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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리

    서리

 

 

 

                                                                                                                    행전 박영환

 

 

 

  ‘서리’하면 밀려오는 향수와 함께 풋풋한 미소가 일어난다. 장난인가, 도둑질인가? 엄격하게 말하면, 남의 밭이나 집에서 주인 허락 없이 훔쳐오는 것이니 도둑질이었다. 그러나 서리를 하는 측도 죄의식이 없었고 서리를 당하는 집도 도둑맞았다고 이를 갈며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지 않았다.

  콧물을 훌쩍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밀이나 콩서리를 주로 했다. 또래들이 어울려 책 보따리를 어깨에 걸쳐 메고 집으로 오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밭에 들어가 눈치껏 한 아름 꺾었다. 구석진 밭두렁 밑에 숨어들어 불을 지피면 알맹이가 노랑노랑 익었다. 손으로 썩썩 비비어 후후 불면 구수한 냄새와 함께 기름이 자르르 흘렀다.

   “와아! 쥑인다.”

  탄성을 지르며 신나게 해 치웠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끝나고 난 뒤에 보면 손바닥은 물론이고 입 주변이나 볼, 심지어 콧구멍까지도 껌정이 새카맣게 묻어 호랑이 가죽처럼 얼룩덜룩했다. 아이들은 제 얼굴에 묻은 껌정은 보지 못하고 친구의 얼굴을 보며 배꼽을 잡았다.

  고등학교 때가 되면 서리에 한 가닥 한다는 꾼으로 변신했다. 식욕만큼이나 다리와 팔에 물도 엔간히 오르던 때, 알통 자랑을 하며 작당을 했다.

  눈 여겨 보고, 관심만 가지면 세상은 넓었고 먹을 것도 많았다. 사과, 감, 호박, 닭, 등….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과 서리는 나무 막대에 못을 박아 찍어내면 꽤 편안하게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찍어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감질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간덩이가 커지면 숫제 탱자나무 울타리에 멍석을 덮어씌워 타고 넘어가기도 했다. 자루를 가지고 갈 때도 있었지만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바지를 벗어 양쪽 가랑이를 붙들어 매면 훌륭한 자루가 되었다. 팬티 바람이지만 사과가 가득하면 그 정도는 참을만했다.

   닭서리는 과일이 떨어진 겨울밤에 많이 했다.

  “배꼽이 신호를 보내는데 어디서 닭소리가 들린다.”

  닭서리를 하자는 것이다. 닭은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잡아 오는 것이기 때문에 숨소리도 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떼를 지어 가지 않고 한 두 명만 조용히 갔다 와야 한다. 화투 패를 돌려 끗발이 낮은 사람이 대표 선수였다. 이팔 멍통을 잡은 복만이 녀석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동리에 나갔던 녀석, 얼마 뒤, 빛깔이 붉고 시울이 톱니처럼 생긴 볏을 단 수탉 한 마리와 살이 통통 오른 씨암탉 한 마리를 생포하여 왔다. 푸드득 푸드득 날개 짓이 장쾌했다. 닭을 요리하는 것은 후원자이며 공모자인 동리 처녀들이 맡았다. 불을 지피는 경순이, 치마폭에 무와 간장 등 양념을  훔쳐 나온 숙자의 손길이 바빴다. 침을 꿀꺽 꿀꺽 삼키며 기다렸다가 솥뚜껑이 들썩들썩하도록 김이 진동을 하고 난 뒤 둘러앉았다.

  “닭 뼈다귀 걸리면 약도 없다 카더라, 조심해서 먹어래이.”

  경순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걸릴 뼉다구가 어딧노, 뼉다구까지 몽조리 부수어 먹을 낀데”

  정말로 그랬다. 무쇠도 녹일 판이니 그런 건 염려할 것이 못되었다.

  이튿날 아침, 밤이 이슥하도록 먹는데 정신이 빠져 늦게 들어온지라 세 상 모르고 잘 자고 있는데

   “구구구…. 이놈의 비슬 시퍼런 장닭이 어디갔노, 이서방 잡아 주려던 암탉도 안 보이고, 이놈들이 벌써 마실 갔나. 그라다가 고냉이(고양이) 밥이라도 될라꼬…. 구구구….”

  할머니는 온 집을 뒤지며 구구단을 외었다. 처음에는 잠결에 대수롭잖게 들었으나 가만히 생각하니 심상치 않았다. 눈이 번쩍 떨어졌다.

  ‘그러면 어제 저녁에 먹은 닭이 우리 닭! 어째 안면이 많더니….’

  복만이 녀석이 들어오면서 나를 보고 씨익 웃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 다그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복만이 녀석, 니가 우리 닭을….’

  사실, 같이 작당을 한 녀석들의 집에서 잡아오는 것이 제일 안전했다. 비록 서리라 해도 들키면 닦달을 당하는데 자기 아이가 끼어 있으면 발각되어도 문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편한 길로 그렇게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오냐 이 녀석아 너거 닭은 오늘 저녁 내가 모시꾸마.’

 이를 박박 갈았다.

  호박 서리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뒷마을 산기슭 밭에 호박이 넝쿨째 구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쾌재.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보무도 당당하게 건달 예닐곱 명이 호박밭을 기습하였다.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낚아챘다. 호박 소탕 끝.

  이튿날 점심때쯤 모여 호박전을 부쳐 먹기로 했다. 그날은 마침 이슬비도 부슬부슬 오니 전을 부쳐 먹기가 안성맞춤이었다. 우리 도씨(盜氏)들의 소굴로 둔갑한 재실 마당에 돌을 괴고 솥뚜껑을 거꾸로 하여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기름이 탁탁 튀며 자글자글 잘도 익어 막 먹으려고 하는데 이 때, 느닷없이 장 장로님께서 재실 문을 열고 나를 찾았다.

  ‘또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을에 교회가 세워진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는 우리 마을에 있었지만 정작 우리 마을 사람들은 유교적인 가풍 때문에 교회에 거의 다니지 않았다. 장 장로님도 이웃 마을 사람이었는데 그게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안의 종손인 내가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틈이 나면 교회에 나오도록 설득했다.

  “자네가 하나님 앞에 선서를 하고 기독교 학교에 입학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일세, 이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영접하게나.”

  나는 비록 그 학교에 진학했지만, 교회에 갈 생각은 별로 없었고 또 부모님도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구시렁거리며 문 앞에 나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교회엔 안 나갈낍니더.”

  그런데 어째, 장 장로님 표정이 전과 달랐다.

  “오늘 내가 자네를 찾은 것은 교회 때문이 아니고 호박 때문이라네….”

  호박 때문이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집 앞에 평상을 내어 놓고 있는데 자네들이 우리 호박밭에 올라가더구나. 아무리 희미한 달빛이래도 자네는 분명히 알아보겠더구나. 고함을 치려다가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자네도 들어있는데 장난으로, 몇 덩이 가져가려니 생각했지. 그런데 그렇게 밭을 홀랑 비울 줄은 정말 몰랐다네.”

  오! 주여 쿼바디스 도미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백배 사죄하고 남은 호박은 전부 돌려드렸다.

  수박 서리는 다른 서리와 달리 도둑놈 취급을 받는다. 수박은 공도 많이 들이고 또 비싸기 때문에 지키는 원두막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누구인가, 포기할 수 없었다. 수박서리를 하려면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사전에 정찰을 철저히 하며 도상 연습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수박서리를 하느라고 군대에 가기 전에 이미 낮은 포복과 높은 포복, 철조망 통과 방법을 배웠다. 정말 숙달된 동작으로 몸을 낮추어 접근했으며 울타리도 아주 정교하게 따고 기어 들어갔다. 어두운 밤중에 수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손으로 더듬어서 딸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이 지키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걸려들기 십상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온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온몸을 이용한다는 것은 아예 수박 밭에 키대로 누워서 구르는 것을 말한다. 구르다가 맞닥뜨리는 놈이 보물 단지였다. 그런데 이 짓은 좀 악질이었다. 손으로 더듬게 되면 줄기는 상하지 않지만 몸을 눕혀 구르면 수박 줄이 심하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악동들은 주인의 사정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들의 목표는 마을에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수박밭이었다. 그런데 미리 말하지만, 우리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주인의 유인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이건 우리 서리 인생에 뼈아픈 실패였다. 알고 보니 그날, 우리가 습격하기 직전에, 이웃 마을 녀석들이 선수를 쳐서 거뜬히 한탕하고 지나갔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뒷북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불의의 기습에 수박 서리를 당하고 울화가 치민 주인이 입에 고추를 불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 일당의 인기척이 들렸던 것이다.

  ‘이놈들 봐라. 이제 아주 재미 붙여 재탕하러 오는구나.’

  길목에 잠복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철조망 통과, 온갖 재주를 다 벌였는데 앞서 들어가던 석이의 덜미가 억센 손아귀에 잡혔다. 으악 - 비명 소리가 들리자 걸음아 날 살려라, 우리는 풍비박산(風飛雹散) 흩어졌다. 도망가다 보니 개x끼, 소x끼, 입에 담지 못할 욕설 속에 무차별 난타 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더 도망을 가지 못하고 우뚝 섰다. 동업자가 잡혔으니 뛰어봤자 벼룩이었다. 상황 판단이 빠른 복만이 녀석이 제안을 했다.

  “석이가 잡혔으니 결국 이름을 다 불게 될 끼다. 우짜겠노. 그렇게 잡히느니 차라리 자수하여 광명 찾자.”

  자수하여 광명을 찾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 해도 별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죽을상으로 어기적거리며 들어가서 주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싹싹 빌었지만 주인은 우리를 원두막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남폿불을 밝혀 얼굴을 살피던 주인이 석이를 보며 깜짝 놀랐다.

  “이것, 사돈총각 아니가”

  석이 녀석도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알고 보니 주인은 석이의  누나 시동생이었다. 오히려 주인이 사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의 장난에 이렇게 모질게도 면상을 못 쓰게 만들어 놓았으니, 사장어른과 형수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미안하다며 석이의 가슴에 큰 수박덩이 하나를 억지로 안겨주었다. 석이의 면상에 시퍼렇게 든 멍은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웃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던 녀석이 되레 히죽 웃어버리는 통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떡 서리를 한 일이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안 아저씨 중에 감 농사를 많이 짓는 분이 계셨다. 그 집 창고에는 겨울에도 감이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것을 조금 가져다 먹기로 했다. 그 집 지리에 밝은 내가 들어가서 별 생각 없이 감이 담겼거니 생각하고 설기 하나를 가지고 왔는데, 막상 열어 보니 감이 아니고 떡이 가득 들어 있었다.

  ‘웬 떡’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만 생각을 해도 이건 먹을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것인데 철이 없던 때라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야금야금 먹어버렸다. 그래도 설기는 제 자리에 다시 갖다놓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떡은 누나가 결혼하여 시댁에 처음 갈 때 가지고 갈 예물 차반이었다. 

  이튿날 아침, 누나 집에 대절 택시가 도착했고 시댁에 보낼 짐을 하나하나 싣기 시작했다. 이때, 떡 설기를 들고 나오던 누나의 어머니인 정곡 아지매가 고함을 쳤다.

  “이걸 우짜노, 와 이렇게 가볍노 싶어 열어보니 떡이 하나도 없데이.”

  “뭐라캅니꺼.”

  누나도 후닥닥 달려와서 빈 설기를 보더니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신부 체면도 잊어버리고, 두 다리를 뻗쳐 울기 시작했다. 화장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차, 보통이 일이 아니었다. 누나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는 먼 산을 쳐다보며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러나 그 이후, 너무 미안하여 누나의 얼굴을 바로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혹시 차반을 가지고 가지 않아 시댁에서 미운털이라도 박히는 일이 생길까봐 가슴을 졸였다. 다행스럽게 별탈이 없었다. 오히려, 시어른의 사랑도 받고 부부간에 금슬도 좋아 떡두꺼비 같은 아들 잘 낳고 재산도 불리면서 잘 살았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로부터 공소의 시효(?)가 지난 한참 뒤, 누나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누부야, 그 때 떡 도둑놈이 내다.”

  “하이고, 문딩이야, 아무래도 니 수작인 것 같더라.”

  누나는 나의 팔을 암팡지게 꼬집었다.

  “그래도 누부는 내 덕에 잘 사는 기다. 그 때 누부가 떡을 해갔으면, ‘차반  잘 해왔네’ 하면서 고개 빳빳 세웠다가 미움을 받아 시댁에서 쫓겨났을 것인데….”

  능청을 떨었다.

   “하이고, 이것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펄떡거린다. 이 문딩야, 내 너거 학교 가서 너거 선생, 도둑놈이라고 광고할끼다.”

  “허허허”

  누나가 광고를 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정년까지 무사히 잘 마치고 나왔다.    ‘누나 고마워요.’

  이제는 시골 마을이라도 이런 풍경이 없다. 서리를 할 아이도 없지만 쉽게 용납도 되지 않는다. 이따금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10인 감성 수필집 '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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