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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해바라기 송(頌)

  해바라기 송(頌)

 

 

  

 

    

                                             행전    박 영 환

 

 

 

  해바라기만큼 진실을 왜곡 당한 꽃도 드물다. 그는 흔히 지조 없이 아부하는 정치인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 상사의 눈치만 살피는 직장인 등,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 앞에 수식어 역할을 한다. 해바라기성 정치인, 해바라기성 학자, 해바라기성 사원이 그것이다. 그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바라기의 속성을 정당하게 평가하기보다는 늘 색안경을 낀 시각에서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주변의 곱지 않는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안일과 영달만 생각한다. 선배, 동료, 후배 등 그의 경쟁 상대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철저히 짓밟는다. 칭찬보다는 헐뜯기를 좋아하고, 때로는 모략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운명에 영향을 줄 만한 상급자에 대해서는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철저하게 부동자세가 되거나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린다. 욕심 같아서는 그의 분신이라도 되고 싶지만 그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 손바닥의 지문이 지워진지 오래다. 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정말 그럴까.

  고향집에 해바라기 한 그루가 있다. 비록 일년초이지만 다년생 나무를 연상할 만큼 당당한 모습이기에 ‘포기’란 말 대신에 ‘그루’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나서 자란 것이다. 처음에는 뽑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마침 이것이 자리 잡은 곳이 다른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울타리 가이고, 또  어느 새 키도 멀쑥 커 버린 것이 기특하기도 하여 그냥 두었다.

  그런데 가을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 고개를 숙인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종전,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여름 내내 얼마나 집요하게 해를 따랐던가? 잠시라도 해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세라 한눈을 팔지 않던 아니 팔 수 없었던 그이었다. 그 지독한, 이른바 ‘해바라기성’ 태도 때문에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그러던 그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다니…. 그것도 그냥 숙인 것이 아니다.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얼굴을 목에 붙인 채 완전히 접은 것이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게 목을 접었는데도 억울하다고 불만, 불평을 하는 빛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행복과 평화를 가득 담은 얼굴이었다. 순간, 이것이 그의 참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것이 그의 참모습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의 진실을 모르고 마냥 곱지 않은 눈길로 비아냥거리기에만 바빴다. 

  그가 밝음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밝음을 좋아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없다. 그늘에서 질척이며 위선을 하기보다는 아예 밝음을 따르겠다고 선언을 해 버리는 것, 이는 오히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용기가 아니던가. 밝음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밝히는 것, 설사 그것 때문에 질시의 대상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정도(正道)에의 용기이다. 그런 용기는 사(私)가 아니고 공(公), 사(邪)가 아니고 정(正)으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자세를 보라. 어디 하나 굽은 데가 없다. 대나무처럼 푸른 기운에 위엄까지 구비하지 않았는가? 잎도 무성하여 푸근한 그늘을 드리운다. 꽃망울도 이름 그대로 해를 닮아 풍성하고 커다란 원을 그려 놓았다.

  그는 인내심과 정열이 있다. 고난의 여정을 참고 견디어, 기어이 해를 닮은, 속이 꽉 찬 보석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없이 순수하다. 그에게는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변덕이 없다. 요염한 색깔로 교태를 부리지 않는다. 예리한 독침으로 중무장을 하거나 악취로 방호벽을 두텁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이 가는 그런 얼굴이다. 그리고 또 그는 마지막 순간, 이렇게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알고 보니 여름 동안 그의 고개든 행보는 이렇게 고개를 숙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시인도 그의 고개 숙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숙연할 정도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묵상에 잠겨 있는 성자(聖者)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가을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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