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소저 小姐 유문 遺文
행전 박영환
유 세차 모년 모일 維 歲次 某年 某日
내 속정을 아낌없이 바친 님에게
빈 소저 삼가 몇 자 올립니다.
한 때는 다정하고 포근하게 다가왔지요
허리를 잡고 입술을 훔칠 때만 해도
설마 단물만 빨아먹고 내팽개치는 위인일 줄 몰랐습니다.
이내 다른 치마폭을 찾으며
억센 구둣발로 면상이며 허리를 사정없이 구기박질러
거리에 내팽개칠 때 그 참담한 신세
눈물로 밤을 새웠습니다.
오호통재 嗚呼痛哉
바람에 뒤척이며 아는 체라도 하노라면
빈 깡통이 말이 많다고 또 다시 발길질을 하니
서러워서 가슴을 쳤습니다.
이웃집 담배꽁초며 껌 자국이 동병상련 하는 말
죽네 사네 쓰다듬고 애무하다가도
일순간에 원수취급을 하는 것이 인간들이라
우리는 이골이 났소, 너무 애달와 하지 마소.
버려진 병도 한마디 거든다.
내가 왜 병이겠소
배신에 떨며 병이 났다고 병이라오.
나처럼 홧김에 몸을 날려 형체도 알 수 없는 원귀 되지 말고
몸 보전이나 잘 하오.
애통망극哀痛罔極
알맹이 잃은 빈 깡통, 속이 속이 아니지만
속이 비었다고 생각까지 없으리오.
제발 구천에 떠도는 영혼 되지 않게
재활용관에 고이 묻어
인연 따라 다시 환생하여
사랑하는 님 다시 만나기를
엎드려 비옵나이다.
축수 축수 상향 祝手 祝手 尙饗
* 시작 노트 : 틈이 날 때마다 집 근처 거리나 공원에 가서 운동 삼아 휴지며 쓰레기를 줍습니다. 그런데 담배꽁초는 물론 껌, 빈 병, 빈 깡통이 너무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도 한 때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이라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여기에서 소저는 아가씨를 한문 투로 말한 것이며 즉 빈 깡통을 의인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