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13)
충성과 용맹으로 어가를 호위한 운곡의 운천서원(雲泉書院)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청도신문. 2019년 12월 24일(화)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길부)에 소재하는 밀성박씨(密城朴氏) 운곡종중(雲谷宗中)의 운천서원을 찾았다.
배향인물은 운곡(雲谷) 박문부(朴文富 ; 1563∼1605)이다. 그는 충의(忠毅)공 전객령(典客令) 박천경(朴天卿)의 6대손이며 할아버지는 현신교위(顯信校尉) 박의번(朴義蕃)으로 진주에서 청도로 옮겨왔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박기석(朴起碩)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이다. 운곡은 다섯 살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평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효도하지 못하고, 임금을 섬기는데 충성하지 못한다면 짐승들에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하였다.
선조 15년(1582)에 무과에 올라 선전관, 제포첨사로 부임한 뒤 탁월한 통솔력으로 철통같은 방위를 하여 한나라 국경의 장성(長城), 송나라 관문(關門)의 자물쇠라 불릴 정도였다.
그뒤 선조 22년에 사복시 첨정으로 내직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대낮인데도 태백성(太白星)이 수시로 나타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병란에 대비하기를 소청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벌을 주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본 운곡은 바른 건의가 통하지 못하는 곳에 더 머물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향리, 운천재(雲泉齋)로 돌아왔으며 이곳에서 무예와 전쟁에 관한 일을 강론하고 국가의 위급한 상황에 대비했다. 그 때 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 그는 급히 서울로 달려가 의주로 몽진하는 어가를 충심으로 호종했다. 이에 체찰사 오리공(梧里公)이 그의 정성을 높이 평가하였고, 초유사 학봉(鶴峯) 또한 공의 충성과 용맹을 특별히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선조는 말 한필과 비단 일단(一段)을 하사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삼등에 녹훈했다.
그 뒤 선조 38년(1605)에 통훈대부 이성현감(利城縣監)에 제수되었으나 그해 정월 22일, 43세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운천서원은 헌종 4년(1838)에 운천서사(雲泉書社 忠孝祠)로 출발했다가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는데 1922년, 1995년 중창했으며 2009년 운천서원(雲泉書院)으로 승호(陞號)했다.
사당에 들어가 예를 올린 뒤 ‘운곡’이란 시제로 몇 줄 올렸다.
향불 속에서 구름을 보았네/ 흩어졌다 휘어지는 근심/ 임금의 어가에 기댔다가 말발굽의 진흙더미에 기대있다/ 전쟁은 용서할 수 없는 분노이다/ 마침내 적들은 뒷걸음을 치다 단말마 속에 벼랑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평화가 찾아왔건만/ 하늘도 무심하여라/ 요절로 마감한 삶// 지금도 얽혀 있는 세상사에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차마 더는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사당, 충효사>

<사당 안의 신위>

<밖에서 바라본 운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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