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강(海金剛)과 외도(外島)
행전 박영환
거제섬 구조라(舊助羅) 앞바다는 비가 오고 있었다. 공룡(恐龍) 바위에서 가득 뿜어내는 해돋이 장관을 보고 싶었지만 장마 전선은 접었던 우산만 펼치게 했다. 바다는 덩치에 비해 간지럼에 약하다. 가볍게 파고드는 가는 빗줄기에도 육중한 몸을 뒤챈다. 비야 비야 개구쟁이 비야 간지럼을 그만 태우렴. 물먹은 선단이 두 놈을 떼 말리듯 하얀 이빨을 물고 내닫는다.
유람선 동영 1호, 그의 로링만큼이나 가벼운 흥분과 긴장을 만들었다. 미끄러지듯 두둥실. 안내원 양반의 걸쭉한 목소리 - 자 이제는 육지의 근심을 후 내뱉으이소. 근심 걱정을 털어버리는김니더. 그래 말 잘했다. 당신 말대로 한번 후 뱉어 보자. 후-. 그게 아니고 후우우우. 대마도까지 뱉아라. 어젯밤 마신 술이 조금씩 씻겨 나간다.
해금강(海金剛), 그는 이름 그대로 바다 속의 금강산이다. 안내원 양반, 한술 더 떠 환상의 섬이라고 외쳐 댄다.
그는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의 수업을 시작한다. 전설을 마구 만들어 낸다. 기암괴석도 의미를 부여했을 때 또 다른 존재가 된다. 그냥 밋밋하게 지나기보다는 그와 함께 사물을 그리고 상상을 만들 때 존재는 새로운 의미를 준다.
김춘수님도 그래서 ‘꽃’이란 이름을 불러 주었을까? 이들 바위들도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까? 저 우뚝 선 놈은 촛대 바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촛대보다는 그쪽을 닮았다고 저엇대(?) 바위라고 하능기라. 뭐라고요. 저엇대 바위. 걸쭉한 저 입, 시작부터 심상찮다. 괜찮다. 괜찮아 나도 아직 술이 깨지 않았으니. 용이 승천한 동굴 - 용들은 왜 승천만 하는가? 인간을 싫어하는 것인가? 두려워하는 것인가? 한결같이 우리와 멀어지려는 그들이 밉다.
십자로를 만난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생겨난 좁은 뱃길이다. 유람선이 지나가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배는 이제 십자로의 남쪽 끝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동쪽 길을 빠져나가려 한다. 무사히 빠져나갈까? 안내원은 그들의 묘기를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위기감을 조성한다. 난간에 기대지 말고 몸체의 손잡이를 꼭 잡으이소. 자 보이소. 배는 히프를 살랑살랑 흔들며 전진 후진을 계속하고 있심더. 아, 그러나 우짜꼬, 마음대로 되지 안심더. 제법 스릴이 있는 곡예다. 이러다가 바위에 부딪치면 어떡할려구. 저 용바위 비늘은 우리를 붙들어 줄 것인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용궁으로 가는 거지. 물 색깔이 이렇게 고운 것을 보니 이곳에서 용궁은 아주 가까운 것 같애. 아슬아슬하게 십자로를 벗어난다. 안내원 양반 또 소리를 높인다. 이럴 때는 박수를 치는 김니더. 그렇구나. 박수 박수.
바위에 기대선 노송 두 그루. 그 양반은 견우 직녀송이라 했다. 하나는 정상에 또 하나는 바위의 허리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있으면 전부 견우 직녀인가? 견우와 직녀 그들은 이별을 해학으로 만들어 버렸다. 인내의 한계를 극복한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순종을 강요했다. 정말 흙도 메마른 저 조악한 틈에서 어떻게 해풍을 이겨내며 오랜 세월 꿋꿋이 살아왔을까? 윤기도 없는 깡마른 잎새를 안고 있는 그들은 견우 직녀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유배된 지사의 넋으로 보인다.
신랑 바위와 새댁 바위. 두 사람 모두 별거한지 오래다. 신랑은 남쪽, 신부는 북쪽. 남남북녀. 그런데 부부간의 표정이 전혀 다르다. 신랑은 그저 좋아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새댁은 악을 쓴다. 청춘을 돌려 다오. 갈매기가 부지런히 두 사람 사이를 오고간다. 서방님의 답신이오. 뭐라고 썼느냐? 오늘도 그놈의 잘난 글 공부더냐? 허구헌날 글공부에 매달려도 벼슬 한 자리 얻지 못하니. 애고답답 돌대가리야. 하기야 타고 난 것이 돌대가리니. 갈매기 끼룩끼룩 배꼽을 잡는다. 돌대가리는 새댁이 돌대가리지. 바람난 네 서방, 이웃 처녀, 기방(妓房) 넘보느라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약수 동굴. 때아닌 물줄기가 머리 위를 퍼붓는다. 흰 머리카락도 검게 하고 회춘에 영험이 있단다. 입을 헤벌쭉 벌렸으나 난간의 뒤편까지는 물줄기가 닿지 않는다. 하뿔사. 회춘에 지장이 있겠다. 갑자기 아이들은 귀를 막아란다. 저기 보이죠. 10시 방향 갑돌이와 갑순이의 모습. 대낮에 저 무슨 해괴한 짓거리. 갑순이는 동생을 업고 나와서 갑돌이를 만난 게로군. 에끼 이눔들.
모든 바위의 올과 결, 그 틈새를 비집고 전설이 쌓인다. 바위뿐이 아니다. 이름 없는 꽃들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서편 바위 위에는 노오란 꽃잎을 물고 있는 야생초가 군락 한다. 얼른 보기는 비슷해도 그 종류가 300여종이 넘는다고 한다. 나리과에 속하는 난 종류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파도 소리에 귀대고 그리운 이의 발자국을 기다린다. 빗줄기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망부의 한, 그것이 그들의 꽃말이다.
이 때는 소주 한 잔이 제격이지. 권 선생 소주잔을 내민다. 전설에 취해 있다 보니 배는 서서히 복의 문을 지나서 외도(外島)로 향한다. 이마를 맞대고 있으면서도 해금강에 비해 외도(外島)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곳에는 전설이 없고 현실만 있다. 외도는 정말 외도(外道)를 한 곳이다.
원래 이곳은 다섯 가구 정도가 살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집 두 집 뿔뿔이 뭍으로 떠나 버린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폐허의 정적이 드리운 곳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이곳에 들른 이창호 씨의 눈에 비친 외도는 폐허로 내던져 둘 땅이 아니었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에 적합한 아열대 식물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새로운 풍광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로부터 20여 성상. 그는 초인적 집념과 인내로 오늘의 외도 농원을 만들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잡초와 칡넝쿨 따위가 엉켜 있던 황폐한 섬이 아니다. 버리고 싶은 땅이 아니고 머물고 싶은 지상의 낙원이 되었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열대 식물인 야자수가 긴 그늘을 드리우며 바다의 여신상들이 전나(全裸)의 모습으로 길손을 유혹하는 곡선들의 향연이 있으며 봉우리에 우뚝 선 조망 탑이 아름다운 곳이다. 어느 한 곳도 정성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어느 한 곳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 흠이라 할 만큼 짜임새 있는 조경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지척의 거리에서 너무나 대조가 되는 두 공간을 목격했다. 하나는 자연의 마음을 전설 속에 환청으로 느껴 보는 곳이었고, 하나는 인간 승리의 현장을 교훈으로 새기는 곳이었다.
이 두 곳은 저마다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우열을 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해금강이 자연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라면 외도는 사람의 손길이 절정을 이룬 곳이다. 여행의 재미 중에는 속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가당치도 않은 전설을 들으며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푸근했던가? 그런데 외도에서는 또 속지 않는 재미 때문에 희열과 쾌재를 외치게 된다. 인간의 집념에 경외와 공경의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자연이라고 모두 인간보다 항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외도는 자연의 미완성품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 현장이다. 이곳은 견우 직녀가 이별을 마감하고 안식을 취한다. 야생화가 그리운 이를 만나 전망대에서 회포를 나누고 있다. 투박한 갑순이의 비련 대신 비너스의 교교한 웃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에 대한 집념이지 완성 자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정성을 다 바쳤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외도(外道)가 정도(正道)는 될 수 없듯, 사람에 의해 생명을 얻은 그 풍광은 이국적일 뿐이지 이국은 아니다. 비록 투박한 비경이지만 사람에 의해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 해금강의 의연함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숙명적 고뇌다. 그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완성품인 듯 미완품, 미완품인듯 완성품. 우리가 풀고 도전해야 할 숙제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달빛 속의 메아리 (0) | 2022.10.13 |
|---|---|
| 혼전 순결은 미덕이다. (0) | 2022.10.13 |
| 교장의 딸 (0) | 2022.10.13 |
| 모란꽃 (1) | 2022.10.13 |
| 이기는 것과 지는 것 (0) | 202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