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
행전 박영환
작품 속에 나타난 ‘술과 담배’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동기는 없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부수입(?)도 얻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 동기라면 동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펼치는 또 다른 인생을 음미하며 사색의 밀실로 침잠하는 경우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지만, 때로는 작품이 난삽하고 생경하여 당장 권태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책은 잘 읽지도 않지만, 때로는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에 억지로 읽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보상의 차원에서 부수입을 얻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술과 담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최인호의 ‘술꾼’ 등처럼 아예 제목 자체에 술이 들어간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술과 담배를 취급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작중 인물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인생을 토로한다. 작중 인물들은 이들을 매개로 하여 용기 여유 등 낙천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갈등, 자책, 자학, 자위, 타락 등 허무한 심중을 전달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술과 담배’에 대한 작중 인물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다.
저어 선생님! 술 속에는 진리가 있느니라,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아요. 술 속에는 진리가 있어요. 잔 가득 부어놓고 그 유리 잔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참말 무슨 진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잔만 바라봐서는 안되지요. 그 한 잔을 쭉 들이켜야 참된 진리를 알 수 있죠. <함대훈, 첫사랑>
어느 교수의 첫사랑인 경희가 여급이 되어, 우연히 카페에 들린 교수에게 술을 권하며 한 말이다.
애, 나를 봐라. 나는 이제 보잘 것 없게 됐다. 이젠 전에 내가 아냐, 네게 일러두지만 너는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 그건 악마다. 그건 우리들 살덩이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악마, 악마- <뵈손른, 아르네>
술과 방탕에 젖어 있던 주인공 니르스는 만년에 자식에게, 술을 악마라고 규정했다.
술이란 묘한 거야, 꼭 여자 같거든, 좋을 때도 있고 그저 한 번 스치고 지나쳐보듯이 한 번 걸치는 맛도 있고. <오상원, 어떤 죽음>
이는 극단을 피한 중용의 태도이다.
술과 담배를 대하는 남녀간의 의식도 많은 차이가 있다. E.E 리튼은 ‘담배란, 울음이 여자에게 큰 위안인 것처럼, 남자에게 큰 위안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현자(賢者)처럼 생각하고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나 여자들의 술과 담배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어른들 앞에서 못하던 장난들을 어른들이 없는 사이 숨어서 살며시 해보는 아해들의 놀음과도 같은 것이 여자들의 술과 담배이다 <이효석, 화분>
1930년대의 여인들에게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현대 여성들에게도 끽연은 별로 긍정적이지 못하다.
"나도 하나 주시겠어요?"
"당신이 언제부터 피웠오?"
조오지의 손이 멈칫했다.
"……."
"알아요, 그리 보기 좋지 않은 줄을……." <윤명희, 난파선>
남자들은 멋으로 안다.
결혼을 하자 그는 12년 동안을 처의 재산으로 살아갔다. 근사하게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고 도자기 큰 담배 물부리로 담배를 피워 물고 거리를 활보하고 구경을 하고……. <프로벨, 보봐리 부인>
근사한 술, 활보하는 담배가 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과음을 하는 모습도 있었다.
작년에 그는 고입 입학 원서 내었으면서도 시험 일에는 20분이나 늦게 나가 시험장에서 거절당했을 때, 수험료는 지불하였으니까 그럼 시험 문제라도 달라고 청구를 하여 그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는 유명한 일화조차 있었다. 그 때 늦어진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날 술을 과음했기 때문이다. 나도 한 번 산책하는 길에 그의 공부방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는 길다란 파이프로 푹푹 ‘백매(白梅)’담배를 피우면서 취기로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久米正雄, 수험생의 수기>
시험장에 지각을 할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이다. 앞의 예는 일본의 중학생 경우이지만, 한국의 중학생 중에도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호기를 부리는 모습도 있다.
그는 소주잔을 철철 넘치게 붓더니 형원의 입에다 바짝 갖다 대었다. 형원은 잔을 받아 쥐더니 그대로 훌쩍 목구멍으로 털어 넣어 버렸다.
"자 이쪽 중학생 친구 분도 한 잔 하시지"
이번에는 나에게로 잔이 내밀어졌다. <이청준, 우리들의 초상>
물론 이들은 Adler의 분류 중 ‘방임된 이이들’이라고 하지만, 술을 잘못 배우고 있다. 이른 바 ‘주도(酒道)’를 모르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하느니. 그래야 술버릇이 점잖아지지" <선우 휘, 불꽃>
"자, 너도 한잔 먹어라, 술은 어렸을 적 배워야 해." <김상열, 八萬氏>
‘불꽃’에서는 할아버지가, ‘八萬氏’에서는 아버지가 각각 그의 손자와 아들에게 주법을 이야기했다.
술이란 혼자 마시면 끝에 가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다. 이야기 동무도 없고, 잔을 주고받는 일도 없고, 거기다가 청승맞게 술잔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을 수 없어 내기 술 마시듯 거푸 잔을 비우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한꺼번에 취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청준, 조율사>
나는 이미 10여 년 전에 20여 년 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을 때 고통이 참 심했다. 얼마나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지 수업을 하는데 헛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 술은 끊지 않고 있다. 솔직히 술은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친구나 지인들과 더불어 술자리를 같이 하는데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얼른 생각하여 많은 시간 같이 속내를 털어놓으며 우의를 다질 친구가 있을 때 술 이상 더 좋은 것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역시 과음은 금물이다.
인간의 기호품인 술, 그야말로 조절을 잘 하여 약주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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