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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4)‘이운룡 함’ 명명을 기원하며 찾은 석동서원(石洞書院)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4)

이운룡 함 명명을 기원하며 찾은 석동서원(石洞書院)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석동서원 전경

 

<2020년 1월 9일 청도신문 656호>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흑석마을 뒤편 산기슭에 위치한 재령 이씨(載寧 李氏) 문헌공파의 석동서원을 찾았다. 배향인물은 식성군(息城君)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이다. 식성군은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출신으로 1585년 무과에 합격하여 1587년 선전관(宣傳官), 1589년 옥포만호(玉浦萬戶), 1593년 웅천현감, 1595년 통정대부(정삼품), 경상좌수사, 1604년 선무공신 삼등에 녹훈 식성군에 봉해졌고 1605 2월 도총부 부총영, 포도대장 겸 화기제조 비변사당상, 같은 해 9월 삼도수군통제사,   1607년 함경도 병마절도사, 1609년 충청수사를 역임했다.

  특히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도와 경상 전라 수군의 연합함대 구성을 이끌었고 옥포, 한산대첩에서 선봉장으로 용감히 싸워 왜적의 서해 진출을 저지했다.

1605(선조 38) “경상 우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누가 적임자인가?” 라고 물었을 때 영남의 여러 장수가 한결같이 이운룡 장군을 거명했고 한음 이덕형이 천거했던 명장이다.

  장군은 거영일기 계본등록을 남겼는데 거영일기는 장군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1605 7 30일부터 1606 9 1일까지 1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다.

  또 계본등록은 이두식 토를 달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수군통제사로서 국왕께 올렸던 장계 138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수군의 활약상과 화기, 전선(戰船)에 관한 기록 및 전후의 수군 편제, 인물, 훈련과정, 방비상태를 비롯 각진의 군비 상황, 수군력 강화 안과 정비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판옥선에 대해 강조하여 이 배가 화전화시(火箭火矢)의 효과가 크기에 왜군을 격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왕에게 보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무튼 이 저서들은 우리 해사(海史)에 길이 남을 공적이다.

  이처럼 장군께서 보여준 혜안과 충정, 멸사봉공의 정신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나라 사랑 정신이기에 2016 12, 이승율 청도군수를 중심으로 청도군민들이 우리 해군 함정에 장군의 이름을 명기하자는 운동을 벌이며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이를 상기하며 2019 3 1, 장군이 태어난 매전면 온막리 일원에서 가두 행진을 하고 구 매전초등학교 교정에서 공동 위원장인 김덕수(해군 소장 전역), 이종평(전 대경대 부총장) 두 분과 뜻있는 많은 분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를 정부당국에 강력하게 촉구하는 결의 대회까지 가졌다.

  이 무적의 이운룡 함 필승 해군의 선봉에서서 우리 바다를 철통같이 지킨다면 국민들은 크게 안심하며 긍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빠른 시기에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운룡 함이란 시제로 몇 줄 적었다.

 

바다를 넘본다면 저들은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저들이 붉은 파도를 타고 자맥질을 할 때마다

얼었다 닫았다 하는 가슴

이런 날은 당신이 더더욱 그리워집니다

저들의 숨겨놓은 발톱이 수평선의 평화를 허물지 못하도록

그 때처럼 파도의 중앙에 서서 우리를 지켜주소서

 ‘필승 해군’ ‘이운룡 함 당신을 믿습니다.

 

 

 

 

<고적대를 앞세우고 가두행진>

 

 

매전면 온막리 장군의 출생지에서 구 매전초등학교까지의 행진

 

 

이운룡함 명명 추진 위원장이 명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운룡함 명명을 기원하며 참석한 많은 분들 (2019년 3월 1일, 구 매전초등학교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