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속의 메아리
행전 박영환
여행은 다닐 때보다 다녀와서 회상을 하는 것이 더 재미 있다고 한다. 지난 연초에 계관(鷄冠)의 형세로 유명한 계룡산(鷄龍山)을 다녀왔다. 먼저 도착한 곳이 동학사이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겨울산은 앙상한 가지에 밋밋하고 건조하여 볼 것이 없으니 입장료를 깎자고 하였더니 매표소 아가씨 왈 겨울산은 전혀 가리지 않고 전나(全裸)로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돈을 더 얹어 주어야 된다고 했다. 순발력 있는 아가씨의 재치에 첫걸음부터 공연히 훈훈하고 기분이 좋았다.
계룡산을 등정하는 데는 여러 코스가 있다. 사실은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보다는 갑사에서 동학사 쪽으로 오르는 길을 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다. 갑사 쪽에서 산을 타면 경사가 완만하고 여름일 경우는 해의 반대 방향이 되어 시원하게 올라 갈 수 있으며 또한 유성에서 묵게 될 경우도 이 쪽을 잡는 것이 교통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행을 설득하여 갑사 쪽으로 정한 것은 국어 교과서 이상보 님의 '갑사로 가는 길'이란 수필 때문이다. 이를 수업하는데는 이 길을 한 번 따라가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는 소박한 직업의식(?)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계절도 교과서처럼 시간적 배경은 분명히 겨울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눈발은커녕 오히려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고일 정도의 늦봄 같은 일기였다. 일행들은 날씨가 좋다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나는 적이 불만이었다. 교과서 수필의 배경처럼 설한(雪寒)의 계룡산을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학사로 들어서며 해우실(解憂室) 간판이 걸린 건물을 발견했다. 해우실이 무엇일까? 법당이름이겠지 하고 일단 생각했다. 사실 이 해우실은 이름뿐만 아니라 건물의 생김새도 예스런 기와로 단청을 입힌, 여느 법당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그게 화장실이란다. 분명하다고 했지만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머뭇거리며 재 확인을 한 것은 너무나 의외의 이름 앞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변소, 뒷간, 칙간, 통시 등의 이름은 사용되지만, 해우실은 처음이다. 그러나 듣고 보니 그 착상이 기발한 것 같다. 생리적 현상 때문에 곤욕을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근심을 풀어 주는 곳'이란 이 이름에 쉽게 공감할 것 같다. 이제 화장실이란 단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이 화장실이란 단어야 말로 따지고 보면 너무 화장을 많이 한 단어이다. 거기에 비하면 해우실은 진솔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오히려 품위가 있다.
등정의 관문인 108 계단을 오르자 바로 숨이 턱을 가로 막는 험준한 곡각 비탈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오를 것 같은 지척의 거리인데도 워낙 경사가 심하니 마음과는 달리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발길에 채인 돌부리가 마왕(魔王)에 끌려 가는 지 계곡은 연신 비명으로 가득했다. 영산(靈山)으로 자부하는 계룡산은 그의 영역에 속인의 발자국을 들여 놓기가 싫은 듯 여기 저기서 발목을 잡았다. 인간은 영리한 듯 하지만 한없이 미련스러워 자기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만용을 부리다가 산자락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이 말도 인간이 만들어 낸 자기 도취이다.
남매탑(男妹塔)은 얼마나 더 가야 되는가? 지팡이를 앞세워 삭정이와 바위를 두드리며 굽돌아 오르는 길. 내의까지도 벗어 등에 걸치고 한 시간 이상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겨우 남매탑을 만날 수 있었다.
탑은 정상 바로 아래 있었다. 명성에 비해 주변이 너무 허술했다. 오라버니와 여동생을 상징하는 탑신은 풍우에 시달려 마모되고 푸른 이끼에 휘감겨 궁상을 느낄 정도로 찌들어 있었다. 무상한 세월 속에 형체까지 온전하게 바라는 것은 과욕일진저-. 사연이나마 날로 새롭게 가슴을 두드리며 도탑고 따뜻하게 흐르고 있으니 위안이 된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들이 보인다.
전설은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승(唐僧)인 상원대사(上原大師)가 계룡산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날 스님에게 난데없이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아가리를 벌렸다.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 먹다가 잘못 삼켜 목구멍 깊숙히 인골(人骨)이 박힌 것이다. 스님은 뼈를 제거해주고 목구멍을 치료해 주었다. 호랑이는 스님의 대담하고 친절한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 호랑이는 보은을 하느라고 어떤 처녀를 보쌈하여 스님에게 바쳤다. 스님은 놀라서 호랑이를 불렀으나 호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가버렸다.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실신한 처녀를 정성껏 간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녀는 경상도 상주 땅, 김화공(金化公)이란 사람의 따님이었다. 스님은 처녀를 빨리 고향에 데려다 주려했지만 공교롭게도 폭설이 퍼붓기 시작했다. 꼼짝달싹 할 수없이 단둘이서 겨울을 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동안 처녀는 점차 스님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스님은 처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눈이 녹고 봄이 되자 처녀를 상주 땅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이미 스님에게 정이 흠뻑 들어 버린 처녀는 한 시도 스님과는 떨어져 있을 수 없었기에 부모님께 혼인을 시켜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스님과 결혼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부모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딸의 마음도 이미 돌릴 수 없는 곳까지 갔다. 고심을 하던 부모님은 마침내 오누이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딸은 스님과 같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스님도 그마저 거절할 수 없어 의남매(義男妹)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정말로 혈육 이상의 따뜻한 오뉘가 되어 마주 보이는 암자에 각각 기거하며 전보다 더 불도에 정진하며 오래오래 정의(情誼)를 나누다가 죽어서 함께 서방정토(西方淨土)에 들어갔다. 뒷사람들이 이 의남매의 고매한 정의를 기려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
이상보 님은 탑신에 손을 얹고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大德)의 부동심과 백설인냥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그리고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심을 잃지 않은 산중 호걸의 기연(機緣)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의 심금을 붙잡는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뉘에 관한 것은 동감이지만 호랑이에 대한 것은 의문과 함께 도저히 동의를 하지 못했다. 전설 자체가 필연성이 없는 허황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모두 진실이라는 전제에서 두고 볼 때, 호랑이의 행동은 결초심 이외의 다른 뜻이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우선 의심이 가는 것은 왜, 호랑이는 살생의 흔적인 인골을 살생을 금하는 스님에게 제거해달라고 부탁을 했을까?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색욕을 금기하는 스님에게 하필이면 처녀를 선물한 저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인골 제거를 부탁한 것은 백번 양보하여 산중에 아무도 없으니 급한 김에 스님에게도 부탁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스님에게 처녀를 선물한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못하다. 은혜를 갚겠다는 일념 때문에 스님이란 사실을 깜빡 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는 아무래도 다른 저의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호랑이는 자신을 백수(百獸)의 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을 지배하고 제어하는 산신령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어느 날, 난데없는 땡중 - 적어도 호랑이 편에서 보면 그렇다.- 이 산중에 찾아 들었다. 그는 자신의 통할 구역에서, 모든 존재를 완전무결하게 장악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스님이 이 산에 들어온 이후 모든 중생들은 호랑이보다는 스님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경외하게 되었다. 호랑이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스님의 기를 꺾어놓기 위한 방안을 연구했다. 그래서 몇 가지 시험을 했다. 먼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인골(人骨)을 뽑아 달라고 했다. 어지간하면 졸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연민의 정까지 가지고 살생을 나무랐다.
두 번째는 어쩌면 더더욱 간교한 짓을 했다. 아무리 수도승이지만 인간의 본능 앞에는 파계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보은을 가장하여 시침을 뚝 떼고 처녀를 선물한 것이다. 끝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며 쾌재를 부를 준비를 하고…. 그러나 그마저 의연한 스님 앞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가 끝내 파계는 커녕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남매의 지순한 정으로만 일관했다.
여기에 이르자 호랑이는 더 이상으로 스님을 시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도 다른 중생들보다 더한 경외감으로 엎드려 감복하였을 법하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이 입적(入寂)을 하자 호랑이가 앞장 서서 이 탑을 쌓았을 것같다. 하릴없는 비약의 상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느덧 땅거미가 산의 허리를 조용히 감았다. 열사흘 귀가 떨어진 보름달이 감로수에 희미한 얼굴을 드러내었다. 남매탑을 소개하는 글구에 이런 말이 있다.
'감쌓여 석탑가의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밝은 달빛은 옷깃을 여미며 우리들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매탑의 명월은 계룡산 팔경 중에 하나라고 한다. 달 밝은 밤, 청정한 솔잎 사이로 흐르는 달빛에 적신 접동의 피빛 울음이 메아리로 가득한 이 밤, 인생을 생각하며 촉촉한 감상에 젖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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