났다. 아씨가 불 속에 갇히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에 뛰어 들어 아씨를 구해 내었다. 불 속에서 그의 팔이 떨어져 나가고 생명이 위험해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불길을 헤치고 다녔다. 마침내 불길 속에 구해 낸 아씨를 무릎에 누인 삼룡이는 입 가장자리에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아씨의 모습을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삼룡’이와 ‘아다다’의 고통스런 삶은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도 아직 존재하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한 만큼 이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제도 또한 전보다는 훨씬 더 뒷받침을 하는 점은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분들이 살아가기에는 닫히고 문턱이 높은 곳이 너무 많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지금 나의 기준으로 장애인을 바라볼 것이 아니고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