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것과 지는 것
나무늘보
어떤 젊은 아가씨가 택배 회사의 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 급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온다고 연락은 왔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 지금 어디예요. 빨리 받아야 합니다.” 이 때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씀, “아가씨, 나는 기사가 아니고 영업소장입니다. 호칭을 정확히 부르세요.” 목소리가 나이 드신 분 같기에 ‘할아버지’라고 하려 하다가 그래도 예우를 하느라고 ‘기사님’이라고 했는데 그것도 잘못되었다고 된통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업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 “아가씨, 너무 잡치지 말고 예쁘게 기다리세요.” 이었다. 참 어이가 없었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건은 그날 내내 오지 않고 이튿날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와 있더라는 것이다.
신속 배달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택배회사 영업소장님 치고는 대단한 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 ‘빨리 빨리’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다. ‘빨리 빨리’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너무 좌우를 살피지 않고 달리는 감도 없지 않다.
소설 ‘파이 이야기’에 ‘나무늘보’란 동물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늘보는 생활 습관 자체가 ‘게으름 피우기’로 일관되어 있다. 하루 평균 스무 시간씩 자거나 휴식을 취한다. 이 동물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시속 400미터 정도, 땅에서는 시속 250미터를 나무에 기어오를 뿐이다. 이것도 아주 다급할 때의 속도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갑갑할 정도로 느린 덕분에 오히려 이들이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나무늘보의 털에는 건기 때는 갈색 식물이, 우기에는 초록색 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주변의 이끼나 나뭇잎과 뒤섞여 둥지나 나무의 일부로 보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다는 것이다.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초식동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언제나 맘씨 좋은 미소가 걸려있다.”고 한다. 나무늘보는 물구나무를 서서 명상하는 요가 수행자나 기도에 몰두한 은자,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닿을 수 없는 상상력으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현자의 삶을 살고 있다.
나무의 삶
나무는 추울수록 옷을 벗어버린다. 춥다고 옷을 껴입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추울 테면 한 번 추워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겨울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너무 민감한 것 같다.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슬퍼 죽겠다. 미워 죽겠다. 심지어 좋은 것까지 좋아 죽겠다고 하는 것이다.
사는 과정이 어찌 좋은 일만 있을 것인가? 어렵고 슬프고 미운 마음이 수없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또 살아가노라면 좋은 일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푸쉬킨의 ‘삶’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서러워하거나 노하지 마라. 슬픔의 날엔 마음 가다듬고 자신을 믿어라. 이제 곧 기쁨의 날이 오리라.”
어느 외국분도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지? 작년에는? 그것 봐라. 기억조차 못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거야. 잊어버려라.”
오늘 아침, 언덕에서 당당하게 겨울을 맞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배우자.
부드러움과 단단함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다 스승은 자신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주며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제자는 혀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은 이는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는 다 빠져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하자 이는 다 빠지고 혀만 남은 이유를 알겠느냐고 했다. 제자는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다 빠지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여라.”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스님의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란 글에 나온 이야기다.
세상은 강한 것이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런 것이 아니다. 겉으로 나타난 것은 강한 것이 이기는 것 같은데 실상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논어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깨지기 쉽다. 그러나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다. 물은 모든 것에 대해서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
힘은 한계가 있다. 완력으로 해결을 하려하면 상대방도 힘으로 맞서기 때문에 결국은 충돌을 하고 서로 간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진정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상대방도 종내는 따뜻한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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