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하여 힘을 합쳤던 죽바위
행전 박영환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에 유명한 바위가 있다. 이름하여 죽바위이다. 2010년 12월 20일, 죽암, 즉 죽바위를 찾기로 했다. 겨울이지만 제법 포근한 날씨였다. 이서에서 출발하여 각남 길로 내려오다가 옥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죽바위 1.4 키로미터'란 안내 표지가 보였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온 적이 있지만 50년이 훨씬 더 지난 터라 대략 방향만 약간 감이 잡힐 뿐 기억에서 감감했다. 거의 다 왔다고 여겨졌을 때 들일을 나가는 마을 분께 물었다.
"죽바위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저쪽 뾰족하게 나온 것이 그곳이오."
삽으로 가리키는 조금 떨어진 곳에 바위가 보였다.
"차도 들어가나요?"
"암암, 들어가고 말고요."
우리가 소풍을 올 때는 논두렁길밖에 없었다. 이서초등학교에서 이곳까지는 거의 30리 정도 된다. 그 길을 담임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따라 왔다. 그 때는 이곳에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놀러왔다. 여기저기 솥을 걸어놓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람한 자태로 묵묵히 세월을 지키고 있는 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날도 산 아래 조용히 자리 잡은 천수사의 풍경소리만 가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죽바위 정상에 꿋꿋하게 서 있는 소나무가 일품이다. 흔히 일송정이라고 부르는 이 소나무는 거의 흙이 없는 바위의 잔등에 용하게 뿌리를 내려 살고 있다. 그 동안 생명을 위협하는 폭풍우가 수 없이 지나갔지만 이를 이겨내고 우뚝 선 모습이 장하다 못해 거룩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올 때 담임선생님께서 죽바위의 유래를 들려주셨다. 신라의 침공을 피해 이서국 군사들이 이곳에 숨어 죽을 먹으면서 견뎠다고 죽바위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군사가 구만명이나 되었기에 바위가 있는 곳의 동네 이름도 구만동이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동명도 녹갈과 합치면서 녹명동이 되었지만.
그 당시 군사가 구만명이란 것은 과장일 수 있다. 작은 소국에서 그런 군사가 있을 리 없다.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서국과 관련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 당시 이서국 병사들이 신라 군사를 피해 도망 갈 수 있는 곳은 이 남산 근처가 가장 적당했기 때문이다.
이서국 군사들이 죽을 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또 다른 죽 이야기도 있다. 죽을 넓은 그릇에 담아 둬야 마을이 편하다는 속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죽암(粥岩)으로 불렀다고도 한다. 그런데 어떤 스님 한 분이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가 이렇게 잘 생겼으니 그 정기를 받아 장차 이 고장에 큰 장수가 생겨날 것인데 장수가 어찌 죽을 먹고 힘을 쓰겠느냐고 하면서 대나무를 한 그루를 심어주며 장차 대나무처럼 기개 높은 장수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죽암(竹岩)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바위 주위에 대나무들이 많다.
또 임진왜란과 얽힌 이야기도 있다. 조선 선조 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들은 부산포를 짓밟고 한달음에 밀양을 거쳐 청도지역에 도착했다.
이때 이 마을 사람은 물론이고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적을 피해 앞산인 운정산에 올라갔다. 이 산은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였기에 일전을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성을 쌓고 대비하였다.
그런데 마침 왜적은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그 때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조금 떨어진 죽바위 위에 집결하여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救)했다고 동리 이름도 구만(救萬)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는‘救’아니고‘九’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많아 쉽게 납득하기 힘든 점도 있다.
아무튼 어느 시기이든 이 바위는 사람을 직접 살리거나 아니면 삶의 기쁨을 환호한 바위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 숫자도 구만 명이나 된다. 비록 그것이 약간 과장이 되었다 해도 그에 버금가는 수많은 사람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결과는 우연하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죽을힘을 다해 단결하여 힘을 합친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죽은 힘을 다한 바위란 뜻의 ‘죽바위’인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날 쫓기던 백척간두 그날에도
치마폭 크게 벌려 땀 닦아 다독이곤
젖물려 재워주시던 자애로운 가슴이여
세월의 갈피마다 하늘 되고 땅이 되어
문을 열고 기다리던 생명의 큰 둥지
일송정 푸른 기운이 구만리에 가득하다
* 또 죽바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즉 남성의 성기 *바위란 것이다. 이는 이 마을 앞의 지명들 함박골, 옥산 등이 증빙이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푸른 대나무

죽바위 측면

메마른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냇가에 있는 큰 바위

소나무와 대나무

천수사 돌탑

정자

큰길에서 바라본 전경

바위 아래마을 구만리(녹명리)

바위 앞의 시내

바위 아래 있는 천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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