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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령탑(魚靈塔)

    어령탑(魚靈塔)

 

 

 

                      행전 박영환

 

 

 골 깊어 구천동, 덕유산 오르는 길에 눈이 쌓인다.

 "무주 구천동에 서른 네 번째 명소가 어딘지 아십니까?"

 동행인 김 선생이 파카 깃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글쎄, 뭘까요"

 "송어 횟집입니다."

 "송어 횟집"

 조금 의아한 모습을 짓는 나에게 그는 나름대로 주석을 붙여 설명을 했다.

 "원래 무주 구천동은 저마다 특색이 있는 폭포며 기암괴석 등으로 이루어진 서른 세 개의 명소로 되어 있지만, 식도락가들에 의해 농담반 진담반 그렇게 일컬어진 것 같습니다".

 "그것 참 재미 있는 일이군요. 이런 선경에 하필이면 송어 횟집이 하나의 명소가 되다니?"

 "금강산, 아니 구천동도 식후경이 아닐까요?. 인간들은 독특한 정감을 주는 산수의 비경에 도취되어, 속진에서 잠깐씩 떠나기는 해도 속인의 기질은 어쩔 수 없어, 팍팍한 다리를 잠시 뻗어 놓고 횟감 한입 베물고 소주 한 잔 걸치는 거죠"

 "구천동의 또 다른 풍류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서른 네 번째 명소에서 풍류 한 번 즐깁시다. 하하하하"

 동의를 했다. 그러나 우리가 횟집을 찾았을 때는 송어 횟집 입구엔 `월동 대책으로 송어는 다른 곳에 보관'이란 안내판만 붙은 채 영업을 하지 않았다.

 출출한 터에 송어회를 곁들이는 소주 일배를 떠올렸으나 공연히 군침만 흘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 돌아서려는데 김 선생이 다시 나의 소매를 잡으며 손가락으로 탑 하나를 가리켰다. '어령탑(魚靈塔)'이란 좀 생소한 탑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뭔 것 같습니까?"

 "글세요"

 어령탑, 어령탑,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탑이 이름 그대로 고기의 영혼을 위로하는 탑입니다"

 "좀 특이한 탑이군요."

 "그렇죠."

 "내가 견문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기의 영혼을 위로하는 어령탑이란 이름은 처음입니다. 간혹 도축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소나 돼지를 위해서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그런데 박 선생님, 나는 저 탑을 볼 때마다 횟집 주인이 업보신(業報身)을 의식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업보신 …. 그럴듯한 추론이군요"

 업보신 - 불교에서는 생명을 매우 중요시하여 생명에게 업을 쌓은 만큼 갚음을 받는다는 것. 생명을 구해주면, 구해준 보답을 받고 생명을 죽이면 죽인 만큼의 죄 값을 받는다는 것이다. 개미를 살려 주고 장원 급제를 한 사람이나, 자라를 구해주고 귀한 아들을 얻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선연(善緣)의 보시가 업보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살생으로 빚어진 엄청난 죄 값을 당하는 악연(惡緣)도 많다. 불교에서는 생명체가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엄청난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체가 죽임을 당할 때는 강력한 저주를 하게 되어 있고, 그 저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는 현대 과학이 주장하는 생물학적 보편 진리인 유전 인자 같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임신 중 오리 고기를 먹으면 오리발처럼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붙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 고기를 먹으면 자라목이 되고, 개를 많이 먹은 사람은 죽을 때 개소리를 하면서 죽고, 뱀을 많이 먹은 사람은 번질번질 징그러운 뱀을 닮는다는 것이다.

 비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런 비극이 생긴다면 소름 끼치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어령탑을 세운 송어 횟집 주인도 비록 생업이긴 해도, 죽지 않으려고 손아귀에서 파닥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리한 칼날 속에 죽어가던 송어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송어들의 위령탑을 세우고 일년에 한 번쯤 제사라도 지내는 것이 아닐런지.

 "조선 정조 때의 유학자인 정홍규 선생은 그의 자손과 제자들에게 서른 여섯 항목의 유훈을 남겼는데, 그 중에 '물고기를 잡지 말라'는 항목이 있어 좀 특이했습니다"

 "정말, 좀 특이한 일이네예, 하기야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에는 해충인 이[蝨]까지도 생명체 대우를 하여 죽이면 안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

 "슬견설이나 정홍규의 유훈을 들을 당시에는 너무나 비약적인 과잉보호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 어령탑도 그런 일면이 있는 것 같군요"

 "유훈, 슬견설, 어령탑 …. 근본적인 정신은 서로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맥상통하는 점은 있어도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어령탑은 정홍규의 '유훈(遺訓)'이나 '슬견설'과는 또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송어 횟집 주인은 송어를 학대하는 쪽일까? 보호하는 쪽일까 하는 의문도 해결되지 않고요?"

 "하기야 이 어령탑이란 것이 좀 묘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죠."

 "그럼요, 저게 일종의 위령탑인데, 위령탑이란 것은 본래 죄를 지은 사람이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사죄의 결심이 형상으로 표현된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이 횟집 주인은 그런 약속이나 결심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거든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잡을 수밖에 없으나, 단지 마음에 걸려 이 탑을 만들어 위로를 해주니 제발 앙화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탑의 설립 취지는 희화화 되어 원인 무효가 될 법합니다. 사실 그런 마음은 겁장이의 어설픈 자기 최면이나 또는 가해자의 속 보이는 타산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편 다른 측면에서 보면, 모르긴 해도 정홍규나 이규보의 자손들 중에도 `유훈'과 '슬견설'의 주장대로 물고기 또 심지어 이(蝨)까지 생명으로 대접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이 분은 그래도 물고기의 생명을 의식하여 탑을 쌓고 또 일년에 한 번씩 위령제를 모시는 그 때만은 가해자의 숙연한 양심 표현은 있었을 테니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은 있죠"

 "서양에는 '동물 애호 협회'란 것이 있잖습니까? 그들 덕분에 서울 올림픽 때, 견공(犬公)들이 대접을 톡톡히 받았죠."

 "개고기를 먹으면 코 큰 사람들은 식인종보다 더 야만인으로 취급을 한다니, 정부는 부랴부랴 올림픽의 성패를 걸듯이 견공의 보호에 적극 나섰지 않았습니까?"

 "메스컴도 동원되었죠. 고명한(?) 의학자들이 연일 출연하여 개고기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 되었다고 크게 보도를 하였죠"

 "그 때, 아무리 개고기 보신탕 맛에 매료되어 있던 사람이라도 암에 걸린다니 물러설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발암 물질 운운 하는 것도 허구란 것이 금방 드러나고 말았죠?"

 "발암 물질이 검출되었다면서, 면 단위 이하는 허용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눈감고 아옹도 보통 아옹이 아니었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죠."

 "그 즈음 송기숙씨의 소설 '신농가 월령가'에선 `다 똑같은 사람인디, 병에 걸리기로 하면 촌사람이라고 어째서 안 걸릴 것이요? 그러면 촌놈들은 개고기 먹고 병에 걸려도 좋다는 소리구나'하고 침을 퉁겼죠"

 "하기야 애초 발상 자체가 국민 건강이 아니고, 서양사람들에 대한 체면치레였으니 서양사람들의 가시권만 벗어나면 그만이었죠. 그래서 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암 물질이 소멸되었는지, 또 다시 '영양탕'이란 간판을 달고 도회의 골목에 개 다리가 만세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코메디죠"

 "서양사람들이 '동물 애호 협회'를 만들어 동물의 낙원을 만든 숭고한 족속인냥 으스대는 것도 봐주기 힘들죠. 그들은 동물에 대한 편애가 너무 심합니다. 그들은 개만 유독 사랑하지, 개 이외의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우리 이상으로 무관심하거나 학대가 보통 아닙니다."

 "개 이외의 고기는 잘도 먹고 있지 않습니까? 말 고기도 먹고 심지어 어떤 이는 뱀 눈깔 요리를 일미로 추켜 세운다죠."

 "그러면서 유독 개만 사랑한다니 그들은 '동물 애호 협회'라기보다는 '동물 편애 협회'라고 간판을 바꾸어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신농가 월령가' 주인공은 '우리는 사람 애호 협회(?) 회원이라 사람 몸보신 할라고 개를 먹은께, 느그들은 우리 보고 개 먹는다고 시비하지 말고 깜둥이 사람 취급이나 제대로 하라' 고 했죠. 나도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공연히 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박수를 치고말고죠."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 즉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제일 귀하다는 것. 이 말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긍지이죠. 그러나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 것은 조물주이고 인간도 그 생명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면 이는 너무 심한 자만인 것 같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한 마리 짐승도 조물주에 의해 창조되어 그 섭리로 천부의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때로는 신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지혜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특혜 받은 지혜를 통하여 만물들을 너무 많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조물주의 총아가 아니고 실패작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핍박을 당하고 생명을 앗기고 있심니까?"

 "너무 인간 본위죠"

 "소는 잠시도 쉬지 않고 주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는 처참하게 도살이 되고, 개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밤낮없이 주인집의 안전을 위해 충복을 다하지만, 끝내는 그들에 의해 단말마를 터뜨려야 합니다. 닭은 알을 빼앗기다 지치면 육신까지 바치고, 벌들의 수난은 어떠합니꺼? 그들이 만든 꿀을 사람들이 왜 먹어야 합니까? 벌들이 언제 사람에게 주겠다고 꿀을 모았습니까? 일년 내내 그들의 월동을 위해 준비한 것이죠."

 "한 번 나르는 꽃 가루는 현미경으로 관찰하여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미립자이죠. 협동공생의 결과가 뚜껑을 열고 통째로 삼키는 인간들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죠. 마지막 작은 침으로 항거를 하나 끝내는 앵앵거리는 좌절감에 한숨만 묻어날 뿐이죠."

 "노동 착취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인간들의 잔인한 횡포는 끝이 없습니다. 몸에 이롭고 특히 정력제라면 혈안이 되어 흡혈귀가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동면하는 개구리를 잡아 철판에 올리고, 살아 있는 사슴의 목에 빨대를 집어 넣어 생피를 빨아 먹으며, 임신한 어미 소의 배를 갈라 송아지를 끄집어 내어 가마솥에 집어 넣기도 하죠. 차마 입에도 담기 거북한 작태들, 이는 분명히 죄악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전엔 죄악으로 기록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주를 지배하는 섭리의 궤적으로 보면 신의 질서를 어지럽힌 특급 죄명을 달 게 될 것입니다. 흔히 인간들은 절이나 교회를 찾아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까? 엄격하게 이야기 하여 인간이 과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 드릴 자격이 있습니까? 어쩌면 인간들은 천국이나 극락에 아무도 가지 못하고 인간의 핍박에 의해 처참하게 비명 횡사한 다른 동물들이 그곳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속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김 선생, 우리가 풍류 운운하며 송어 횟집으로 발길을 옮기던 때와는 논조가 너무 변질된 것 아닌가요? 하하하하"

 "그렇게 되었죠. 오늘은 어령탑, 유훈, 슬견설, 동물애호협회 등이 얼키고 설켜 우리들의 화제도 중심이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속대(離俗臺)를 지나 살생을 금하는 불도의 도량인 백련사가 가까워지자, 법정(法頂)의 업보신을 강조하는 말, '죽이지 말자'까지 생각났으니 더 흥분을 했고요"

 

 이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이며, 우리들은 그 한 지체이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 때문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서로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우주의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이외의 생명을 너무 가벼히 하여 많은 생명들을 앗아 가며, 이런 버릇들이 인간의 생명까지도 경시한다. 윤회 사상으로 본다면 한 생명을 죽인 것이 그 자체로 무로 돌아간 것이 아니고 인과관계에 의해서 몇 생을 두고 서로 죽이고 죽는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 법정 -

 "인간 모두가 법정처럼 불제자가 아닌 바에야 육식을 금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겠죠. 그러나 어령탑을 세운 그 분처럼 최소한의 죄책감, 아니 일종의 양심이라 할까요. 아무튼 그런 기본적인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횟집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겨울엔 월동대책으로 보호하고, 번식을 하지 않는 시기는 잡지 않고. 작은 고기는 살려 주고,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

 "나도 오늘부터 마음 속에 '어령탑'하나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눈은 어느새 폭설에 가깝게 쏟아지고 있다. 덕유산은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지만, 아직도 희게 할 것이 그렇게 많은지 눈발은 그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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