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딸
행전 박영환
한 번은 산에 오르다가 산기슭 어느 아파트 벤치에서 잠깐 쉬게 되었는데 마침 그곳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조금 뒤 젊은 부인 한 사람이 할머니 곁에 와서
“산에 갔다 올 때까지 여기 있다가 같이 들어가요”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산에 올라갔다. 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던 할머니,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풀어놓았다.
“저게 딸인데 요즈음 생각하니 저것이라도 없었으면 우째 됐을꼬 싶습니더.”
했다.
“며느리는 없나요?”
“없긴 와 없어요. 세 명이나 있심더. 그런데 내가 딸집에 온지 벌써 석 달이나 되어도 하나도 시이미가 어떻게 됐는지 찾는 것이 없심더.”
“용돈도 보내지 않습니까?”
“용돈이 다 뭡니꺼”
며느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작심한 듯 속에 들은 말을 그냥 다 뱉었다.
“큰 며느리는 교장 딸이라고 해서, 교육자 집안이니 교육은 잘 되었거니 해서 들였는데 폭삭 속았어요. 교장 딸 참 좋지. 쯔쯔.”
혀를 찼다. ‘교장의 딸’, 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물론 할머니는 내가 교장이라는 것을 알 리 없지만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곳에 오래 머물다가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도 딸이 두 명이나 있다. 이 아이들은 과연 시댁에 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자신이 없다. 사돈댁에서도 교장 딸 운운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즉시 딸에게 전화를 걸어 교장 아버지 욕 먹이지 않도록 처신 하라고 부탁했더니 잘 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기는 했지만 영 미덥지 못하다.
얼마 뒤, 우리 학교 교직원 회식 자리에서 술기운이 약간 돌자 용기를 내어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여 선생님들께 한 마디 붙였다.
“선생님들, 교장 딸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대가 큰데, 하물며 선생님들에 대한 기대는 오죽하겠습니까? 제발 아파트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데 살지 말고 시청도 바로 가고, 시냇물에 머리도 감고 시금치도 자주 먹도록 합시다.”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니 우리 선생님들은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우리 며늘아기도 학교 선생님이다. 요즈음 신세대들과는 달리 집에도 자주 찾아오고 안부도 자주 묻는다.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한자 어버이 '親'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이 잘 집약되어 있다. ‘親’을 풀어보면 ‘立+木+見’이 된다. 즉 ‘나무 위에 서서 본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효도가 무엇인가? 기다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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