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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5년 만에 다시 쓰는 답장

 25년 만에 다시 쓰는 답장

 

 

 

행전 박영환

 

  우연하게 책장을 정리하다가 25년 전 Y 여중 제자들로부터 받은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 색깔은 바래었지만 아직도 훈훈한 정감은 그대로 남아 있는 글들이었다. 나는 그 편지들을 다시 한 번 읽는 동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내가 이 학교에 부임을 한 것은 1980년이다. 이듬해 갑자기 고등학교에 발령이 나는 통에 꼭 1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 근무한 학교 이상으로 잊지 못하고 추억으로 떠올리고 있다.

  나는 이 학교에 오기 전 남학교에 근무했었다. 여학교로 오면서 학생들이 잘 따르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그것은 정말 기우였고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따르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그 당시 나는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 때 그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날리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잔잔한 미소 속에 행복감에 젖는다.

  아무튼 25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그 따뜻한 마음들은 세월에 씻겨 간 것이 아니고 세월만큼이나 더 쌓여 가슴에서 살아 삶을 훈훈하게 한다. 그때의 그 얼굴들이 편지글의 행간마다 일어난다. 교복자락을 찰랑이며 애교도 떨고 때로는 뾰로통한 입술에 강짜를 부리던 아이들. 그 때 열여섯 살의 꿈 많은 소녀들은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되었겠다. 세월 참 빠르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모두 잘 살고 있을꺼야.

  나는 그 정성스런 편지들을 보면서 문득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당시도 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 못지 않게 또 다르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한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쓴다.

 

 편지 1

 선생님

  100m 달리기, 15초 5, 이만하면 얼마나 빠른지 잘 아시겠죠? 저보다 빠른 아이 몇이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로 돌리고 볼 때 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선 저희들과 거리감이 없어서 참 좋다고들 합니다. 선생님께선 행동하시기가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여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시니까요. 선생님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참새들은 선생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출신 학교, 주소, 전화번호, 생일, 나이까지도……. 생일은 아무도 몰랐는데 제가 다 알아다 주었습니다. 어쩜 선생님의 몸무게, 시력까지도 아이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황홀하시죠? 그러나 선생님께서 행동에 조금이라도 허점이 생기시면 요 참새들은 입을 다물 줄을 모릅니다. 그저 조잘조잘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언젠가 수정이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오셨을 때 선생님께선 우리 학교에서 가장 참한 학생 어머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 일로 우리 반은 물론이고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여아일언(女兒一言) 풍선껌이니까요. 그 풍선껌을 한번 크게 불어 터뜨리기만 하면 모든 것은 끝장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선생님, 조심하십시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안경 한번 벗어 보십시오. 아이들은 선생님을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들 합니다. 그건 그 안경 때문이죠. 만약 선생님께서 안경을 벗으셨다하면 우리 학교 기둥뿌리는 적어도 영도대교 밑에나 가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베일에 가려진 사나이’ 무슨 영화 제목과도 같지 않으신지요?

  국어선생님이셔서 편지 쓰기가 무척 부자유스럽습니다. 혹 틀린 글자가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또 내용에 기분 나쁘다고 생각되신 내용이 있었다면 이것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선생님, 전 너무나 직선적인 게 탈입니다. 그럼 선생님, 개학일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80. 8. 16. 허 선 미 올림

 

 답신 1

  

선미야

  안녕, 지금도 그렇게 빠르니? 아마 빠를 거야. 그 재치, 그 활달함이 어디 가겠니? 매사에 긍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삶에 있어서는 큰 자산이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조용히 숨어서 얌전하게 지내지는 않을꺼야. 모르긴 해도 항상 주변에 관심을 끌며 직장이나 동리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을꺼야. 사람 좋은 이웃이나 동료로 살며 꼬인 실타래를 풀고 막힌 물꼬를 열심히 터놓는 역할을 자천타천으로 맡고 있을 거야. 

  학교에 다닐 때도 선미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니? 이따금 깜짝 놀랄 때가 있었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노출되지 않을 나의 신상에 관한 일들을 ‘여아일언 풍선껌’으로 만들어 터뜨리는 것을 보고 과연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단다. 그 풍선이 터질 때마다 네 손목을 놓아주지 않고 다그쳤지만 그 얄미운 웃음(?)만 눈가에 담고 알려주지 않더구나. ‘풍선껌 여사’ 그야말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궁금하구나 대답 한 번 해보시지.

  정말 큰 비밀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만일 스캔들이라도 있었다면 선미의 ‘풍선껌’에 걸려 ‘사람을 찾습니다.’ 하고 큰 곤욕을 치를 번도 했겠구나. 나는 그 당시 Y여중의 친구들이 나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잘 따라 주었기에 학교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너무나 분에 넘치는 관심을 가져 주었기에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못생긴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들도 ‘꺼벙이’란 별명을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내가 유별나게 해박한 지식이 있어 특별한 수업을 한 것도 아니다. 또 싹싹하여 정이 톡톡 듣는 그런 사람도 아니지 않는가?

  혹시 총각선생으로 착각한 것인가? 그 당시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나이보다는 좀 젊게 보인다는 말은 듣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선미의 레이더망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과목 덕택? 그건 조금 - 여학생들이 국어라는 과목을 좀 좋아하기는 하지. 또, 내가 원체 ‘촌놈’이니 꺼벙한 모양 그대로 좀 순수한 모습은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영원한 촌놈으로 살고 싶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란다. 나는 Y여중 이후에 부산여고에 근무할 때는 ‘바람돌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그것 역시 만화의 주인공인데 ‘하루에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는 순수하고 친근한 인물’이란 데 안도를 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안경을 한 번 벗어보라고. 내가 안경을 벗으면 학교 기둥뿌리를 영도대교 밑에나 가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선미야 네가 그렇게 권하던 안경을 이제는 진짜 많이 벗고 있다. 원래 근시안이던 사람은 나이가 들면 안경을 벗어야만 글자가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

  나의 수필 ‘안경을 왼손에 들고’에 나는 안경을 벗는 변을 밝혔으며 그 뒤에 수필집을 내면서 아예 책 제목까지도 ‘안경을 왼손에 들고’라고 했구나. 이제 생각해보니 불과 15년 정도가 지나면 벗지 말라고 해도 벗을 안경을 그렇게 단단히 끼고 있었구나. 그리고 또 한가지, 그렇게 안경을 벗을 때는 학교의 기둥뿌리가 영도 대교 밑으로 가기는커녕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침 그 때가 영도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때니 대신동보다야 영도대교가 더 가까운데도 말이다.

  지금 나의 모습, 아이들의 눈엔 그저 잔소리나 하는 나이든 사람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은 아직 젊은데. 그런데 실제 수업을 해보니 아무래도 극복하기 힘든 공간 하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겠더라.

  그건 그렇고 선미야, 학창 시절의 그 예지에 넘치는 기지와 재치로, 항상 필요한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이것 봐, 이게 또 잔소리지. 안녕

2004. 7. 19.

 

  편지 2

 

  선생님!

  선생님께 선물을 하게 된 것을 너무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 보내드리는 선물은 매우 보잘것없는 것들이지만 나름대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와 동기가 붙어 있답니다.

  첫째, 멋지고 멋진 넥타이. 이것은 선생님 의생활 향상을 위해 심사숙고 끝에 마련한 것입니다.  선생님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귀엽게 매어주셔요.

  둘째, 양말. 여름철 무좀을 방지하는 특수한 제조과정을 거친 것이오니 평소에 자주 애용해 주시고 사랑해주셔요.

  셋째, 노트.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문학을 무척이나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전 때때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했어요.(약간 좀 못 짓긴 하지만…….) 그래서 여기 이 노트도 그런 의미에서 드리는 것이오니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시나 글월이 계시면 빠짐없이 적어주셔요.

  끝으로 부탁드릴 말은 넥타이는 꼭 매고 오시고, 양말은 꼭 신고오시고, 노트는 꼭 적어서 후일 저에게 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안 일 주 올림.

 

 답신 2

 

 일주야

  한 번은 신문지상에 네가 발표한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금방 그 ‘일주’가 바로 이 ‘일주’라고 단정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거의 나의 직감에 의존한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단정할 수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 이후 그것이 맞다는 것을 네 동창생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일주 시인의 글 - 정감이 잘 녹아 있어 매우 감동적이더라.

  지금도 선물을 전해주던 홍조 띤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착하고 예쁘고 글씨가 명필이던 일주. 악필인 나는 일주의 글씨를 보면서 주눅이 들곤 했지. 그 글씨는 일반 여학생들의 예쁜 글씨체가 아니고 만년필로 일필휘지 한 힘찬 글씨였지.

  아무튼 그 선물을 받고 그 넥타이와 양말을 많이 애용하던 기억이 난다. 고마웠다. 그리고 전해준 노트에도 네가 부탁한 대로 작품들을 적었지. 표지에 ‘지나가는 언어에’라고 제목을 붙였다. 점차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일주의 노트는 ‘지나가는 언어에’ 1번이 되었다. 요즈음도 이따금 그 문학 노트를 보면서 일주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단다. 사실은 그 노트를 일주에게 줄 생각도 했지만 그 뒤, 그런 기회는 없었구나.  

  그 당시 여학생들은 선생님께 선물들을 많이 했지. 일주처럼 넥타이나 양말, 장갑을 건네주는 사람도 있었고 손수건에 정성껏 수를 놓아 살며시 건네주는 학생도 있었지. 또 도장을 새겨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과자 및 음료수는 필수적이고. 그것은 ‘공세’라고 표현할 정도로 매시간 수북히 쌓였지. 그 음료수들을 시간 중에 먹을 수는 없고 교무실로 가지고 오게되는 데, 때로는 번거로워 교탁 위에 그냥 두고 오기라도 하는 날은 그것을 준비한 아이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단단히 삐치기도 했었지.

  또 교무실 책상 위의 꽃도 경쟁의 대상이었지. 그 꽃이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 바뀌곤 했었지. 한 학생이 가져다 놓기가 바쁘게 다른 학생이 다음 시간에 와서 다른 꽃으로 바꿔버리고. 앞의 학생 꽃을 쓰레기통에 구기박질러 넣었다고 서로 다투는 통해 정말로 난감할 때도 있었단다. 일주도 그 때 꽃을 많이 가져온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교탁 위에 음료수 등을 두는 일도 거의 없고 선생님 책상 위에 꽃을 가져다 두는 일도 없다. 총각 선생님들에게도 이런 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만큼 인정이 마르고 세태가 변한 것일까?

  그 당시 교육여건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의 순수한 열정만은 지금보다 더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많은 관심 속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던 아이들. 여학교의 ‘반짝이’ 부대 - 좋아하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면 눈이 반짝반짝해진다고 ‘반짝이’이라고 부르곤 했지. 이 ‘반짝이’들은 내가 농담이라도 할라치면 교실이 떠나갈 듯 신나게 웃어주며 수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당시 수업이 좀 많았던 것 같다. 정규 24시간에 보충이니 방송 수업이니 하는 것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 30시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이 그렇게 활기 넘치는 반응을 보여주니 여간 수업이 많아도 이내 피로가 풀어지고 또 다시 열심히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을 풍성하게 할 주옥같은 작품 많이 남기기 바란다. 안녕. 

2004. 7. 19.

 

 편지 3

 

선생님께.

  선생님, 화창한 가을 하늘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너무 높아 잡을 수 없기에 그럴까요? 아무도 잡을 수 없는 이상의 세계라나요.

  모든 것들이 하나둘 떠나버리는 가을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을 사모한다는 자체에 공감이 가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저에겐 처음으로 참사랑을 느껴본 것이기에 더욱더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좀 무뚝뚝해야 멋이 있는데 선생님은 너무 잘 웃으신다고 생각 안 하시나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격언에 감화를 받으셨나보죠?) 사람이 많이 웃으면 성공을 못하는 법이래요. 그러나 선생님은 선생님대로의 개성적이고 순진한 소년(?)같은 웃음이 우리로 하여금 선생님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다정스러우신 선생님을 보면 어쩌면 꼭 누구(?)같다는 생각에 선생님에게 기대고 싶어진답니다.

  비범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하게 생기신 선생님을 모든 학생들이 말은 안 하지만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모두 선생님의 다정스러우심, 순진성(?)같은 그 무엇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총총히 수놓은 가을밤 하늘아래

외로운 한 소녀가 있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소녀는

오늘도 그리운 님을 찾아

저 맑은 동공 위에 청량한 가을하늘이 자리잡아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영롱한 진주떨기에 유리막대같이 가녀린 희망과 기대를 걸고

오늘도 그리운 님을 찾아

저 푸른 창공을 헤매고 있습니다.

 

소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보고픈 님을 불러 봅니다.

그러나! 다시는 볼 수 없는 님이었기에

소녀는 울어야만 했습니다.

인생의 먼먼 뒤안길에서

소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다정스러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쌓여 가는 낙엽 속에 파묻어 버리겠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파헤칠 수 있게 그렇게 깊이 묻진 않겠습니다. 무한한 적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또다시 하루의 종식을 고하는 이 밤! 밤의 고요가 어머니 손길같이 휩싸 안은 채 말없이 깊어만 갑니다. 한 권의 책을 펴들고 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이 외로운 소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 별들이 속삭임이 마냥 부럽습니다.

  선생님과 댁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1980년 10월 22일

선생님을 사모하는 제자 올림.

 

 답신 3

 

 소녀야.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달리 부를 이름도 없구나. 그런데 연서(戀書)의 형태를 취했으니 나도 ‘소녀’라고 한 번 불러본다. ‘소녀’라고 부르니 괜히 가슴이 설레는구나. 갑자기 내가 소년이 된 듯. 언제 들어도 사모한다는 말은 싫지 않구나.

  열여섯 살 앳된 소녀의 첫사랑을 받았다니 나는 너무나 행복하구나. 누구였을까? 많이 궁금하다. 첫사랑 연정을 표현한 시 구절은 가슴을 울린다.

  소녀야

  그 때는 남학생과 여학생을 갈라놓은 담이 너무 높았지. 지금은 남녀 공학이 많고 남녀학생들끼리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모임도 많지만 그 때만 해도 어디 쉽게 만날 수 있던가? 그래서 닫힌 공간 속에 사는 사춘기 여학생들 중 많은 여학생들이 선생님을 첫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지. 사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인지 모르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 들켜도 흉이 되지 않고. 이미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상처도 덜 받고. 소녀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녀야 이왕 사랑하려면 잘 생긴 총각선생을 사랑할 일이지. 나같이 못생긴 유부남 선생을 사랑하다니. 잘못 짚은 것 같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 엄마로부터도 이런 편지를 못 받았는데. 사실 이런 편지 한 번 받고 싶었는데 소원을 풀은 셈이다. 

  소녀야,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 속에 파묻혀 나를 아주 깊이 묻고 잘 살고 있지. 혹시 지금 소녀의 딸이 어느 선생님을 좋아한다면 소녀는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어미도 그런 때가 있었노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소녀야.

  나의 웃음이 순진한 소년 같은 웃음이라고 했니? 어릴 때 우리 할머니께서도 늘 웃음이 고운 아이라고 말씀하시며 다독거려 주셨지. 나는 그 말에 큰 자신감과 용기를 얻곤 했단다. 소녀도 우리 할머니의 마음을 닮은 것 같다.

  그러나 소녀야.

  이것 하나는 약속할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순진한 웃음은 잃지 않겠다고. 비록 바보의 웃음이라도 웃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안녕.

2004. 7. 20. 

 

 

  편지 4.

 

 선생님께

  선생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저는 무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오늘 ‘상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새삼 또 인식했습니다. 우체국에 가서 항공 우편을 보내고 오는데 초등학교 동창생 가족이 수영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금 부럽더군요.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렇게 창창하던 빛이 사라지고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흐려지기 시작한거죠. 고소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선생님 아무래도 전 순악질 여사의 기질이 좀 있는가 봅니다.) 깨소금과 참기름의 향기가 공기를 뒤덮었습니다. 눈앞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꼭 안개 같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안개, 저의 상상은 새가 되어 새끼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타임 머신을 탔습니다.(선생님 방자하다면 방학 마치고 꾸중 내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제일 처음 선생님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얼음이 꽁꽁 얼은 겨울,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추운 겨울, 선생님께서 썰매를 타다 옷을 다 버려 버립니다. 집으로 들어가선 어머님께 꾸중을 듣고 저녁밥은 못 얻어먹어 나중에 참다못해 부엌으로 갑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밥을 찾아먹은 후에 물을 먹으려다 물그릇을 깨어버립니다. 깜짝 놀라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아시고 배를 잡고 웃으십니다.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골목대장 등등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아무래도 이런 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아직 철이 덜 들었나보죠.

  그런데 이때까지의 그 보얗던 안개가 사라집니다. 동시에 그 고소한 내음새도 사라집니다. 늘 앉아서 상상하던 곳, 그 마룻바닥에 앉아서 혼자서 씩씩 웃고 바보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났습니다. 설사 이것이 진짜가 아니더래도 말입니다.

  선생님의 꾸중을 무릅쓰고 올리는 글, 그러나 저에게는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 신나는 일이 있으면 또 글 올리겠습니다.

1980. 8. 6.    김 아 정 올림

 

  답신 4

 

  아정이

  편지 잘 읽었다. 우체국 앞 빨간 우체통에 아정의 얼굴이 오버랩되는구나. 빨간 우체통만큼이나 얼굴이 잘 빨개지던 아정이.

  ‘우체국’ 하면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는 여류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써서 약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근래 이 지역문인들이 그 ‘행복’의 무대가 되었던 통영 중앙동 우체국을 ‘청마 우체국’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요즈음은 마음의 징검다리가 되었던 그 정겨운 우체통들이 하나 둘 줄고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정이가 보냈던 그 우체통은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 우체통을 ‘아정이 우체통’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아정이의 타임머신은 재미 있었다.

  아정이가 상상한 대로 나는 겨울이면 무척 썰매를 즐겼지. 그런데 그 때 설매는 이른바 ‘앉은뱅이 썰매’였지. 스포츠 가게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 만들어서 탔다.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깔판 밑에 굵은 철사를 박은 것. 못을 박은 조그마한 지팡이 두 개를 의지해서 개울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신나게 놀다보면 물론 옷은 엉망이 되고. 그 때 우리는 솜을 넣은 핫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솜에 물이 들어가면 잘 마르지가 않지. 그래서 그것을 말리느라고 논두렁에 불을 지펴 다리를 번쩍 들고 말리곤 했단다. 그러다가 솜옷에 불이 붙기도 했지. 솜옷은 열의 전도가 늦기 때문에 뜨겁다고 느낄 때는 불이 한참 붙은 상태이지. 나도 그러다가 화상을 입고 어른들께 된통 꾸중을 들은 일이 한두 번 아니었다. 고개를 푹 처박고 있는 개구쟁이의 풍경, 상상이 되지 않니.

  우리가 어릴 때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전쟁놀이도 많이 했단다. 어깨에 계급장을 만들어 달고 화약 총을 연발 따닥거렸지. 그러다가 크게 다친 일도 있단다. 또 여학생들 고무줄 끊는데도 선수였지. 선생님께 들켜서 교무실 앞에 몇 번이고 꿇어앉아 벌을 서곤 했지.

  추억은 늘 아름답고 그리운 것. 아정이의 우체통에도 편지 한 통 다시 담겼으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아정이는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까? 지난날 상상했던 것이 얼마나 현실에 접근했을까. 상상은 내일이 있어 즐겁고 추억은 어제가 있어 그립다.     

2004. 7. 20.      

 

 편지 5

 

선생님께.

  싸늘한 날씨에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날씨 덕택에 저의 손해란 이만저만이 아니어요. 바다도 못 갔지요, 감기도 걸렸지요, 용돈도 못 받았지요, 그밖에……. 정말 잊을 수 없는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 방학이 중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깨달았습니다. 지극히 당연하지요. 그래서 좀 더 알차고 멋지게 방학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또 결실의 계절, 다가오는 가을에 통통하고 알찬 열매를 거두어들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본 3학년 1학기는 부끄러울 정도로 나태했습니다. 나무에 뿌리가 있어야 가지와 잎, 그리고 열매가 있듯이 공부도 노력 없이 아무것도 바랄 수 없겠지요.

  선생님, 이제껏 저는 결심만 하면 꼭 이루는 성격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그러한데 공부하는 것도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어요! 노력하겠어요. 정말 노력하겠어요. 선생님께서 저를 지켜봐 주세요. 열심히 노력해서 이번 가을에 제가 어떤 열매를 거두어들이는지를.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지금 이루어셨나요? 저는 커서 세계일주하는 것과 예술가로서 조용히 혼자서 독신으로 살고 싶은 것이어요. 정말 결혼을 하지 않고 말입니다. 저의 이 꿈은 소박한가요? 아니면 화려한가요? 또 아름다운가요?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요? 참 저에게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는 것! 정말 손꼽아 기다려요. 선생님, 이쯤에서 펜을 놓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1980년 8월 7일    오미영 올림

 

 답신 5

 

 미영아

  집념과 의지가 강하던 미영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예술가가 꿈이라고 했지. 그런데 혹시 그 때 이야기하던 것처럼 독신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즈음은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옛날에는 결혼을 필수로 생각했는데 요즈음은 거의 선택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임계성 님의 글 ‘혼자 잘 살면 결혼해도 잘 산다.’란 글 속에 이런 내용이 있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독신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면서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데 있다. 인생에서는 무언가를 얻는 대신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의지에 달렸고, 그 결과는 자신만이 책임질 뿐이다. 누구와 손 붙잡고 태어나고, 죽는 순간에도 같이 동행하는 삶이 없다는 걸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소크라테스와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지..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결혼을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하든 않든 간에, 당신은 똑같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 

 

  나는 좀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두 후회한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마침 동의를 할만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에서 모리 교수가 그의 제자에게 들려준 ‘결혼관’이다. 

  “나는 살면서 결혼에 대해 많이 배웠지. 그것은 시험 보는 것과 같아. 자기가 누구인지. 상대방은 누구인지. 둘이 어떻게 맞춰갈 것인지 탐색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알아야 될 규칙 같은 게 있나요.?”

  모리 선생님은 미소지었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네, 미치,”

  “저도 알아요.”

  “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그렇군요. ”

  “그런데 미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것은 결혼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라네. 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결혼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엄청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는 기도문처럼 믿는 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혼 이야기를 맺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아마 미영이는 결혼을 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안녕

2004. 7. 22.

 

 편지 6

  

선생님께.

  선생님께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의 취미라고나 할까 아니면 심심할 때의 눈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저는 별을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별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답니다.

  참! 선생님께 전하는 안부가 늦어졌습니다. 물론 안녕하시겠죠?

  선생님께 꼭 한가지 알려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께서는 부담감을 갖지 마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저희 학교로 전근 오신 후부터 이상하게도 아버지 생각이 많이……. 왠지 모르게 아버지처럼 친근감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저의 행동에서 선생님께 귀찮게 굴지나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부탁하고픈 게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마음이 허전한 것 같아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어떤 책이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수준을 낮게 보시지 마세요. 웬만한 책은 다 읽어 버렸으니까요. 저의 부탁은 좋은 책을 한 권 권해주시면 합니다. 친구들도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선생님 아쉬움이 손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고 선생님의 좋은 지혜 저희들에게 골고루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1980. 8. 20.    미숙 올림

 

 답신 6

 

  미숙이

  별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나 역시 별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제 저녁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니 음악과 교수인 어느 친구가 술을 한 잔 하고 난 뒤 갑자기 별을 화제에 올리더구나. 그가 간혹 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그만큼 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무튼 어제 저녁 동창회는 그 친구의 별에 대한 특강 시간이었다. 그는 말미에 박승철의 ‘밤하늘 여행’이란 글도 들려주었다.

 

  차가운 밤 공기가 사람들을 방안에 가둬놓고 있지만, 1월의 밤하늘은 한해의 시작을 축하하듯 초저녁부터 투명한 별빛을 쏟아내고 있다. 밤이 깊어 가면 사냥꾼 오리온과 충실한 두 마리의 사냥개 큰 개와 작은 개자리가 하늘을 차지하고 베텔규스, 시리우스, 프로키온이 그려내는 ‘겨울의 대삼각형’이 남중하면 노인성 카노푸스도 남쪽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별들의 축제는 절정에 다다른다.

 

  미숙이

  나를 아버지처럼 느꼈다고 했니? 고맙다. 그러나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리를 메울 수 있었겠니? 사실 미숙이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구나. 참 어릴 때는 아버지의 자리가 매우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만들 때, 그 자리가 너무나 아쉬워 괴로워했을 미숙이를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이제는 미숙이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전해주렴.

  책을 하나 소개해달라고 했니? 근래에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추천한다. 어쩌면 미숙이의 어린 시절과 너무나 닮은 소설이기도 한데.

  나, 사쿠라이 미카게의 부모는 젊은 나이에 나란히 죽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길러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아버지가 죽었다. 그 후 내내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며칠 전 할머니가 죽었다. 깜짝 놀랐다. 확실하게 존재하였던 가족이란 것이, 세월을 두고 한 명 두 명 줄어들어, 지금은 나 혼자라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태어나고 자란 방에 나 혼자 있다니, 놀랍다. 무슨 SF 같다. 우주의 어둠이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한 사흘은 멍하니 지냈다. 나른한 잠의 꼬리에, 조용한 부엌에 요를 깔았다. 라이너스처럼 담요를 둘둘 말고 잠든다. 위-잉, 냉장고 소리가 내 고독한 사고를 지켜주었다. 그곳에서는, 그럭저럭 평온하게 긴 밤이 가고, 아침이 와주었다. 다만 별 아래서 잠들고 싶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작품인 ‘키친’은 그녀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주체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문제 삼고있는 기본적인 테마인 <상처깁기>를 비롯하여 유이치의 엄마이며 동시에 아버지인 에리코가 상징하는 양성 구유적인 요소 등, 모두가 바나나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집 ‘키친’을 읽는 재미는 행복한 환상처럼 우리들의 상처를 소리 없이 감싸안는 따스한 이들과의 만남, 동시에 요시모토 바나나 문학의 원형과의 만남에 있다고 할 것이다.

  혹시 미숙이에게는 이미 아문 상처를 다시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지만 아팠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이제 완전히 상처깁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소설 속의 주인공도 별 아래 잠들고 싶어했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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