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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뜨락

수야 2리 마을가꾸기 사업

수야 2리 마을가꾸기 사업

 

  수야2리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마을 가꾸기 사업이 2026년 2월 7일 완료되었다. 추진을 시작한 2023년부터 보면 3년이 걸렸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한 뒤에도 3개월이 걸렸다. 그 동안 여러 난관을 거쳤다. 아무튼 처음 계획한 것과는 좀 다르게 되었지만 마을의 면모가 크게 바뀐 것은 큰 경사이다. 특히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마을 분들의 힘을 입어 유래 및 현황, 숙원 사업 등을 정리하고 청도신문에 알리며 군수께 직접 설명했던 사람으로서 더더욱 감개무량하다.

  

1. 내가 초안을 잡기 시작한 것은 2023년 2월 4일부터이었고 그 뒤 2월 16일 마을 회의를 거쳐 2023년 2월 28일 마을 유래 및 현황을 통해 숙원사업안을 정리 했다. (종합편 25매, 요약본 5매 정리, A4용지)

2. 23년 3월 7일(화 ): 먼저 박성곤 군의원을 방문하여 이를 설명했다. 

3. 3월 22일 청도신문에 추진의 필요성을 알렸다. 

4. 5월 15일 오후 4시: 김하수 청도 군수 면담

* 이서면 수야 2리 행정마을의 문화 관광자원 개발을 위한

- 은행나무 주변 정비 및 탁영 선생 산소 진입도로 설치의 필요성(종합편 25매는 유인물을 만들어 드리고 그 중 5매 정도 요약하여 설명함) 

 

다음은 군수님께 설명한 요약본 내용입니다.

 

  이서면 수야 2리 행정(杏亭) 마을은 수야리의 중심 마을로 신라의 국선인 도선(道詵)이 그의 비기(祕記)인 ‘도선답산기(道詵踏山記)’에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형국으로 만년이 가도 깨어지지 않을 만세불파지기(萬歲不破之基)라 했던 곳이다. 1673년 이중경(李重慶)도 ‘오산지(鰲山誌)에 이를 소개하면서 명당 마을임을 부가 설명했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태봉산(胎峰山)은 이서국 왕자의 태를 묻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여 마을 형성이 이서국이나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1.은행나무

  동리의 상징이며 행정(杏亭)이란 마을 이름이 되기도 한 이 나무는 1505년(연산군 11) 청도 유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소요당(消遙堂) 박하담(朴河淡), 성와(城窩) 박하청(朴河淸),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 삼형제가 심고 행단(杏壇)을 쌓고 성현의 초상을 그려 분향배례(焚香拜禮)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또 여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 마을 출신 의병장들이 창의하기 위해 집결하여 죽기로 다짐하고 충성을 결의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우정 박경신(三友亭 朴慶新)과 제우당 박경전(悌友堂 朴慶傳)을 비롯한 부자, 형제들인 14의사가 그러하며 두암(竇巖) 이기옥(李璣玉)과 이덕복(李德福)도 이곳에 태어나 창의를 했다. 또한 고령김씨 청도 입향조인 의재(義齋) 김홍한(金弘漢) 장군도 의병을 창의하여 순절했다.

이렇게 역사적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으니 2015년 안동 국학진흥원에서 ‘수야곡에 흐르는 충절의 마음’이란 주제로 소개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기옥의 아들 수헌 이중경(壽軒 李重慶)도 이곳 수헌정사(壽軒精舍)에서 청도 최초의 사찬읍지인 ‘오산지’를 편찬했다.

또한 이 나무는 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마을의 관문 역할도 하여 오는 사람 마중을 하고 가는 사람을 전송하던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추석을 전후하여 그네를 매어 타던 곳이기도 하고 여름에 멍석을 깔고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며 꽹과리를 앞세워 풍악을 울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우의를 다지던 마을의 상징이며 역사적 공간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근래에 너무 관리가 되지 않아 마을에서도 방안을 찾고 있으나 동민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할 현실의 벽이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의 역사성과 위용을 되찾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려면

(1)우선 보호수로 지정하고 나무 아래 집 및 땅을 구입하여 은행나무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

(2)그 뒤 소요당 3형제가 만들었던 행단을 복원한 뒤 의병상을 세우고 은행나무와 동리의 유래를 설명한 표석을 세워 단장해야 한다.

 

2. 탁영 산소

  춘추관 사관(春秋館史官)으로 있을 때 세조의 왕위 찬탈을 풍자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올렸다가 연산군의 사림파 숙청사건인 ‘무오사화(戊午史禍)’ 때 극형을 당했던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선생을 모신 곳이다.

  또 이곳에는 탁영의 아버지로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경연춘추관사(經筵春秋館事)에 증직되었던 남계 김맹(南溪 金孟) 산소가 있으며 또한 탁영의 증손으로 왜적을 물리칠 방안을 상소한 '청거왜사소(請拒倭使疏)' 비석이 세워진 도연정 김치삼(道淵亭 金致三) 묘소가 있다.

  이 산소 밑에는 1607년(선조40)에 창건한  묘재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겨레의 사표이며 청도인의 정신적 지주인 탁영선생의 묘소를 행정마을의 문화적 유적과 나아가 자계서원과 연결하여 잘 가꾸면 청도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현재에도 이곳은 청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후손들이 시제를 드리거나 성묘를 하기 위해 찾아오고 또 일반인들이 선생의 묘소를 배알하기 위해 찾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이 길이 개인 사유지이다. 그런데 그 길마저 너무 좁아 차량 진입이 힘들고 소방차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원래 이 재실 및 산소 주변은 모계 김용희가 매입하여 종중에 헌납한 곳인데 현재 산림이 울창하여 언제 화재가 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겨레의 사표이며 청도의 정신적 지주인 탁영 선생 묘소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많은 이들이 찾게 하려면

1)우선 진입도로를 충분하게 확보하여 소방도로와 관광객의 진입로로 활용해야 한다.

2)이길은 둘레길 역할도 하여 주변에 탁영을 비롯한 선현들에 대한 설명이나 시문을 적은 표석을 세우면 추념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3)마을의 주요한 통로이기도 한 이 길은 주민뿐만 아니라 김해 김씨 문중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3. 민속마을의 여건

  수많은 인재가 배출된 유서 깊은 충의 고장인 행정마을은 은행나무와 탁영 산소 이외에도 특기할만한 인물 및 관심을 가질 만한 장소가 많다.

1)이곳에는 청도 최초 사찬읍지 편찬 장소인 수헌정사가 있었던 곳이며 오랜 역사를 가진 영모재에 이어 이서 초등학교가 처음 개교했던 서당이 있었다.

1922년 이서 보성학원(사립 학술강습소, 이서초등학교 전신)설립 인가를 받아 임시교사를 수야 2리 (행정마을) 김경배(金敬培) 서당(현 소원재)에서 개강하였고 원장 겸 교사는 김용수(金容洙) 였다. 그옆에 ‘영사정’ 재실도 있다.

2)이 마을에는 국학진흥원에 문고를 기탁한 세 분의 선비가 있다.

자남문고(紫南文庫) 박재식(朴在植), 형재문고(逈齋文庫) 박기현(朴紀鉉), 봉전문고(鳳田文庫) 박재하(朴在河)가 그 세 분이다. 마침 이 선비들의 집이 한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다.

3)이 마을은 부부가 해로를 하는 장수 마을이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70세 이상 90세가 된 분이 살고 있는데 한집도 빠짐없이 부부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는 본래 명당이기도 하려니와 은행나무와 탁영 선생의 기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이 마을에 발을 딛는 순간 건강의 기를 받게 된다고 믿고 있다.

4)마을에 경관이 수려한 수야지(水也池)가 있다.

설치연도는 1958년이며 유역면적은 425㏊이며 만수 면적은 12.4㏊, 유효저수량은 584㎥, 수혜면적은 153㏊이다.

5) 태봉(胎峰)과 장군봉(將軍峰)이 있다.

이서국 왕실의 태가 묻혔다고 ‘태봉’이라 하고 장군이 칼로 바위를 자른 흔적이 있는 ‘장군봉’이 있다.

6)여기에 가까이 외지인이 많이 찾는 골프장이 개설되어 있고 농산물을 소개하는 ‘백련지 오감 쉼터’도 있고 까페 한 곳도 준비 중에 있으니 이만한 조건을 갖춘 마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잘 활용하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민속마을’이 될 것이며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한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행정마을 관련 사진 및 시 모집

(우수 작품 게시 및 복숭아 및 청도반시 증정)

 

5. 2023년 5월 25일(목) 김하수 군수 현장 확인차 동리 방문(은행나무를 거쳐 탁영산소에 성묘한 뒤 마을의 건의를 적극 수용하여 

- 은행나무 주변을 측량하여 대책을 세우도록 하고 

-탁영산소 진입로 5미터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예산 등의 이유로 쉽게 추진이 되지 않아 여러 차례 진정을 함

 

6. 2024년 1월 31일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지정됨

7. 2월 22일 마을가꾸기 사업 설명회: 은행나무 밑 주변정리 및 탁영산소 가는 길 확장을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함

8. 4월 25일: 마을 유래석 세우다(종전의 자료를 바탕으로 마을 분들과 상의하여 내가 정리했는데 우리 동리는 올릴 사항이 너무 많아 요약을 하고 요약하여 새겼다.)

9. 5월 7일: 은행나무 주변 집 매수에 실패하여 탁영산소 길을 제1안으로 확정함.

10. 5월 9일과 5월 31일 회의 등으로 다른 사업 첨가건 논의

11. 6월 4일: 명곡 주민의 의견 수렴: 흑석댁 집 앞 도로 확장하기로 함, 그 이외 다른 도로도 확장하기로 함.

12. 2025년 3월 26일: 선진지 견학: 사천시 청녈 벽화마을

13.8월 12일: 토지 보상 통지서 나옴

14. 2025년 11월 5일 공사 시작하여 2026년 2월 7일완료   

 

 *아무튼 마을 가꾸기 사업이 이루어져 담장을 새로 쌓고 길이 넓어지는 등 마을 모습이 바뀌어 생활이 많이 편리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만 해도 큰 성공이다. 그러나 본래 의도했던 은행나무 주변 확장을 통한 공간 확보와 여러 사업,  탁영산소 주변의 추모공간, 마을의 민속적 여건을 살려 농산물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원래의 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 

  계속노력할 마을의 숙제이다.

마을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그 내용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마을에 필요한 사업이냐 하는 것이었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상대의 입장에 서서 한 발 물러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제 '마을 가꾸기'에 이어 '마음 가꾸기'를 하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수야 2리 파이팅

그 동안 동민 여러분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정비된 동리 입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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