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1)
효시, 의병 창의로 왜적에 맞선 삼우정의 임호서원(林湖書院)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임호서원 전경>

<청도신문: 2019년 11월 25일,월>
금천면 임당리 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밀성(密城) 박씨 삼우정공파(三友亭公派) 문중의 임호서원을 찾았다. 후손인 박희상씨가 강당 및 경의사(景義祠), 보물 전시각인 경의관을 자세하게 안내해주었다. 배향인물은 주벽인 삼우정(三友亭) 박경신(朴慶新) 장군을 비롯한 쌍둥이 아들 운애(雲崖) 박철남(朴哲男), 계애(溪崖) 박지남(朴智男) 세 분이다.
삼우정은 무과초시, 무과복시에 이어 1573년 35세에 무과전시(武科殿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마침 관직에서 휴가 중이었던 공은 두 아들을 비롯한 사촌, 조카들과 더불어 의병창의(義兵倡義)를 했는데 그날이 4월 23일 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의병의 효시가 되었고, 임진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의병 봉기(蜂起)의 도화선(導火線)이 되었다.
의병들에게 임무와 진지를 배치한 후 그는 임금께 왜적의 북상을 알리기 위해 상경하였다. 4월 29일 어전(御前)에 나아가 전쟁의 실상을 아뢰었고, 그 자리에서 청도조전장(淸道助戰將)에 임명되었다.
청도조전장 박경신(朴慶新)은 여러 의병들과 합세하여 청도읍성을 탈환 하는 등 2년간 총50여회 전투에서 왜적 234명을 참살했다.
이런 와중에 공은 청도조전장(淸道助戰將)과 밀양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까지 겸무하라는 명을 받아 항상 선봉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투에서 어쩔 수 없이 전상(戰傷)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 누적된 과로로 인해 1594년 6월 5일 순직 하였다. 탁월한 통솔력, 빼어난 무예로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공의 그 모든 공적은 일자별 실기(實記)인 창의일록(倡義日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쟁이 끝난 뒤(1605년) 어사선무원종 1등 공신과 호성원종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공은 14의사 중에서 연령과 공신등급이 가장 높다.
계애(溪崖) 박지남(朴智男)은 삼우정의 장남으로 1565년 출생했다. 부친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도 등 인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랐다.
운애(雲崖) 박철남(朴哲男)은 아버지 박경신, 형 지남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또한 형과 함께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랐다.
위의 임진란 삼부자(三父子)는 용강서원의 충렬사(忠烈祠)에도 춘추제향(春秋祭享)되고 있다.
삼우정 및 두 아들이 수령한 절지수(節祗受: 功臣錄功帖) 13매와 어사원종공신록권 1책등 4종 17점은 국가보물(1237호)로 지정되어, 대구 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서원의 뜰을 거닐며 ‘삼우정’이란 시제로 몇 줄 올렸다.
임진년 그날
“나를 따르라” 깃발 높이 들었을 때
엄숙한 깊이만큼이나 단호한 뜻이 가득했다
형제, 조카들아, 그리고 아들아
지금은 나를 잊어버리는 시간이다
비록 영원히 잊어버려도
나라를 위해 당당하게 일어서 어둠을 몰아내자
오늘도 들려오는 장군의 그 목소리
역사의 햇살 속에 장엄하다.

사당인 경의사

유물을 보관한 경의관

교지

어사 원종 공신녹권

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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