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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담바라꽃을 찾아서

                우담바라꽃을 찾아서

 

        

 

                                                                              행전 박영환

 

 

 

  11월 초순, 일행 몇 명이 동해안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느덧 초겨울을 느낄 정도로 약간 쌀쌀한 날씨였다. 아침 일찍 나선 탓에 가는 도중 차를 잠시 세우고 시래깃국에 밥을 말았다. 이것도 역시 별미다. 단풍잎 하나가 아주 가까이 떨어졌다.

  먼저 도착한 곳이 대왕암 - 그다지 크지 않는 바위, 신라 다른 왕들의 능에 비하면 너무나 볼품이 없는 바위이다. 그런데 문무왕 당신은 어떻게 그런 곳에 당신의 유골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을까? 대단한 용단이다. 그런 호국의 정신이 있었기에 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오쯤 기림사에 도착했다. 우담바라라는 꽃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우담바라꽃은 천년에 한 번씩 피는데 그 빛깔이 다섯 가지로 신비로운 서기가 가득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우물 다섯 개가 또 유명하다. 그리고 용의 전설도 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감은사의 앞바다 대왕암에서 용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고는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와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들고 쉬고 있는데 때마침 태자(뒤에 효소왕)가 와서 “이 옥대의 한쪽 한쪽이 모두 진용(眞龍)입니다.”라고 하니 , 왕이 “네가 어찌 아느냐”라고 하자 태자가 “옥대의 한쪽을 떼서 물에 넣어 보소서”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왼편 둘째 쪽을 떼서 시냇물에 넣으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어 용연(龍淵)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곳에는 우담바라와 우물, 그리고 용연 세 가지의 전설이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3개의 전설은 각각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즉 우담바라꽃 다섯 가지 빛깔 하나하나가 우물이 되고 그 우물이 만파식적의 구멍이 되었다가 물을 만나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간 것. 너무 비약일까? 그렇지만 다섯 개라는 숫자와 우물과 퉁소의 구멍은 우연치고는 너무 일치되는 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담바라

우담바라

함월산 기림사(祇林寺)에는

천년에 한 번

다섯 가지 빛깔의 우담바라 꽃이 핀다

다섯 가지 빛깔은 우물이 된다

이슬에 젖어 감로수

마음이 편안해지는 화정수

기개가 넘치는 장군수

눈빛이 초롱한 명안수

까마귀가 쪼았던 오탁수

다섯 우물은 하나하나 참 용이라

만파식적의 눈망울로 사람을 돕다가

피리 소리 가득하면

하늘로 오른다

우담바라

우담바라

 

  오후가 되면서 햇살이 따뜻하다. 여행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씨다. 기림사에서 가까운 골굴사를 찾았다. 절 입구에 할머니들이 호박, 감 등 토산물을 내어 놓고 방문객을 부른다. “정말 이곳에서 난 것인지 몰라” “요즈음은 중국산을 가져다 파는 일이 많다죠.”

  부처님의 불법을 느끼러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의심을 해야 하다니.

  멀리 마애석불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다. 흔히 한국판 돈황석굴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원효대사와 연관이 많은 곳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열반한 뒤 그 아들 설총이 대사의 뼈를 갈아 실물크기 만큼의 소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올랐는데 입구에 남근바위와 여근바위에 대한 전설을 기록해 놓았다. 이곳에 앉아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나.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기도를 드렸을꼬. 높은 곳에 위치한 마애석불을 만나기 위해 가파른 석회암벽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일행 중에는 구두를 신고 온 사람이 있어 손을 잡아 주어야 했다.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 옆에는 보조 줄이 있다. 그 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올랐다. 그리고 자연동굴도 통과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 앞에 옷깃을 여미었다. 그런데 오랜 풍화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아 너무 아쉬웠다. 마애상은 석회암에 새겨졌는데 그 석회암의 약한 성질 때문에 마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호각을 세웠는데, 그것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는 일인 것 같다. 오른쪽 귀와 오른 손, 가슴 등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으나 부처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오히려 찾아온 방문객을 위로하고 있다. 이 산의 이름처럼 달을 머금은 자태, 때마침 흐드러지게 수를 놓고 있는 단풍에 물들어 홍조를 띠고 있는 모습에 합장, 합장을 했다. 부처님은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한 번 보란다. 마음껏 푸르게 펼쳐진 하늘 아래 산과 들의 모나지 않고 둥근 모습, 어느 한곳에도 구김살이 없다. 더 멀리, 더 멀리 부처님의 목소리가 간절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눈 아래 절벽만 두려워할 뿐, 저 멀리 전개되는 평화에는 너무 자신이 없구나.

  발길은 다시 오어사로. 이름이 좀 특이하다. 신라 26대 진평왕 때 창건한 사찰로 당초에는 항사사(恒沙寺)라 불렀으나 원효대사와 해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法力)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토록 시합를 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지라 그 고기를 두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나 오(吾), 고기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라 하였다고 한다. 대선사들도 그렇게 다투었을까? 차라리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너 여(汝)에 고기어(魚)자를 써서 여어사(汝魚寺)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찾는 이들도 너무 자기중심인 것 같다. 얼키설킨 차들의 행렬. 멀리 주차를 시키고 천천히 걸어오면 운치가 훨씬 있을 것인데 턱밑에까지 차를 몰고 와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길이 막혀 심심찮게 실랑이를 벌인다. 자기 탓이란 사람은 찾기 어렵고 전부 네 탓이란다.

  그러나 운제산(雲梯山)의 수려한 그림자를 담은 오어지(吾魚池)의 푸른 물이 이 찌들은 마음들을 계속 헹구어 내고 있었다. 그래, 이곳에서 전부 씻어내는 거다. 오어지에는 고기떼들이 많다. 한 마리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고기떼들이 신나는 율동을 펼친다. 죽은 고기가 되지 말고, 살아있는 고기가 되자.

  원효암 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이다. 감나무에는 감이 올망졸망 정겹게 등을 맞대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울까? 여름에 잎사귀가 얼굴을 가려 주었는데 지금은 그들마저 떠나 버리고 없으니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원효암에 이르니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어졌다. 돌아갈 시간인 것 같다. 우담바라꽃은 천년에 한 번씩 핀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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