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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잣대 지키기

                       잣대 지키기

 

 

 

                                             행전 박영환

 

  우리들 삶의 과정은 자의든 타의든 일정한 잣대를 만들기도 하고 또 타인이 만든 잣대에 의해 구속되기도 한다. 잣대를 잘 지키면 정상적이라고 판정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비정상적으로 비쳐진다. 그런데 정상과 이상의 기준도 모호할 때가 많다. 이상한 것이 정상으로 보이기도 하며 정상적인 것이 이상하게 보일 때도 많은 것이다.

  학생들이 결석하면 담임은 출석부에 결석종류를 표시한다. 그 때 잣대는 이렇다. 몸이 아파 결석을 하면 병결이고 본인의 태만으로 결석을 할 때는 사고결이다. 그런데 이따금 나는 태만한 학생을 사고결로 처리하다 말고 갈등을 느낄 때가 있었다. 마음의 병은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멀쩡한 아이라면 어찌 다른 아이들이 가방을 들고 등교할 때, 학생 출입 금지 구역 등지를 배회하며 당당하게 결석하겠는가? 이런 아이들이야말로 마음에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는 병 중에 더 큰 병이고 당연히 병결로 처리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잣대는 아직 그쪽까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박두진의 유명한 시인 ‘해’엔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고운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하는 구절이 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송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따지고 보면 분명히 천동설(天動說)에 의해서 시를 쓴 것이다. 그렇다고 만일 박두진이 지동설에 의해 ‘지구야 돌아라, 지구야 돌아라, 말갛게 고운 얼굴, 고운 지구야 돌아라’로 시를 썼다고 가정 해보라. 모르긴 해도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될 것이다.

  우리 이웃에 어떤 사람이 정신병원에 격리되어 있다가 용케도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동리 사람들이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 사람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도저히 미친놈들 설에 견디지 못해 도망을 왔다.’ 고 대답했다. 미친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잣대의 기준에서 보면 그는 항상 정상적인 사람이다.

  우리는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 다수가 포용하던 ‘관례’란 잣대를 원용하고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관례’란 오랜 세월 동안 다수가 경험하고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개인의 편견에 따른 오류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관례’중에는 박두진의 ‘해’처럼 전통적인 언어 습관 속에 새로운 창조를 이루는 발전적인 것도 있지만 타성적, 인습적(因襲的) 관행에 젖어 굴절되고 퇴보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최고의 지성을 자처하는 대학 교수가 입시 부정에 걸려들자,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관례’라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뇌물 사건에 말려들자, ‘관례’로 호도하며 강력하게 항변했다. 혹여 그것이 그들 사회에서 통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굴절과 퇴보로 이어지는 인습(因襲)일 뿐이다. 인습이란 잣대가 정도(正道)와 사도(邪道)의 기준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관례’란 속물적 아집으로 동정의 빌미로 삼으려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속물적 아집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요소요소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맹자(孟子)는 건전한 사회의 3대 원리로서 식<食=經濟力> 과 병<兵=國防力>과 신<信=道德力>을 강조하고 그 중요도의 순서로서, ‘信’이 제 1 이요, ‘食’이 제 2 요, ‘兵’이 제 3이라고 설파했다.

  바람직한 사회는 믿음직한 잣대가 있을 때 이루어지기에, 비록 먹을 것이 유족하고 총과 칼이 발전되어 있다 해도 정부와 국민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근본적인 삶을 제시하는 이성적인 잣대를 소홀히 하면 그 사회는 쉽게 쇠멸하고 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들은 믿음이란 큰 울타리 안에서 법이란 잣대가 있는 계약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하위의 잣대인 법(法)이란 것은 글자 그대로 물 흐르듯이 바뀔 수 있어도 상위의 진리인 이 ‘믿음’이란 잣대만큼은 어떠한 순간에도 바뀔 수 없다. 세상에는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뀌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어서 혹 바뀌지 말아야 할 것까지를 바꾸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점검하며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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