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행전 박영환
지난 해,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 근처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새에 대해 가진 생각은 아주 피상적인 것이었다. 이를테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평화롭게 날아다니며 자유를 구가한다는 정도랄까. 그러나 이곳에 오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낙동강 하구는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이다. 이곳은 1300 리를 흘러온 낙동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습지로 하천 퇴적작용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모래섬과 넓은 갈대밭이 있고 밀물 때도 수심이 별로 깊지 않으며 썰물 때는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는데 그 넓이가 무려 약 3천4백만 평이나 된다. 또한 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는 곳이기에 다양한 염생 식물과 해안성 식물이 분포하고 많은 조개류와 게 등이 서식하며 기후 역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얼지 않는 최상의 조건이기에 새들에게 중간 기착지, 번식지 또는 월동지 역할을 하는 천혜의 땅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곳은 문만 나서면 바로 새를 만나게 된다. 새들이 날고 노래하며 먹이를 주워 먹는 모습은 보지 않으려 해도 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실제 이곳 아파트들은 새들이 쉽게 날아다니게 하기 위해서 15층 이하로 지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곳은 새들과 동거를 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자연스럽게 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즈음은 마침 퇴직을 하여 시간적 여유도 있는 터라 새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카메라도 망원렌즈가 있는 것으로 새로 구입하여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다. 전문가들이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왕초보 수준이지만 제 흥에 겨워,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리기까지 했다. 아마 그 동안 찍은 사진만 해도 수천 장은 족히 될 것 같고 그 중에 공개를 한 것만 해도 수백 장은 되는 것 같다.
기러기 수천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 가마우지가 강을 가득 메운 정경, 대마등 위로 시원하게 날아가는 고니 떼, 왜가리와 백로의 힘찬 비상, 유영하는 오리들, 붉은 갈매기의 약동하는 윤무, 도요새의 반짝이는 군무, 희귀 새인 저어새가 넓적한 부리로 물을 헤집는 모습 등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경이 그렇게 쉽게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그 모습을 담을 때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감동의 물결이 일어나곤 했다. 그 짜릿한 기분 때문에 매서운 바람에 맞서며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것이다. 비록 털모자에 두꺼운 옷을 껴입었다고 해도 겨울은 역시 겨울인데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설쳐대니 내가 생각해도 엄청난 만용이었다.
새들의 이름도 정말 다양하다. 오리 이름만 해도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가창오리, 홍머리오리, 청머리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리, 혹부리오리, 흰비오리 등이 있다. 고니도 큰고니와 작은 고니가 있고 백로도 중대백로, 중백로, 쇠백로가 있다. 도요도 깍도요, 학도요, 흑꼬리도요, 청다리도요, 메추라기도요, 좀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오리면 오리고 도요면 도요이지,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리고 새들의 이동도 매우 조직적이다. 얼른 보면 한꺼번에 날아오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고니만 해도 올해 6000마리 정도가 찾아왔는데 철저히 분산하여 왔다. 우선 10월쯤 10여 마리 정도가 왔다. 선발대인 셈이다. 그 선발대들이 기후며 먹이 등을 점검한 결과 이 일대가 겨울을 날만하다고 본대에 알렸는지 11월 중순에 1000마리 정도가 왔으며 이들이 안전하게 정착하자 12월 초에 약 5000마리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대거 날아 온 것이다.
새들은 매우 가족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날아 다니다는 것 같아도 엄연히 가족이 있다. 대체로 오리는 부부중심이다. 암컷이 있으면 꼭 그 근처에 수컷이 있다. 수컷은 암컷에 비해 훨씬 아름답다. 사실 암컷만 보면 종류의 구별도 잘 되지 않지만 수컷을 보면서 이것이 암컷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니는 더더욱 애틋한 가족애로 살아간다. 보통 한 쌍의 부부 새에 딸린 새끼가 7-8마리 정도가 되는데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떼를 지어 다닌다. 부모와 새끼 고니는 외견상 크기는 거의 같아 보이지만 색깔이 다르다. 부모는 그야말로 백조의 흰 빛깔인데 비해 새끼는 흰 바탕이긴 해도 갈색 날갯죽지를 가지고 있다. 어미가 되려면 7-8개월 정도 커야 하는데 보통 시베리아 등지에서 새끼를 쳐서 4개월 정도는 되었을 때 데리고 온다. 그 정도는 되어야 그 먼 길을 날아서 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뒤 여기에서 3개월 정도 더 커서 돌아 갈 때는 완전히 어미 새의 색깔인 흰색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이동을 할 때는 부모 새가 앞뒤에서 보호를 한다. 먹이를 찾기 위해 물속에 들어갈 때도 꼭 부모 새 중 한 마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철저히 한다. 큰 덩치에 비해 의심도 많고 걱정도 많다. 새끼들이 먹이를 찾는 동안 부모 새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 절실한 사랑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새들이 떼를 지어 나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거의 환상적이다. 강과 바다, 산과 들, 심지어 철조망 위도 거침없이 날아서 못 가는 곳이 없으며 틈만 나면 마음껏 노래도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정말 그런 점은 부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새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그 자유스러운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고 내용을 알고 보면 그들 역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며 처절한 생존경쟁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저들끼리도 자리다툼을 하느라 서로 뒤엉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땅이 꽁꽁 얼어붙어 먹이를 구할 수 없으니 남쪽으로 피난을 온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늘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 하니 일정한 주소가 없는 떠돌이라 할 수 있다. 한 번은 낙동강 하구도 꽁꽁 언적이 있다. 믿었던 곳까지 얼어붙게 되던 날, 새들의 울음소리도 여느 때와 다르게 들렸다. 어깨를 서로 기댄 채, 서럽게 우는 것 같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들은 그림 한 폭이다
하늘을 차고 오르는 큰 비상
맑은 물에 남실거리는 행복
노을 심은 갈밭에서 잠을 청하는 평화
사랑을 숙성시킨 합창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이 모두 쉽게 접근 못할 비경
가까이서 보는 그들은
많은 식솔 거느린 피난 행렬
단벌옷에 지팡이 하나
남쪽으로 남쪽으로
눅눅한 습지에서 하루를 노려보는 그들
나는 것도 물 위에 떠 있는 것도
처절한 노동
부리가 화살처럼 원산폭격을 하지만
삶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고 늘 저쪽
얼마나 지쳤으면 졸고 있을까
꺼억꺽, 쉰 목소리가 밤을 꺾는다
다시 떠나야 할 시간
돌아보면 파도 앞에 무릎을 꿇는 발자국들
올 때처럼 갈 때도 단벌옷에 지팡이 하나
虛空
널브러진 바람 끝이 시리다
천혜의 철새도래지라고 알려진 이곳도 개발이란 이름으로 많이 잠식되었다. 날로 환경이 척박하게 되어 새들이 터를 잃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최소한 이곳만이라도 철새들에게 양보하여 그들이 마음 놓고 먹이를 찾으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필/ 2012년 여름 통권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