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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7)학덕으로 빼어난 네 분의 선비를 모신 지산서원(芝山書院)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7)

학덕으로 빼어난 네 분의 선비를 모신 지산서원(芝山書院)

 

                                

                                 행전(杏田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청도문협 회장

 

 

지산서원 전경

 

 

<2020년 2월 25일 청도신문>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소재한 지산서원을 찾았다. 이곳은 밀성(密城)박씨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의 학덕으로 빼어난 네 분 선비를 모시고 있다

  ◯일청재 박호(逸淸齋 朴虎, 15121579)

  1546(명종 원년)에 알성급제하여 이조좌랑을 거쳐 평해 군수를 지냈다. 이때 선정을 베풀어 향민들이 놋숟가락을 모아 주석으로 선정비를 세워 그 덕을 숭앙하였다. 1579(선조 12)에 향년 68세로 졸하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평해(平海) 군민들이 통곡하며 도포자락에 흙을 담아 와서 쌓은 봉분의 크기가 왕릉과 같다.

  공은 청도반시를 시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명나라에서 가져온 감나무 가지를 고향마을 재래종 감나무에 접을 붙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감나무에서 열린 감은 씨가 없었고 수분이 많으면서도 아주 달았다. 이 나무가 바로 청도반시의 시조목이다.

  ◯모효재(慕孝齋) 박지현(朴之賢, 16341681)

  숙종조에 효행 문학으로 천거되어 장릉참봉에 올랐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그 효행을 높이 사서 모효(慕孝)란 호를 지어주었으며 그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자겸(子兼)은 우리 문의 효도한 선비로 유림의 표상이 된다고 하였다.

  ◯경양재(景陽齋) 박태고(朴太古, 16561724)

  모효재 박지현(慕孝齋 朴之賢)의 아들이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675(숙종 1)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1702(숙종 28)에 준원전 참봉(濬源殿 叅奉)이 되고 이듬해에 장녕전 참봉(長寧殿 叅奉)을 지냈으며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봉안(奉安)하고자 임금께 상소(上疏)하여 그 비답으로 사계 김장생이 문묘에 종향(從享)케 되었다.

  ◯죽옹(竹翁) 박중채(朴重采, 16791751)

  경양재 박태고(景陽齋 朴太古)의 아들이다. 일찍이 학문을 즐겨 성학요서집(聖學要書輯)을 지었다. 1748(영조 24)에 효행덕학(孝行德學)으로 수의어사(繡衣御使)의 추천으로 장릉참봉(莊陵叅奉)에 천거 되어 참봉을 지냈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동춘 송준길(同春 宋浚吉)을 문묘(文廟)에 봉안(奉安)하고자 임금께 상소(上疏)하여 종향(從享)케 되었다.

지산서원은 1844(헌종 10)에 창건되었으나 1868(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가 후일 자양산 기슭에서 현재의 자리에 있던 영모재 자리로 옮겼고 1984(甲子) 상청사(尙淸祠)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인 상청사를 나오면서 선비란 시제로 몇 줄 올렸다

 

모시는 곳, 상청사

 尙淸이 무엇인가, 늘 맑은 빛이 감도는 곳

 일청재는 처음부터 을 아호로 삼고 모효재는 가 깃들인다

 경양재에는 으로 우뚝섰고 죽옹의 대나무는 푸른 기상으로 가득하다

 그 모두 선비의 다른 이름

 새월마을 네 분의 선비

 님들이 있어 우리는 선비가 무엇이며 선비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거룩한지를 알았다

 두 손 모아 받들어 모십니다

 그 뜻 가슴에 담고 오래 오래 기리겠습니다.

 

 

 

지산서원

 

 

사당인 상청사

 

 

지산서원 묘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