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
행전 박영환
몇 년 전 ㄷ고등학교에 있을 때, 3학년 윤정 학생이 어머니께 간을 이식하는 대수술을 결행했다. 거액의 빚을 떠안는 상황이었지만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어머니가 위험하다는 병원 측의 말에 결심을 한 것이다.
윤정이 어머니는 수술하기 6년 전부터 간을 앓아 왔는데 그 2년 전부터는 아예 병원에 입원을 한 채, 전혀 바깥출입을 못했으며 점차 악화되어 간경화 말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가 소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간 이식을 받는 것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윤정이는 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3이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간 이식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를 안 어머니는 딸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 것이라고 극력 만류했지만 윤정이는 기어이 병원에 조직 검사를 의뢰했다. 그때 언니도 같이 조직 검사를 했지만 언니는 불가 판정을 받고 마침 윤정이만 이식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간을 이식하려면 두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드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최소한 1억여 원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로 가세가 기울어져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당시 아버지마저 실직을 한 상태였으니 막막했다. 이런 형편이니 윤정이는 간을 이식하기 위해 대수술을 한다는 두려움은 뒷전이고 수술비 때문에 발을 굴려야 했다.
하필 이렇게 딱한 집에 꼭 이런 시련까지 닥치다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윤정이는 정말 속이 깊은 아이였다. 이 일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가정의 어려움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2학년에 이어 3학년에서도 부반장을 맡아 학급 일에 적극 나서며 항상 밝은 표정 속에 생활했기 때문에 같은 반의 친구들조차도 윤정이가 그처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위로했을 때도 오히려 자기의 일 때문에 선생님들과 학우들에게 근심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하면서 애써 밝은 표정을 보였다.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께서 모금운동을 벌였다. 나도 학교 홈페이지에 ‘윤정이를 돕도록 합시다.’ 하는 글을 써서 같이 동참하자고 호소를 했다.
“여러분 우리는 같은 울타리 속에 생활하는 가족들입니다. 가족이란 기쁨도 아픔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흔히 아픔은 나눌수록 줄어진다고 했지요. 우리 모두 작은 힘이라도 합친다면 윤정이의 갸륵한 효심은 헛되지 않아 어머니는 분명히 병석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윤정이와 함께 활짝 웃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줍시다.”
전교의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이 적극 협조했다. 그러나 수술비에 이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니 일단 수술에 들어갔다.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의 숨 막히는 상황. 당초 8시간 정도이면 수술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으나 워낙 대수술이어서 장장 14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70%의 간을 이식하게 되어 수술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렸다. 이 갸륵한 효심과 딱한 사정이 경향 각지의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었다.
“효녀 윤정이”,
매스컴들은 일제히 이렇게 타이틀을 뽑았다. 윤정이는 정말, 이름 그대로 효녀이었다. 70%의 간 이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양이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윤정이는 “어머니의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라고 했다. 이 갸륵한 마음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보도가 나가자 “어떻게 하면 윤정이를 도울 수 있을까요?” 나이 많은 분에서부터 어린 꼬마까지 울먹이면서 문의를 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구청, 이름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 이웃 학교는 물론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성금을 보내왔다.
마침내 걱정하던 수술비도 해결되었고 수술 결과도 좋아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그 일을 보면서 세상이 아무리 메마르다 해도 아직도 우리의 가슴 가장자리에 따뜻한 정이 있고 더운 눈물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